그림도 그렇게 그린다.
선이 마음에 드는 방향이 나올 때까지 여러 번 다시 긋는 것은 기본이고
색도 딱 이 색이 아닌 것 같아 이 색 찍어봤다 저 색 발라봤다
그마저도 시원찮을 때는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가며 손이 찾지 못한 색을 눈이 찾아낼 수 있을 때까지
온갖 방법들을 시도한다.
글쓰기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그 과정이 그렇게 괴롭지는 않다는 것이며
원하는 방향과는 미끄러진 선택이어도 그 자체가 마음에 들어 내버려 둔 채 완성하기도 곧잘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씨 하나에도 명확한 의미들이 갈라지는 이 글은 좀처럼 토해내 지지가 않는다.
천 갈래 즘의 길이 있고 나는 백번 째 길을 잃고 있다.
삼만 년 묵은 떡이라도 얹혀있는 듯 썼다 지웠다를 무한 반복하다 도로 하얘진 백지가
정말 어지간한 시간을 들여서는 쉽사리 공략될 것 같지 않은 견고한 성 같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그 틈하나 보이지 않는 만리 장벽을 쇼생크 교도소에 억울하게 갇힌 죄수라도 된 양 비루한 숟가락으로 긁어대보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과연 내가 살아생전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진지하게 신이 절로 찾아진다.
신이시여. 요즘은 AI가 저보다 백배는 더 잘 쓰더라고요.
왜 제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탐을 내게 하셨나요.
이번 생은 정녕 안 되는 것일까요...
푸념인지 질문인지 모를 것들은 곧잘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게 안 되는 쓰기가 되네. 어이없어하며
이것이야 말로 답을 안들 뭐가 달라졌을까 싶다.
남 말 안 듣기는 둘째가라면 서럽게 살았으면서
그 대상이 신이라고 해도 과연 들었을까.
언젠가는 잘 쓸 수 있기를 바라지만 평생 삽질 아니 숟가락질만 하다 가는 쓰기일지라도
이 괴로움 너머에 있는 뿌듯함이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있는 한
나는 오늘도 끙끙거리며 박박 긁어대는 몸짓을 멈출 수 없겠지.
누가 나에게 어떻게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어떻게 어떻게든 어찌어찌 어쩌자고 어쩔 거냐며 어화야 둥둥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