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눈알 붙인 두려움씨를 등장시켰다.
그림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단지 눈알 두 쪽을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정체 모를 시커먼 덩어리라도 얼마든지 귀엽게 만들 수 있는 마법이 가능하다.
이 날이 내가 글을 써서 책을 내 보자고 결심한 첫날이었다.
책은 항상 내고 싶었는데 어디서부터 이렇게 어려워졌는지.
어쩌다 이 실체 없는 두려움의 몸집을 이만큼이나 키우게 된 건지.
이제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도 않고 마주 볼 수도 있게 되었는데 왜 아직도 이별은 이렇게 어려운 건지.
답을 다 찾고 나서 이별을 시도하려면 다음 생에나 가능할 것 같아서
일단 선언을 하고 봤다.
첫 술에 배부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들은 척 만 척 미동도 없는 '이 멍청한 녀석'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며 귓구멍을 그려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벌써 결심 391일 차가 되었다.
여전히 해가 뜬 낮 동안은 만만해 보이고
어둠이 찾아온 밤이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두려움씨와의 이별이 완전히 이루어지진 못했지만,
그래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쓰는 스킬이 1 늘었다.
느리지만 천천히 헤어지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그 멍청한 녀석과 항상 같이 지내던 시절도 있었지 하고 회상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