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의 전제가 되는 몸을 이제서야 많이 느끼고 있다.
내가 관심이 있던 것들은 주로 보이지 않는 것이었고 만져지지 않는 것이었다.
평생을 사랑하고 있는 그림이 그렇고 내내 쫓고 있는 꿈과 희망이라는 것도 그렇다.
있긴 있지만 과연 있는 것일까 하면서도 물증보다는 심증으로 꼭 잡고 놓지 않고 살아온 그것들은 이성과 마음의 작용으로만 만들어진, 감각하는 몸과는 반대편에 놓여 있는 무엇처럼 생각했다.
맹목적이었다고 말하게 되는 어린 날의 나는 몸을 하인까지는 아니라도 한 번도 1순위에 놓아본 적이 없었고 한 없이 달려가는 이상에 비해 부치게 쫓아가는 몸이 못마땅하게 느껴지던 순간도 많았다.
긴 시간 함께 해온 통증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그렇게 등한시했던 몸을 나에게 돌려준 것이었다.
온몸의 구석구석이 자신도 거기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왔다.
무식했던 이성보다 현명하게 파업을 선언한 몸 덕분에 생긴 돌봄의 시간으로
어떤 순간에도 나를 홀로 두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들이 아프다고 소리치기 전에 알아차렸으면 좋았을 텐데.
내 몸에게 나는 좋은 말로 했을 때는 못 알아 들고 큰 소리로 말하고 화를 내야지만 알아듣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부터라도 잘해보고 싶어서 잘 듣기를 연습한다.
언제나 서투르고 미욱하던 나였지만 지금까지 함께 해줘서 고마워 들숨,
앞으로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더라도 그때는 좀 더 빨리 알아차리고 바로 돌아올게 날숨.
⁕ 도인님은 지대넓얕에 나온 그 도인님이다. 한 번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나의 귀인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