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무 님의 그림에 영감을 받아 밥 아저씨를 떠올리며 그렸다.
어린 시절 다이얼을 돌려 채널을 맞추던 볼록한 TV 브라운관 속에서 그의 인상만큼이나 푸근해 보이는 머리스타일을 하신 아저씨가 몇 번의 슥삭슥삭 나이프질로 산과 호수와 구름과 나무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툭 던지시는 한 마디를 듣는다. "참 쉽죠?"
당시 나에게는 날짜가 지난 달력 종이나 볼펜, 연필 등은 있었지만 유화물감과 나이프, 캔버스 등은 없었기 때문에 따라 해 볼 수 없으니 쉬운지 안 쉬운지 알 길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속으로만 분명히 쉽지 않을 텐데 왜 자꾸 쉽다고 그러는 거지 해보지 않았으니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고 심통 아닌 심통을 부렸었는데, 누가 봐도 쉬워 보이지 않는 그림을 쉽게 그리시면서 우리 보고도 쉽다고 말하는 아저씨의 진짜 저의를 이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십 년이 더 지나서 애석하게도 밥 아저씨가 세상을 떠난 후의 기사를 보고 나서였다.
밥 아저씨의 그림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아저씨의 그림을 보관 관리하고 있는 밥로스컴퍼니 측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림을 한 점도 팔지 않습니다. 밥이 원한 건 사람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지, 그의 그림을 파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저씨도 분명 이 좋은 그림을 한 사람이라도 더 같이 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거다.
사실은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데 혹시라도 어려울까 봐 잘 못 그릴까 봐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다고, 이렇게 쉽다고 꼬드기셨던 말이었던 것이다.
물론 '잘' 그리려면 쉽지만은 않은 노력들이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나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림을 통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지를 들여다본다면 잘 그림과 못 그림을 나누는 기준 또한 얼마나 천차만별일지 쉽게 알 수 있다.
잣대에 가려 내가 모르던 나를 찾아내고 나에게 공감하고 나를 남과 나눌 수 있게 하는 그림을 안 그린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 나도 한번 권해본다.
이 즐거운 것을 한 번 해 보시지 않겠냐고.
도구를 사용하는 손의 움직임이 그리고 내가 만들어내는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선과 색의 이미지가 그 어떤 맛있는 음식만큼이나 신선하고 풍부한 감정의 진수성찬을 맛보게 해 줄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