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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글그림 Jul 16. 2023

192.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










































전현무 님의 그림에 영감을 받아 밥 아저씨를 떠올리며 그렸다.


어린 시절 다이얼을 돌려 채널을 맞추던 볼록한 TV 브라운관 속에서 그의 인상만큼이나 푸근해 보이는 머리스타일을 하신 아저씨가 몇 번의 슥삭슥삭 나이프질로 산과 호수와 구름과 나무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툭 던지시는 한 마디를 듣는다. "참 쉽죠?"


당시 나에게는 날짜가 지난 달력 종이 볼펜, 연필 등은 있었지만 유화물감과 나이프, 캔버스 등은 없었기 때문에 따라    없으니 쉬운지  쉬운지  길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속으로만 분명히 쉽지 않을 텐데  자꾸 쉽다고 그러는 거지 해보지 않았으니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고 심통 아닌 심통을 부렸었는데, 누가 봐도 쉬워 보이지 않는 그림을 쉽게 그리시면서 우리 보고도 쉽다고 말하는 아저씨의 진짜 저의를 이해하게  것은 그로부터 몇십 년이  지나서 애석하게도  아저씨가 세상을 떠난 후의 기사를 보고 나서였다.


밥 아저씨의 그림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아저씨의 그림을 보관 관리하고 있는 밥로스컴퍼니 측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림을 한 점도 팔지 않습니다. 밥이 원한 건 사람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지, 그의 그림을 파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저씨도 분명 이 좋은 그림을 한 사람이라도 더 같이 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거다.

사실은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데 혹시라도 어려울까 봐 잘 못 그릴까 봐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다고, 이렇게 쉽다고 꼬드기셨던 말이었던 것이다.


물론 '잘' 그리려면 쉽지만은 않은 노력들이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나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림을 통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지를 들여다본다면 잘 그림과 못 그림을 나누는 기준 또한 얼마나 천차만별일지 쉽게 알 수 있다.

잣대에 가려 내가 모르던 나를 찾아내고 나에게 공감하고 나를 남과 나눌 수 있게 하는 그림을 안 그린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 나도 한번 권해본다.


이 즐거운 것을 한 번 해 보시지 않겠냐고.

도구를 사용하는 손의 움직임이 그리고 내가 만들어내는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선과 색의 이미지가 그 어떤 맛있는 음식만큼이나 신선하고 풍부한 감정의 진수성찬을 맛보게 해 줄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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