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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글그림 Jul 09. 2023

191. 지지(支持)





























1년도 더 전에 썼던 그림들에 글을 붙이는 작업이 바빠진 현생과 맞물려 점점 더뎌지고 있다.

후덥지근해진 날씨만큼이나 주욱주욱 늘어진 채 엿가락처럼 달랑거리고 있는 마음이다.

그래도 끊어지지는 않았다. 다시 연명하는 쓰기를 시도한다.


작년 이맘때 즘 바로 책을 엮어보고 싶은 마음에 끄적거렸던 초고는 온통 했던 말을 또 하고 했던 말을 또 하고 있어 쓸만한 게 하나도 없다. 내가 쓴 글이지만  마치 술주정뱅이의 주사라도 보고 있는 듯 낯 부끄러워져 결국 나를 다시 새하애진 백지 앞으로 되돌려 놓는다.


JYP는 그렇게 노래를 말하듯이 부르라고 했지만, 온갖 작법서에서도 글은 말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써야 한다고 했지만 그때의 말은 이런 말을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사라지는 말이 아닌 새겨지는 글이니 다시 말하고 싶다.

나는 무슨 말을 남기고 싶은 걸까.


글보다 내가 좀 더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그림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처음에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겼다. 이를테면 밝고 귀엽고 따뜻한 것들이랄까.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는 것처럼 나 역시 그런 것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마도 내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밝은 것에는 항상 어두운 것이 함께 있다. 사는 건 귀엽지 않은 순간들이 더 많고, 따뜻한 봄날은 스쳐가고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날은 길게 이어진다.

그래서 그런 것들도 같이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좋은 것도 좋지만 좋지 않아도 이미 있는 것들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어서. 한편으로는 있는 것이라면 다 그려 보고 싶은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글도.

이 또한 나에게 없던 것, 외면하던 것에 솔직해져 보는 일이었다.


이 날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냐면 어둠을 말하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일을 남기고 싶었다.

아무리 캄캄한 어둠이라도 어둠은 어둠일 뿐 나를 해치지 않았다고.

그리고 알겠다. 오늘은  주정뱅이의 주사같은 말이었을지라도 덕분에 한걸음  무사히 나아갈  있었음을 남겨두고 싶다는 것을.


새하얀 백지라도 시커먼 어둠이라도 언제나 함께하는 순간이 있음에 오늘도 이렇게 지지말고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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