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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by E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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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작업을 한 지 20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전선을 새로 연결해서 부팅할 때마다 살짝 긴장한다.

그리고 무사히 켜지면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다.


수작업에서 CG로 넘어가게 된 것은 순전히 필요에 의해서였다.

일을 하려다 보니 수정과 보정이 용이한 프로그램을 익혀야 했다.

하지만 쓰다 보니 점점 실제 붓과 물감으로 그리는 것보다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그리는 그림들에 익숙해졌고 한 장의 그림이 아니라 수천 장의 그림을 이어 붙여야 하는 애니메이션은 더욱 프로그램 없이는 절대 만들 수 없는 그런 작업이다 보니 이제 나에게 컴퓨터는 둘도 없는 내 작업 동료가 되었다.


도움을 받기도 하고 곤란에 빠뜨리기도 하는 이 친구와 함께 그린 그림 수만큼이나 정이 들어서

이들에게 이름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나에게는 훨씬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떤 사람의 얼굴보다도 더 오래 보고 있는 장군이는 내가 처음으로 산 LCD 모니터였다.

정면보다 옆면이 더 길었던 브라운관 CRT 모니터를 사용하다 고심해서 처음으로 사본 고가의 LCD 모니터는

택배박스에서 꺼내는 순간부터 그 늠름하고 위풍당당한 자태가 눈부셔 누가 봐도 장군감이라 장군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LCD 모니터는 수명이 5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정보를 찾아보고는 그렇게 빨리 이별해야 하는 것인가 지레 슬퍼지곤 했었는데.


통계는 통계일 뿐 13년 차가 된 지금도 장군이는 아주 멀쩡하다.

몇 년 전부터 재부팅시에는 한쪽에 살짝 얼룩이 진다던가 모니터를 기울이느라 자주 손을 댔던 아랫부분에는 데드픽셀이 생긴다던가 경미한 노후 증상을 보였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고 몹시 바쁘기도 해서 새 모니터를 알아보는 것은 다음에 다음에 하다보니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사람에게는 내버려두면 자연치유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기계도 그럴 수 있는 것일까?

정확히 어떤 원리로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칭찬은 기계도 회춘하게 했나보다 하고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칭찬을 해준다. 우리 장군이 여전히 멋지다고. 우리 사랑이 오늘도 고맙다고.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사랑이 청소를 하게 된 것은 나에게도 사랑이에게도 좋은 선물이었다.

역시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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