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동안 구단은 결국 김상식 감독과의 재계약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지난 두 시즌동안 우리 모두가 보낸 시간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시련 같은 것이길..
그래서 '그런 적도 있었지..' 하며 하나의 지난 이야기로 올시즌을 제발 무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지난 카타르월드컵의 영향 때문인지 리그 개막을 앞두고 정말 말도 안 되는 현실과 맞닥뜨렸다.
10년 만에 홈에서 1라운드 개막전을 치르지 못한다는 사실에 이미 자존심이 상했는데, 그 시퍼런 경기장에 가서 우리 선수들이 도열 박수를 쳐야 한다는 사실에 두 번째로 자존심이 상했으며, 그래도 우리가 그 박수보다 더 큰 응원을 선수들에게 보내주자라는 마음으로 리그 개막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울산과의 개막전을 기다리며 원정석 티켓팅을 하려던 바로 그 순간, 내가 마주한 이것이 K리그 경기인지, 임영웅 콘서트인지.. 정시에 들어간 예매사이트에는 왜 대기순번 몇천 번이 떠서 바뀔 생각이 없는 것인가..
(월드컵 이후 유명연예인급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조규성' 선수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본다)
그래서 실패했다. 세상에나 개막전 원정석 티켓팅을.. 축구를 보며 이런 경험은 정말이지 처음 있는 일이었다.
K리그의 인기를 좋아해야 하는 일인 건지, 아님 진짜 축구팬들이 뒤로 밀린 현실을 슬퍼해야 하는 건지..
아무튼 어찌어찌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겨우 원정석 티켓을 구해 원정길에 올랐다.
K리그에 정말 봄이 다시 오려는 건지 도착한 울산문수경기장엔 빼곡한 원정석을 포함해 수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채워주고 있었다.
2023년 2월 25일 토요일,
K리그의 공식개막전은 지난 4년간의 우승 경쟁으로 더욱 불이 붙은 '현대가더비'다.
전북의 입장에서는 지난 시즌 파이널라운드에서 전쟁 같은 경기 뒤에 역전패를 당한 뒤라 더 지고 싶지가 않았고, 무엇보다 개막전이 홈에서 치러지는 것도 아닌 원정인 데다 입장 시 울산 선수들을 향해 도열박수를 쳐야 할 우리 선수들까지 생각하니 승부욕이 더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되기 전, 이 현대가더비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지난 시즌 울산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던 '아마노준'이 이번 시즌엔 전북으로 임대팀을 옮기면서, 서로 간의 언론플레이를 통해 리그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이미 신경전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다.
원정팬들의 환호와 울산 홈팬들의 야유 속에 이제는 전북의 선수가 된 아마노준이 오늘 경기의 선발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채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지지난 시즌 울산에서 뛰어난 기량을 펼치다 해외로 팀을 옮긴 후, 1년 만에 다시 K리그로 돌아오면서 울산이 아닌 전북을 만나게 된 이동준 선수도 이날 선발로 경기를 뛰게 됐다.
가득 찬 관중만큼이나 많은 기대감 속에 시작된 경기는,
'이번 시즌엔 정말 달라졌구나! 이게 전북이지!' 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나 울산 출신의 이동준 선수와 아마노준이 경기장을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는 모습에선 정말 감탄을 금할 길이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나 압도하던 경기력을 보여주던 아마노준의 도움을 받아 경기 시작 10분 만에 송민규 선수가 선제골까지 만들어 내며 수천 석의 원정석을 가득 채운 원정팬들의 환호를 이끌어 냈고, 경기는 더욱더 흥미진진해졌다.
(송민규 선수는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리그 첫 골을 기록한 선수로 기록됐다)
전반 막판, 울산의 엄원상 선수에게 실점을 허용하면서 경기가 다시 원점이 되긴 했으나 전반전 내내 보여줬던 경기력은 후반전에 대한 기대감을 자연스레 갖게 했다.
하지만 전반에 모든 힘을 다 쏟았던 것일까..
가장 돋보였던 이동준 선수가 부상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고, 뒤이어 아마노준까지 교체로 경기장을 빠져나가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어지더니, 설상가상으로 수비수와 골키퍼 간의 실수로 추가 실점까지 허용하면서 경기는 지난 시즌 뼈아픈 역전패에 이어 또다시 울산을 상대로 연패를 하고 말았다. 더욱이 전북현대가 개막전에서 패배를 기록한 것은 2011년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복수를 꿈꾸며 왔건만 또다시 통한의 역전패를 받아 들고 가자니 돌아서는 발걸음이 더 무겁기만 했다.
그래도 실망만 하지 않았던 건, 후반에 다소 힘이 빠지긴 했지만 경기 초반에 보여줬던 전북다운 공격축구의 모습으로 인해 이제 시작될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는 것.
더욱이 '닥공'이라는 전북만의 축구 색깔을 가지기 시작한 2011년에도 리그의 첫 경기에서 패배를 기록하긴 했지만, 결국엔 독보적인 공격축구로 최정상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이제 겨우 한 경기만으로 상심할 이유는 없는 일이었(다는 큰 착각을 잠시나마 한 것 같)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2023년 3월 5일 일요일,
월드컵 스타인 조규성 선수와 백승호 선수등의 인기에 힘입어(물론 이 중에 7할은 조규성 선수의 팬이겠지만..) 2만여 명에 가까운 팬들이 홈 개막전에 모여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홈 개막전의 상대는 '수원삼성'이었으며, 지난 많은 축구일기들에서 말했던 것처럼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되는 상대이다. 유명연예인이 경기장을 찾아와 시축도 하고, 선수들이 입장할 땐 수많은 관중이 엄청난 환호를 쏟아내며 개막전의 분위기를 더 뜨겁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모두의 기대 속에 시작된 경기는, 지난주 울산 원정에서 전반전에 보았던 그 축구가 아니었다..
비록 전반 초반 이른 시간에 조규성 선수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경기를 앞서가긴 했지만, 지금 하는 축구는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괴로워하며 봐왔던 바로 그 그림이었다.
결국 전체적으로 밀리던 경기는 후반전에 동점골까지 허용하면서 희한하게 비겼는데 진 것 같은 결과를 받아 들게 됐으며, 결과적으로 이날 제일 잘한 건 오랜 시간 전북에서 뛰다가 이번 시즌부터 수원으로 팀을 옮기게 된 김보경 선수였다.
우려가 현실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지금의 이 걱정이 제발 오늘 하루로 끝나야만 할 텐데..
그저 스쳐 지나가길 바랐던 지난날들의 모든 비판과 야유가 다시 반복된다면,
나는 그 잔혹동화 한가운데 더 이상 서있을 자신이 없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