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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 Dec 27. 2023

흑역사가 만들어지던 순간,

지우고 싶은 영상이 있어요..

'패밀리레스토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생일파티' 이벤트일 것이다.

생일을 맞은 고객의 테이블을 방문해 레스토랑의 직원들이 몇 가지 간단한 악기를 곁들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이벤트로, 과거 '맛이 즐거운 곳'에서는 매년 '벌스데이송 콘테스트'가 펼쳐질 정도로 그 중요도가 매우 컸다.

벌스데이송을 부를 땐 통상적으로 탬버린과 카바사, 그리고 봉고와 기타가 사용됐다. 특히나 이들 중 유일하게 음정을 표현하는 악기인 기타는 노래의 분위기를 크게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 보니 매장에서 기타를 칠 줄 아는 사람은 자연스레 그 희소성이 클 수밖에 없었다. (기타 없이 부르는 벌스데이송은 정말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한때는 꿈이 음악선생님이었을 정도로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지만.. 

그나저나 학창 시절 교회에서 반주를 조금 하던 시절에 기타 코드도 살짝 배워놨던 것을 10년이 지나 밥벌이를 하며 써먹을 줄이야..




'맛이 즐거운 곳'은 당시 미디어에서도 노출이 꽤 잦은 편이었다.

특히나 드라마에서 생일파티를 하는 장면이면 열에 아홉은 '빨간 하얀 스트라이프'가 등장할 정도였고,

더군다나 나의 두 번째 매장이었던 여의도점은 방송가의 중심에 위치한 덕분에 그중에서도 촬영 섭외가 더 잦은 곳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촬영 섭외 시 비단 장소만 섭외하는 것이 아니라 생일파티 장면을 표현해 줄 직원들이 함께 섭외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출연 섭외가 들어오면 보통은 서너 명 정도의 직원이 함께 촬영에 참여를 하게 된다.


여의도점으로 매장을 옮기기 전만 해도 기본 코드만 잡을 줄 알았던 기타가 나의 소소하면서도 고정적인 부수입으로 자리를 잡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매장에 기타를 칠 줄 아는 사람이 수유에 살던 형 한 명과, 나머지 한 명은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무튼 수유만큼 멀리 살던 또 다른 형, 그리고 신림에 살던 나까지 단 세 명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출연자까지 필요한 촬영 섭외가 들어오면 늘 1순위로 거리가 가장 가까운 내가 먼저 거론될 수밖에 없었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촬영 현장이나 연예인을 보는 게 신기하다거나 좋을 이유는 딱히 없었지만,

그럼에도 가끔 들어오는 촬영 섭외가 반가웠던 이유는 바로 꽤 쏠쏠한 수입 때문이었다.

그냥 평범하게 일하는 직원이나 다른 테이블에 앉은 손님의 역할은 엑스트라라고 불리는 보조출연이 맡게 되지만, 생일파티 장면은 직접 노래와 악기 연주를 하기 때문에 보조출연과는 별개로 '특별출연'으로 분류가 되어 섭외가 따로 된 경우이다 보니, 시간당 최저시급 개념이나 일당으로 받는 보조출연자들과 다르게 생일파티 한 장면만 30분 정도 촬영을 하고도 당시로서는 적은 금액이 아닌 6만 원~8만 원 정도의 출연료를 지급받았다. (편성이 어디냐에 따라 차등이 있었다. 드라마국보다는 예능국의 프로그램이 1~2만 원 정도 출연료를 더 줬었다)

게다가 한 달에 한두 번은 이런 촬영 섭외가 있다 보니 출근 전에 1~2시간 정도만 일찍 나가는 걸로 거의 하루치의 일당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그저 재밌기만 했다.

오죽하면 예상치 못한 일들로 인해 대전으로 매장을 옮겨야 할 땐 엄마가 부수입이 없어져 어쩌냐며 아쉬운 농담을 던지실 정도였으니,




이렇게 재밌기만 한 촬영이었는데 잊을만하면 누군가가 찾아내 흑역사로 남아 있는 영상이 하나 생겼다.

그저 매장에서 매일 하던 생일파티를 카메라 놓고 하는 것뿐이라 여기며 여기저기 지나가는 장면으로 많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이상하다..' 생각했던 장면이 있었다.

바로 성장드라마 '반올림'의 파티 장면,

모든 세팅이 생일파티랑 똑같았는데 요청한 노래 가사가 좀 이상했다.

'생일'이 아닌 '생리 축하합니다'......?


촬영을 위해 그날 모였던 인원이 남자 둘, 여자 둘이었는데 특히나 형들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고, 

대사까지 주어졌던 내 표정에서도 그때의 어색함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로 촬영은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옥림이의 엄마, 아빠 역할을 하셨던 두 배우분이 무척이나 세심하고 친절했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이 장면이 여기저기 웃긴 동영상에 돌아다니고 있는 걸 어떻게 발견하게 됐는지 굳이 찾아서 보여주는 지인들이 있다는 것..

앞, 뒤 맥락을 다 자르고 보면 이상해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긴 하다.

하지만 실제 드라마에서의 내용은 우리가 어색해하던 그 장면이 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편집'의 힘이 이렇게나 대단할 줄이야,


그래도 언젠가는 스물셋의 내 모습이 민망함보다는 반가움으로 다가올 날이 있겠지 뭐..


[성장드라마 '반올림'의 갈무리] 사실 말도 안 되는 이 장면은 주인공 옥림이의 상상(꿈)에 나오는 장면이다. 물론 실제로도 생리 축하파티를 할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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