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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 Jan 12. 2024

노동조합 만드는 게 잘못인가요, (1)

입사 4년 차,

지난해에 캡틴(LEVEL 2) 진급을 한 뒤로도 회사의 분위기가 여전히 어수선하긴 했지만, 그래도 중간관리자로서 자리를 잡으며 여러 부분에서 재미를 느껴나가던 중이었다.

일이 더 익숙해지자 전보다 단골고객도 많이 늘어나게 됐으며, 업무평가에서도 늘 좋은 점수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W/W(Waiter/Waitress) CHAMPIONSHIP'이라는 대회에서는 전국 매장의 예선 테스트를 거쳐 상위 3개 매장으로 살아남아 결선에까지 진출하며 더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W/W CHAMPIONSHIP'은 레스토랑에서 행해지는 모든 서비스의 이론과 실무를 평가하는 대회였기에 준비하는 몇 주 동안은 출전하는 세 명이서 새벽까지 밤을 새 가며 열심을 다할 수밖에 없었고,

그중에서도 나랑 데이빗은 홀에 두 명뿐인 캡틴이라 업무적 친밀도까지도 높은 편이었다.


데이빗은 뭐랄까..

전형적인 '교회 오빠'같은 이미지였다.

낮은 어조와 침착한 말투에 늘 평정심과 웃음을 잃지 않던 모습까지..

정말이지 너무나 선하고 바른 사람이었다.

거기다 둘의 업무까지 비슷하다 보니 데이빗과는 늘 많은 소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니님, 노동조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당시의 나는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회사의 부당함에 맞서는 것'이라는 큰 틀에서의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큰 관심은 없을 때였다. 그리고 외식업체에서의 노동조합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시기이기도 했고,

"음.. 평소에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왜요?"

"우리 회사에도 노동조합을 만들어 볼까 하는데 허니님이 같이 도와줄 수 있을까 해서요"

스물넷의 나는 지금보다 더 용감하고 겁이 없을 때였다. 물론 이게 용기까지 필요한 일일까 싶지만..

"네,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같이 한 번 해볼게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퇴근 후 늦은 시간,

데이빗과 나는 당시 마포에 있던 '민주노동당'의 사무실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사무실에는 우리 말고도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고, 그들은 각자 '맛의 즐거운 곳'의 다른 영업점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었다. 그리고 거기 모인 이들에게 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조언을 해줄 민주노동당 측의 사람도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자정이 넘도록 자세한 얘기들을 나누며 뜻을 함께 모은 우리는 각자의 영업점으로 돌아가 힘을 보태줄 동료들을 더 모아 며칠 뒤에 다시 만나기를 약속했다.


매장으로 돌아온 나와 데이빗도 우리의 뜻을 다른 동료들에게 전하며 함께 할 이들을 모아가는 중이었다.

모든 일이 순조로웠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혹시나 회사가 알게 되더라도 '반기지는 않겠구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반대할 이유 또한 없다고 여겼다. 사실 반대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렇게 여러 매장에서 더 많은 뜻을 모아 다시 모이기로 한 전날, 데이빗의 표정이 어딘가 어두워 보였다.

"무슨 일 있어요?"

"음.. 크게 문제가 될 건 아닌데 회사에서 우리가 진행하는 일을 알고 있는 모양이에요, 누군가 회사 측에 우리의 정보를 주고 있는 거 같은데......"

"알아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요? 그냥 미운 털이나 좀 박히겠죠, 노동조합이나 만들려고 했다고.."

라면서 정말 '알아도 어쩔 수 있겠냐'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맨 처음 민주노동당 사무실에 모였던 그 일곱 명 중에 우리의 밀고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으니까.. 

회사는 우리가 하려던 일을 속속들이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렇게 우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약속된 금요일 밤, 많은 이들과 함께 마포의 민주노동당 사무실로 향했다.


어쩌면 삐걱거림은 이때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본래는 모이기로 했던 장소가 매장과 가까운 여의도 근처였는데 이미 본사의 영업본부장과 그 수하들이 여의도역에 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밀고자의 존재를 이후에 알게 된 것), 그제야 부랴부랴 다른 매장의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해 장소를 민주노동당 사무실로 옮긴 후 그곳에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이들이 모이며 수십 명의 사람들이 좁은 사무실을 가득 메우게 됐고, 각자 뜻을 함께 한다는 가입원서까지 작성을 거의 마칠 즈음이었다. 

갑자기 대전의 신규 매장에 지원을 해 입사를 하고 근무중이던 베프에게서 전화가 왔다.

"허니야, 너 지금 이상한데 가 있는 거 아니지..?"

"이상한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근데 내가 지금 밖에 나와있는 중이라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그곳에 모인 우리들 빼고는 회사의 모든 이들이 이미 우리를 작당모의나 하는 범죄자 취급을 하고 있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특히나 주동자로 지목된 나와 데이빗을 포함한 그 예닐곱 명은 이미 회사의 눈밖에 나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탓에 다소 소란스러운 분위기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곳에 모인 우리들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제대로 알자'며 결의를 다졌고, 앞으로의 건투를 빌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보태는 인사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순간,

눈앞에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여의도 인근에 진을 치고 있었다는 본사의 영업본부장과 영업이사, 그리고 인사팀장까지.. 뿐만 아니라 본사의 다수 직원들과 한때는 같은 매장에서 일했던 동료와 우리의 밀고자까지.. 그들이 한 줄로 쭉 서서 내려오는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머리에 띠를 두르며 투쟁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노동조합 설립에 뜻을 모아 모인 것뿐인데, 이게 이럴 일인가? 기죽을 필요도 없었고, 물론 기가 죽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마저 끝내지 못한 인사들을 서로 나누며 헤어지려던 마지막 순간까지 회사 측으로 모인 그 많은 사람들의 우리를 보던 눈빛, 그 눈빛이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세상 끔찍한 벌레를 바라보는 듯했던......


그렇게 혼돈의 금요일과 주말을 보내고 맞이한 월요일,

데이빗이 우리의 대표로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하고 갔고, 나는 출근을 막 하려던 그 순간, 데이빗에게서 전화가 왔다.

"허니님, 뭔가 잘못된 거 같아요.."

"네? 잘못됐다니요..?"

"회사 앞으로 노동조합 신고가 이미 되어 있어요......"


그랬다.

당시만 해도 복수노조는 설립이 불가능할 때였고, 우리의 밀고자를 앞세운 회사 측이 이미 우리보다 한 발 앞서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해버린 것이었다.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결과에 무거운 발걸음을 그대로 돌려야만 했던 데이빗과는 

일단 매장에서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어서>







<배경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챠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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