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만났네, 또 만났어
이쯤 되면 인연보다는 악연
2015년의 봄은 나에게 아주 힘든 계절이었다.
과도한 업무로 인해 강제적으로 축구와 거리두기가 시작됐고, 몸과 마음까지 지쳐 얼굴엔 웃음조차 잃어가던 날들..
2015년에 전북현대는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2012년과 2013년을 연속으로 만나 우리에게 아픔을 주었던 J리그의 '가시와레이솔'을 같은 조에서 또 만나게 됐다. 2015년 시즌의 첫 경기가 가시와레이솔과의 홈경기였고, 그 경기에서 그동안의 설움을 멋지게 떨쳐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 경기마저 결과는 0:0.
ACL 조별 경기는 같은 조에 속해 있는 4개의 클럽들이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치르며 팀당 총 경기수는 6경기가 된다.
2015년 4월 22일 수요일,
ACL 조별 5차전 경기인 가시와레이솔 원정 경기날.
재작년과 작년, 연달아 일본 원정을 떠날 수 있었던 나는 가능하면 정말이지 꼭, 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이번엔 아주아주 컸다. 지나고 보니 시기적으로 축구를 가장 보기 어려웠던 시절.
원정은 고사하고 중계나 제대로 볼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직업상 퇴근이 밤 10시 아니면 11시였던지라..
그래도 다행히 반차로 근무를 조정해서 중계는 볼 수가 있었다. (반차라고 해도 퇴근이 오후 3시)
조별 첫 번째 경기인 가시와레이솔과의 홈경기를 비기긴 했어도 이후의 경기들에서 2승 1무를 기록하면서 총 승점 8점으로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고, 더욱이 이번 원정경기까지 이기게 될 경우, 마지막 6차전 경기와 상관없이 16강 진출을 확정 지음은 물론이거니와, 징크스처럼 계속된 가시와레이솔과의 악연도 끊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얘네들..
우리에게 무엇이, 얼마나, 대차게 쌓여 있길래 만날 때마다 이러는 걸까?
복수 혈전은 커녕 전반에만 내리 3골을 얻어맞으며 하프타임 스코어가 3:0..
아.. 서러워서 정말 눈물이 났다.
최선을 다해 뛰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의 선수들 표정에서 느껴지는 그 상실감이란,
거기에 늘 내 마음도 함께 주저앉아 버린다.. (정말 이 XX놈의 축구)
오늘도 정말 이렇게 또 끝나버리는 건가, 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후반전.
시간은 야속하게 흐르고 있었고, 그러던 중 모두의 간절함을 알기라도 한 듯 후반전 20분쯤,
오른쪽에서 날아온 크로스를 동국이형이 머리로 트래핑(자기에게 오는 공을 발, 허벅지, 이마, 가슴 등으로 받아 멈추게 하는 기술)을 한 이후, 아주 환상적인 자세의 오버헤드킥(자기의 앞쪽에 있는 공을 공중에 띄우면서 몸을 뒤로 눕혀 머리 너머로 차는 것)으로 첫 번째 만회골을 성공시켰다. 이후 이 장면은 '이동국의 베스트골' 영상 하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장면으로 남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종료시간을 10분여 앞둔 시간 다시 한번 동국이형이 왼쪽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는 멋진 중거리슛을 성공시키면서 그렇게 두 번째 만회골까지 넣게 된 것이다.
남은 시간 동안 '제발 한 골만 더'를 얼마나 간절히 외쳤던지..
하지만 아쉽게도 경기는 3:2로 끝이 났고, 가시와레이솔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그래도 다행히 조별 마지막 6차전 경기에서 우리 팀은 큰 점수차로 승리를 챙기면서 무사히 16강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그 시절의 동국이형은 ACL에서 골을 넣을 때마다 대회 최다골 신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었고, 그 기록은 선수 생활 마지막까지도 계속됐다. 하지만 그 대기록은 바로 은퇴 다음 해에 또 다른 'K리그' 출신 선수인 '데얀'에 의해 깨지게 된다.
(너무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그런데 만약, 데얀이 홍콩에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ACL 최다골의 주인공은 계속 동국이형이었으려나......?
그냥 내가 아쉬워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