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이후의 이야기

'딸은 이래서 고민거리예요?!'

by Honey

나는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볼품없이 작고 약했지만 생일이 빠른 탓에 남들보다 이른(흔히 '빠른'이라고 말하는) 나이인 7살에 국민학교에 들어갔고, 공평하게 두 살씩 터울인 우리 4형제 중 막내가 그 봄에 태어났다. 엄마는 내 밑으로도 5살, 3살의 동생에다가 이제 갓 태어난 막내까지, 정말 초인적인 힘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육아까지 하시면서 아빠의 내조도 도우시던 그런 분이셨다.

딱히 첫째라고 동생들을 더 챙기는 편이 아니기도 했지만, 어릴 땐 동생들이 많은 게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집안 환경이 바뀌고, 자랄수록 서로가 마음으로 의지할 형제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아주 늦게 철이 들면서야 알게 됐다.




아빠는 사진을 많이 찍어 주시던 분이셨다.

그래서 한동안은 가족들이 모이면 어릴 적 아빠가 만들어 주셨던 앨범을 꺼내보며 지난 시절을 얘기하곤 했었다. 그 시절 사진을 볼 때마다 특이한 점은 나를 뺀 나머지 형제들의 어린 시절이, 한 번 더 눈이 갈 정도로 참 '예쁜 어린이'들이었다는 거. 더 자세히 말하면 바로 밑에 여동생과 남동생의 특히 아기 때 모습은 누군가가 보면 아역모델로 당장 캐스팅하자고 할 만큼 정말 '예쁜' 외모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사내아이 같은 모습? 백일 즈음의 사진을 보면서는 엄마에게 "얘는 누구야? 진짜 못생겼다"(그저 나는 당연히 아닐 거라는 허튼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라고 했는데 내 사진이라는 대답을 들었을 땐 정말 충격적이었다. 물론 지금의 모습이 아주 다르다는 건 아니지만.




서른이 훌쩍 넘은 어느 날,

그날도 명절이라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데 모였고, 어린 시절 얘길 하다 어느 순간 앨범까지 꺼내보게 됐다.

역시나 동생들의 빛나던 외모에 감탄하면서도 내 사진을 보면서는 모두가 또 크게 웃고 있던 와중에 앨범을 한 장 더 넘겼고, 거기엔 6개월쯤 된 내가 엄마,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런데 역시나 이것도 영락없이 사내아이의 모습이다. 정말이지 안 예쁘게 생겼다..

가족들 또 모두 웃으며, 놀리며,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가운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그저 사진을 더 자세히 보고 싶던 나는 앨범에서 사진을 꺼내 들었고, 그때 사진 뒤에 뭔가 비치는 게 보였다.


"응? 이게 뭐지?"

하면서 사진을 돌려본 순간, 나는 그대로 말문이 막혀 버렸다..

세상에나 아빠가 사진을 찍을 당시에 나에 대한 메모를 해두셨던 것. 이후 그렇게 사진은 내내 앨범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가족 모두 메모가 남겨져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 수가 없었으며, 우연히 그날에서야 그 메모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날도 만약 사진을 꺼내보지 않았다면 정말 영영 몰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3개월쯤 된 사진엔 내가 남자아이 같아서 고민이라고 적으셨는데.. 그래도 6개월 차에 진짜 딸이 된 모양이다. 그런 딸은 이때부터 이미 아빠의 고민거리였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첫 딸이 태어나면서부터 노심초사 아끼시던 당신의 마음이 메모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참아보려 했지만 멈출 수 없는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고, 엄마 앞에선 아빠 일로 절대 울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이런 무방비 상태에 찾아든 아빠는 정말 어쩔 방법이 없었다.

나는 혹시나 더 있을지 모를 아빠의 흔적을 찾아보려 앨범의 사진들을 죄다 꺼내보았지만, 아빠의 메모는 3개월과 6개월에 찍은 두 장의 사진에만 있었고, 그리웠던 아빠의 글씨체까지 마주 하니 자라면서 내내 느껴졌던 그 마음이 여전히 곁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빠는 이렇게 온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 주셨는데, 지금의 내 모습도 아빠가 보시기에 '잘 자랐다'라고 하실만한 모습인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적어도 아빠의 얼굴을 떠올리는 일상마다 스스로에게는 부끄럽지 않은 나여야 할 텐데.. 그 시절 엄마의 나이가 된 내가 혹시 여전히 '고민거리'인 딸은 아닌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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