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남자축구팀은 좋은 성적을 내면서 결승에까지 진출을 했다.
결승에서는 숙명의 상대인 일본을 만나 국민적 관심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고, 결승전의 경기는 역시나 팽팽했으며, 승부는 연장까지 이어졌다. 연장까지 간 대접전 끝에 황희찬 선수와 이승우 선수의 득점으로 비록 한 골을 실점하긴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승리를 가져오면서 모두가 바라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의 김민재 선수와 송범근 선수가 돌아왔다.
2018년 9월 19일 수요일,
드디어 마지막 남은 90분,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원정 경기날이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원정팬들이 수원으로 향했다. 1차전의 결과가 형편없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선수들이 남은 90분 동안 최선을 다해 뛰어 줄 테니.. 나는 사실 결과에 대한 기대는 전혀 하지 않은 채 원정버스에 올랐다. 괜한 기대에 비례하는 상실감을 느낄까 미리 겁을 먹은 탓도 있지만(희한하게 축구 앞에선 멘털이 약해진다), 정말로 오늘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준다면 이 경기가 마지막이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더 진심이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편하고 부담 없는 마음으로 원정길에 오를 수가 있었다.
하지만 토너먼트가 주는 긴장감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막상 경기장에 도착해서 골대 뒤 원정석에 자리를 잡고 보니 심장은 터질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래, 여기까지여도 괜찮아, 후회 없는 경기만 하자'
간절함 속에 시작된 경기는 킥오프 3분 만에 손준호 선수가 이기제 선수와 부딪히면서 얻은 부상으로 더 이상 경기를 뛸 수 없는 상황의 변수가 생겼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긴 했지만 팀의 분위기는 흔들리지 않았고, 그러기를 경기 시작 10분 만에 아드리아노 선수가 팀의 첫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남은 시간은 이제 80분.. 선제골이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터지자 기대라는 게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전북이잖아!
긴장과 떨림은 점점 더해갔고, 전반은 더 이상의 추가 득점 없이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시작된 후반전, 이제 남은 시간은 45분이 마지막이다.
전북은 후반 시작 5분 만에 코너킥 찬스를 얻게 됐다. 키커는 이승기 선수.
코너에서 이승기 선수가 올려준 볼은 수원의 문전 앞에 노마크로 있던 최보경 선수의 머리에 그대로 배달이 됐고, 그렇게 팀의 두 번째 골이 터졌다. 이제 남은 시간은 40분, 순식간에 한 골차로 따라잡아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 기대를 하게 됐다.
'해볼 만 해!'
원정팬들의 목소리는 더욱더 커졌고, 팀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나 열심히 수원을 골문을 두드리던 후반 25분, 오른쪽에서 이용 선수가 올려준 크로스가 이번엔 수원의 수비수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던 김신욱 선수의 머리에 정확히 배달됐고, 그렇게 팀의 세 번째 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합계 스코어는 3:3, 원정 득점도 동일하다. 여기서 한 골을 더 터뜨리는 팀이 준결승으로 가는 것이다. 원정석은 순식간에 열광적인 함성으로 가득 찼고, 이미 여러 사람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도 있었다. 물론 나도.. 내 눈물의 이유는 동점까지 만들어낸 팀에 대한 고마움과 감격도 있었지만, 그 감격을 이끌어낸 서러운 마음이 터져버린 게 더 컸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지는 건 너무 싫었고, 더욱이 우리의 잘못에 대한 비판이 아닌 (비아냥에 가까운) 무분별한 비난을 가장 많을 들을 수 있는 곳이었던 이유도 있다.
이제 남은 시간은 20분, 이 시간 안에 우리 팀이 추가 득점을 하는 게 가장 최상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후에 계속된 공격에도 수원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고, 그렇게 경기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주어진 추가 시간, 수원의 조성진 선수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아드리아노를 잡아채는 파울을 범하면서 페널티킥을 얻게 됐다. 순간 선수단과 원정석은 마치 승리를 확정 지은 것처럼 환호로 가득 찼고, 나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계방송을 하던 방송사의 지미집 감독은 카메라를 빙 돌리며 골대 뒤에 있는 우리들에게 '축하드려요'라는 인사를 '미리' 건네기도 했다.
그렇게 아드리아노와 수원의 신화용 골키퍼가 마주 섰다.
그리고 신화용 선수는 아드리아노의 페널티킥을 정확하게 막아냈다...
나는 사실 이때 이후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미 혼절하다시피 주저앉은 상태였고, 이 경기가 연장으로 갈 경우 승부차기까지 가서 좌절하게 될 몹쓸 그림이 미리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고 연장에서 승부를 낼 수 있는 팀이었다면 그 많은 승부차기에서 그런 일들은 없었을 테니까..)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것처럼 결국 경기는 연장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운명처럼 다시 승부차기와 마주했다. 승부차기의 내용도 사실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제대로 서서 볼 수조차 없었으니까...
결국 경기는 승부차기에서 '또' 졌다. 하지만 진 건 정말 괜찮았다.
그럼에도 집에 돌아오는 길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오늘의 이 한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사력을 다해 뛰었는지, 그리고 그곳에 모인 모두가 정말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팀과 함께 했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런데도 당당하게 어깨 펴지 못하는 모습들에, 그리고 모두가 운에 맡길 수밖에 없던 그 승부의 결과에 좌절해야만 했던 순간들에.. 축구 정말이지 너무나 서럽고 마음이 아파서......
이날의 축구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이 가장 힘든 날로 기억된다.
한동안은 같은 경기장으로 원정만 가도 그날의 일들이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눈앞에 그려져 마음이 아려오기도 했으니......
사랑하는 내 팀을 만난 이후로는 개인적인 대부분의 일정조차 팀의 경기 날짜에 맞추고, 일상의 힘듦도 축구장에서 위로를 얻으며, 팀이 힘들거나 아플 때면 같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다.
그런 우리 모두는 때로 삶의 전부가 돼도 좋을 만큼 '축구에 정말 진심인 편'이다.
- 이때의 일기들을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았다. 지금까지도 축구를 보면서 내 마음이 가장 힘들었던 날이었기에 다시 기억하는 지금 이 순간의 마음도 너무 힘들다. 우린 이만큼이나 매 순간 축구에 정말 진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