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전주성,

by Honey

5월에 무관중으로 시작된 축구가 6월에도, 7월에도 계속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들의 축구가 다시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은 분명했지만, 중계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축구는 여전히 뭔가 낯설면서도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캐스터와 해설자의 목소리 사이사이 선수들의 외침이 채워지며, 이런 낯선 축구 생활이 어쩌면 계속될 수도 있겠구나.. 싶던 7월의 마지막 주, 프로축구연맹의 새로운 공지가 떴다.

몇 번의 코로나 위기 시점들이 있긴 했지만 모두가 방역에 열심히 힘써준 바, 8월의 경기부터 부분 유관중 입장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물론 당시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원하는 자리 어느 곳이나 모든 관중이 들어찰 수는 없었다.

부분 유관중 경기의 입장 제한은 전체 좌석수의 10%로 정해졌고, 육성응원은 여전히 금지됐다.

마스크로 입과 코는 철저하게 가려야 했으며, 선수들에게는 환호 대신 박수로 응원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어찌나 반갑던지.. 2월 중순의 첫 경기 이후 거의 6개월 만에 다시 축구장을 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2020년 8월 1일 토요일,


8월의 첫날, 미리 지정 좌석을 예매한 후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물론 입장부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현장 판매로는 티켓을 구매할 수도 없고, 반드시 사전에 예매한 티켓으로만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으며, 발열체크 또한 필수사항이었다.

입장 후에도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반가운 인사' 보다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데 만족해야 했으며,

앞뒤, 옆으로 비워진 자리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전염병이 얼마나 엄청난 놈인지 더 현실감 있게 느낄 수가 있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약 42,000석의 좌석으로 이루어져 있다(2023년 현재, 좌석교체사업으로 인해 전체 좌석수가 36,781석으로 축소되었다). 그중에 10% 숫자의 관중 입장이 허용되니 약 4,000명가량의 관중 입장이 가능한 셈이다. 하지만 워낙 오랫동안 거리 두기가 이어져 온 탓에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대한 거부감이 완연하던 시기였고, 오랜만의 부분 유관중이긴 하지만 '과연 관중이 어느 정도 오긴 하려나?' 하는 약간의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우리들의 축구를 기다려왔던 3,000여 명에 가까운 팬들이 경기장에 모여들었고, 방역수칙 또한 너무나 잘 지키며 모두가 안전한 축구를 그렇게 즐기고 있었다.


KakaoTalk_20230116_145927013.jpg 거리두기 잘 지키는 우리들, 흡사 레고 블록들 같아 보이기도 했다


유관중으로 치러지는 첫 번째 리그 경기의 상대는 포항이었다.

당시 우리 팀은 3라운드부터 지켰던 1위의 자리를 11라운드부터 울산에게 내준 채 2위 자리를 줄곳 지키고 있었으며(이건 무슨 지난 시즌 데자뷔인가..), 포항은 시즌 초반 주춤했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약간의 상승세를 타고 있는 중이었다.


경기는 시작되자마자 포항의 매서운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쉬운 결정력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만큼 쉴 틈 없이 우리의 골문을 두드리고 있던 (포항 참 쉽지 않아..) 전반 30분, 팔라시오스 선수가 우리의 수비수 최보경 선수에게 무리한 파울을 범하며 퇴장을 당하게 되고, 이후 수적 우위를 점한 전북은 공격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격적인 분위기에도 양 팀 모두 득점 없이 전반전을 마치게 됐고 이어진 후반전,

후반이 시작되고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포항의 송민규 선수에게 선제 실점을 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실점 장면이 우리의 응원석 앞에서 약간은 치욕스러운(?) 알까기처럼 보이면서 안타까움이 더 컸다.

(근데 이날의 경기는 전후반 양 팀 진영이 왜 반대였던 걸까.. 이건 도무지 기억이 안 나네... 원정석 운영이 안되긴 했지만...)

한 명이 더 많은 상황에서도 뒤처지고 있던 경기는 금세 (2020년에 팀을 먹여 살렸던) 손준호 선수가 동점골을 만들면서 분위기를 다시 가져왔고, 그로부터 1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김보경 선수가 추가골까지 넣으면서 결국 전북의 역전승으로 끝나게 됐다.


목소리를 내면서 환호할 수는 없었지만 힘찬 박수로 오랜만에 만난 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냈고, 이렇게라도 당신들 뒤에 이제는 우리가 있다며 하나 된 팬들의 마음도 함께 전했다.

그리고 우린 이렇게 귀한 홈경기 하나를 겨우 보며(공식적으로 원정 경기는 원정팬 출입 불가 방침이 지속되고 있었다), '앞으로는 그래도 점점 더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던 중, 그 목사의 탈을 쓴 악마 새끼가 주도한 집회 덕에 다시 또 기약을 알 수 없는 무관중 경기를 만나야만 했다..

(참고로 나는 크리스천이며 우리 아버지는 목사였다)



광복절 집회 이후 다시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 대유행 탓에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격상됐으며, 우린 그렇게 또다시 화면으로만 축구를 볼 수 있는 여름의 남은 날들과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마저도 정말 최악의 상황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그 누구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배경사진 출처-'뉴시스' 기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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