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시즌,
팀의 시즌초 성적은 상승세를 달리는 듯 보였다. 김상식 감독이 선언한 '화공'까지는 아니었어도 개막 후 10라운드까지 8승 2무의 성적을 거두며 무패행진과 동시에 리그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으니..
그리고 이어진 11라운드는 3년째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는 울산과의 원정경기였다.
중요한 승부처인만큼 승리를 거두며 1위 자리를 넘보지 못할 만큼 멀리 달아나면 좋았을 것을 경기는 양 팀 모두 무득점에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그래도 여전히 리그 1위이고 무패다.
그리고 주말로 이어진 강원과의 원정 경기에서 또 무승부를 거둔다.
하지만 지금의 순위와는 별개로 이쯤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김상식 감독이 말한 '화려한 공격 축구'의 모습을 시즌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제대로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리그 1위를 기록하고는 있지만 '꾸역승'이라는 표현이 알맞을 만큼, 통쾌하고 재미난 축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경기력이었다.
더군다나 '닥공' 시절의 축구로 눈높이가 높아진 팬들의 눈에도 이러한 경기력은 성에 찰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 1년 차 신입에, 그리고 우리의 감독이 아닌가.. 그러니 조금의 시행착오는 믿고, 지켜보며 기다려줄 필요도 있다. 그리고 설마, 이 선수단을 가지고 1년 내내 이렇게야 하겠어...?
이런 아쉬움이 조금씩 드는 가운데 이어진 제주와의 경기에서 팀은 또 무승부를 기록하게 된다.
3경기 연속 무승부다. 그사이 2위 울산과의 승점 차이는 더 좁혀졌고, '전북다운' 경기력을 기대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021년 5월 9일 일요일,
이러한 분위기를 반드시 깨야 했다. 1위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전북다운 축구를 하는 게 중요했다.
중요한 승부처에서 만난 오늘의 상대는 '수원삼성'이다. 앞선 축구일기들의 내용처럼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되는 상대다.. 최근의 리그 10경기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을 정도로 수원만 만나면 보란 듯이 해내던 전북이었기에 오늘 모두의 기대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경기는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가) 믿지 못할 정도로 일방적으로 우리가 털렸다..
꼭 이겨도 시원치 않을 경기에서 무려 3실점이나 하고 있었고, 수원은 그런 우리를 상대로 리그에서 1268일 만에 승리를 챙겼다. 13라운드까지 이어졌던 리그 무패가 깨졌고, 2위 울산과의 승점 차이는 더 좁혀졌다.
2021년 5월 19일 수요일,
가장 중요한 승부처에서 울산을 다시 만났다. 울산과의 승점 차이는 단 2점 차. 두 경기 이상 벌어졌던 승점 차이가 어느새 이렇게나 좁혀졌다. 팀은 한 달 가까이 승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고, 더욱이 직전 경기에서 말도 안 되는 패배를 기록한 터라 오늘의 경기를 꼭 이겨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경기는 선제 실점을 하고, 한교원 선수가 동점골과 역전골을 다시 넣을 때까지만 해도 '그래, 우리가 울산은 이기지'라는 말도 안 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더랬다. 금세 동점골을 허용하고, 정말 '탈탈' 털리다 못해 4골이나 실점할 줄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렇게 울산과의 경기마저 또 졌다.
3경기 무승부에 이은 연패다. 그리고 오늘로써 1위의 자리마저 빼앗겼다..
2021년 5월 23일 일요일,
연패를 기록하고 만난 팀은 최근 분위기가 가장 좋은 대구다. 대구는 창단 이후 최초로 6연승을 달렸으며, 직전의 경기에서는 무승부까지 거둬 7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기록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우린 지금 갈 길이 급하다. 최근의 상대전적 기세에 힘입어서라도 오늘 꼭 승리를 챙겨야만 했다.
그런데 우리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좀처럼 풀리지 않던 경기는 후반전 대구의 세징야에게 된통 한 방을 크게 맞으며 또 승점을 챙기지 못했고, 세징야의 상의 탈의와 함께 포효하던 세리머니에 또 한 번 자존심을 구겨야 했다. 그리고 3연패다.. 최근 6경기의 기록이 믿을 수 없는 3무 3패.. 우리 팀이 3연패를 했던 게 과연 언제였던가.. (일각에서는 2007년이나 2008년까지 거슬러 가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2013년 시즌 막바지에도 3연패를 한 적이 있다. 원정 3연전이었고, 나는 그 경기들을 또 다 갔었지...)
오늘의 경기로 우승 경쟁은 커녕 순위는 한 계단 더 내려섰고, 상식이형의 화공마저 이제는 의문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래도 리그 3위를 하면서 배부른 소리나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린 지금 벼랑 끝에 선 기분이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뛰고 혹시라도 진다면 그것만으로도 박수 쳐 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혹은 모두가 느끼는) 요즘의 전북은 '간절함'이 없다.
물론 90분을 허투루 뛰는 선수들이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지금의 우리가 이게 정말 최선이었는지는 이제 나도 한 번쯤 묻고 싶다..
매일 이기는 축구를 바라는 게 아니다.
항상 제일 높은 자리에 있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물론 시즌을 치르다 보면 시행착오라는 것도 겪기 마련이다.
다만 지금의 이러한 분위기가 우리의 '고질병'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저 금세 스쳐 지나가는 봄날의 가벼운 감기 같은 것이길..
- 이때보다 더 최악은 없을 거라는 믿음으로 썼던 일기였는데.. '아름답고 행복한 우리들의 동화'가 점점 '잔혹동화'가 되어가는 것 같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