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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곱셈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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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병민 Mar 20. 2017

백만 불짜리 피드백

故 장영희 교수가 남긴 마지막 선물

2009년 4월 20일, 

새벽 2시 13분.


그날, 그 시간에 도착한 

한 통의 메일이 아직도 

제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 그것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자 

충고였고, 조언이었습니다. 


당시 세 번째 책을 쓰고 있었던 저는 

책에 집어넣을 인터뷰를 위해 

인터뷰이 후보 중 한 분이었던 

故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님을

이메일로 컨택해 인터뷰에 대한 

참여 의사를 여쭤봤었습니다. 


예전부터 몸이 어떤 식으로 불편하셨고, 

그간 어떻게 치료해 오셨는지를 

매체를 통해 대략적으로 접해왔기에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꼭 인터뷰를 성사시켜야겠다는 마음에 

진심을 담아 편지를 작성해 보내드렸지요. 


역시 기대가 과했던 걸까요. 

며칠이 지나도 묵묵부답, 

저는 조금씩 초조해졌습니다. 

시간은 점점 가고 있고,

아쉬운 마음도 조금씩 쌓여가면서 

슬슬 체념 모드로 돌입하고 있었지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몸이 편치 않으신가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그래도 메일을 읽어주셨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 대한 감사편지라도 

써서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편지를 작성하기 위해 메일함을 열어봤는데, 

교수님으로부터 메일이 

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새벽 2시가 넘은 시각에 말입니다. 


내용은 아주 짤막했지만, 

저는 그 메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현재 입원가료중이라 좀 힘듭니다. 

죄송합니다.


단 두 개의 문장입니다. 

아니, 사실 그냥 한 문장일 뿐입니다.

대단한 내용도 아니지요.

그런데 이것이 왜 제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지 아세요? 


미처 몰랐던 일입니다만, 

당시 교수님은 병세가 악화돼 

투병 중이셨습니다. 

그간 치료를 받아온 척추암이 

안타깝게도 2008년에 

다시 간으로 전이됐더군요. 

오랫동안 잘 참고 견뎌오셨는데,

제가 연락드린 시점이 

교수님께는 매우 안 좋은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피드백을 남기신 후 

약 3주 뒤인 2009년 5월 9일에

교수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아픈 상태에서, 

그 늦은 시각에 

전혀 일면식도 없는 한 남자가 보낸 

메일에 대해 답변을 남기셨던 교수님. 

교수님은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요.

비록 조금 늦게 도착하긴 했어도, 

그리고 비록 길이가 조금 짧긴 했어도 

충분히 그 진심이 

묻어나는 답변이었습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그것도 지금 최악의 병으로 

투병중인 상황에서 

회신을 남기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 투병 중이란 사실은 빼지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회신을 남기시겠습니까.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앞으로도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사람에게 

답변을 남기실 것 같은지요.



『곱셈인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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