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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곱셈 인생

'언제 한번'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자신의 인간관계를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

by 허병민

어느 날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하도 오랜만에 받은 전화라, 무척 반가웠지요.


지인 曰 “병민씨, 저예요. 이게 얼마만이야.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지.

한 2년 반 전이었나.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요즘 무슨 일 해? 결혼은? 어쩌구저쩌구…”

몇 십 분 동안,

서로 그야말로 폭풍 수다를 떨면서

간만에 회포를 풀었습니다.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다가왔고,

저는 마지막 멘트로 지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언제 한번 봐요.”


지인은 곧바로 이렇게 화답했지요.


“좋지! 조만간 서로 날 잡아봅시다.

히야, 이게 대체 얼마만이야.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빨리 보고 싶네.”


‘그래요?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좋아.’

그의 화답에 바로 맞장구를 쳤습니다.


“말 나온 김에 아예 지금 날 잡아보죠, 뭐.

선생님은 언제 시간 되세요?

전 다음 주 월요일이나 수요일 저녁이 괜찮은데.

아, 금요일도 괜찮네요. 선생님은요?”


들떴던 목소리가 ‘급’ 가라앉으면서,

조금씩 머뭇거리는 말투로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어, 그래요. 뭐, 나쁘지 않지.

잠깐만요 그럼. 스케줄 좀 볼게요… 하하.”


‘뭐야 이 어색한 웃음은.

좋다고 한 거, 뻥이었나? 왜 망설이는 거지.’


이런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지요?


갑자기 불편해지고 어색해지고 뻘줌해지는,

참 뭐라 표현하기가 힘든 묘한 기분,

한 번쯤 맛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게,

뜸을 들인 그의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

돌이켜보면 저도 지금까지 상대방에게

자주 그렇게 행동해왔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아니라고요?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요?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는지요.

자신이 그 동안 어떻게 행동해왔는지를

한번 떠올려보세요.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 우리 언제 한번 술이나 한 잔 하자.”

친구가 이렇게 대꾸합니다.

“좋아. 언제? 내일 저녁 어때? 시간 돼?”


갑자기 날아오는 ‘펀치’에

정신이 혼미해진 적, 혹시 없나요.


‘당장 만나자고 한 건 아닌데,

으레 그러하듯 그냥 지나가는 말로,

사실상 형식적으로 내뱉어본 말인데

짜식, 왜 이리 진지하게 나와?’

살짝 당황했겠지요.


우리가 만남과 관련해서

상대방에게 흔히, 별 생각 없이,

자기도 모르게 사용하는

단어들이 뭔지 아시나요?


- 언제 한번

- 조만간

- 곧(빈도는 낮은 편)

- 나중에(빈도는 낮은 편)


참으로 애매합니다.

정확히 언제를 말하는 건가요.


시간이 되면’ 보자는 거겠지요.

물론 그 시간이 언제인지,

또 실제로 서로 시간이 될지는

나도 모르고 그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른다’는 사실을

서로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나의 소중한 시간을

너에게 주겠다’라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시간이 돼서’)

그와 약속을 잡겠다는 것은

그를 그만큼, 그 정도로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이지요.


그렇게 놓고 보면

우리 언제 한번 보자’라는 말은

사실 ‘우리 보지 말자’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진짜로 그를 볼 생각이 있다면,

언제 한번 보자고 하는 대신

제대로 약속 날짜를 잡겠지요.)


그 ‘언제’가 언제인가요?

까놓고 말해,

그도 모르고 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그도 알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의례적으로,

관행적으로,

형식적으로

그냥 내뱉는 거지요.

실제로는 그에게나 저에게나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언제 한번 보려 하지 말고

생각났을 때 지금

확실하게 약속을 잡아보세요.

그리고 상대의 반응을 지켜보세요.

그 반응이 어떠냐에 따라

자신이 진짜 봐야 할 사람인지

아닌지가 갈립니다.


[Food For Thought]


마지막 부분을 한번 이어가볼까요.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지요.

상대방이 여러분에게 정확한 약속 날짜를 제시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그 반응이,

바로 여러분의 상대방에 대한 생각이자

그에 대한 마음일 겁니다.

아, 물론 진짜 바빠서,

혹은 혀가 꼬여서 버벅대는

‘불가피한’ 경우는 제외해둡시다.


『곱셈인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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