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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병민 May 21. 2017

스스로를 믿는 마음을 얻는 법

단 하나의 경험이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Give voice to your heart.

당신의 마음을 표현하라.

―Tiffany & Co.


내 인생의 전환점은 언제였던가. 그 이야기는, 한 편의 짤막한 평론에서 시작된다.


2000년 가을,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던 나는 타과(국문과) 수업의 발표 준비로 도서관에서 문학잡지란 잡지는 다 뒤적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한 네 시간 쯤 빈둥댔던가. 한 잡지를 이리저리 넘기고 있는데 그 안에 실린 평론 한 편이 내 눈길을 확 잡아당겼다. 뭔가, 느낌이 왔다. 범상치 않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을 거란, 기묘한 예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뚜껑을 열기도 전에 이미 가슴이 뛰고 있는, 그 희열을. 2000년 가을 이전까지의 내 인생은 과연 뭐였을까 싶을 정도로, 그것이 나에게 선사한 충격은 꽤 묵직했다.


그 평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인 김수영을 화끈하게 ‘까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김수영이 누구인가? 그 유명한 시 ‘풀’ ‘폭포’를 쓴, 문단에선 거의 신화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 아닌가. 김수영은 풀을 눕혔지만, 이 평론가(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건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김수영을 눕혔다. 그것도, 아주 보기 좋게 ‘때려’눕혔다.


비록 문학에 대해 아는 거 하나 없는 법학도였지만, 기본적인 상식 정도는 갖고 있었던 나는 필이 꽂힌 상태로 그 자리에서 그 글을 단번에 읽어버렸는데, 너무 들뜬 나머지 잡지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던 기억이 난다. “Revolution!”


문학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 글은 확실히 새롭고 흥미로웠다. 글의 소재나 내용으로 봤을 때, 아예 접근법 자체가 달랐다. 기존의 평론들은 거의 대부분 현실비판적인 지식인으로서의 김수영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반면, 이 평론은 여성을 바라보는 김수영의 시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그의 시에 사용된 몇 가지 여성 비하적인 단어들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이 년’ ‘저 년’ ‘여편네’ ‘창녀’ ‘갈보년’ ‘이게’ ‘그것’ 등등. 토하고 싶을 정도로 영 불편한 표현들이지만 그 글을 쓴 평론가가 사용한 관점, 그것만큼은 정말 센세이셔널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어떤 평론가도 감히(?)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이렇게 속 시원하게 김수영을 박살낸 평론가는 없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신춘문예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해볼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을 해보고 싶어졌다. 또 기왕에 저지를 거면, 이 평론처럼, 아니 이 평론 이상으로 제대로 저질러보고 싶었다. 단순한 대리만족과 대리배설, 그 이상을 원했다. 어떤 기분일까.


물론 무턱대고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르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건 아니다. 문학에 대한 기초가 전혀 없었던 평범한 법학도가 뭘 안다고, 겁도 없이 그냥 덤비겠는가. 그런데 희한한 건, 그때 내 머릿속은 이미 완성된 한 편의 평론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거 아닐까.’ 뭘 믿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우려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사실 가질 필요가 없었던 거다. 애초, 잃을 게 없었으므로. 평론을 완성해 신문사에 제출했다고 치자. 심사위원들이 글을 보고 “이건 뭐, 거의 발로 쓴 수준이네.”라고 한다 해도 티끌만큼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왜? 난 국문과 출신이 아니니까. 나에게서 뭘 바래?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테니, 당선되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놀리거나 얕잡아볼 사람도 없을 거 아닌가.


그런데 신춘문예 준비를 하면서 한 번도 가져보지 않았던 우려가, 후에 오히려 주변의 관심사가 될 줄이야. 2004년 1월,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하나 있다. “어떻게 당선된 거예요?” 이것은 ‘법학과 출신은 평론 부문에 당선될 수 없다’는 뜻이 담긴 반어적 질문이다. 지금까지 그런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잃을 게 없었기 때문이에요. 전 국문과 출신이 아니거든요.” 식으로 점잖게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이게 참 찜찜한 거다. 그게 다일까. 그게 이유의 전부일까.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드라마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이 목소리 쫙 깔고 오남기 학회장에게 내뱉은 “저, 장준혁입니다.”처럼 뽀대 나게 말하고 다니고 싶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저, 허병민입니다.” 그런데 역시, 이런 건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인가 보다. 정작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건넨 답변은 다소 엉뚱하게도, 임팩트가 한층 떨어지는 이거였다. “저는 단 한 번도, 제가 당선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잠깐, 미리 오해를 좀 풀고 넘어가야겠다. 첫째, 절대 건방 떨려고 한 말이 아니다. ‘나, 원래 이 정도로 잘나가는 사람이야’를 의도한 게 아니라는 것. 둘째, 절대 멋져 보이려고 한 말도 아니다. 말만 그럴 듯하게 번지르르하게 포장해서 주변에 잘 보이려고 한 말이 아니라는 거다. 셋째,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절대 머리 굴려서 한 말이 아니다. 이유를 꼼꼼히 분석해 준비한 대답이 아니라는 것.


곰곰이 생각해보니, 신기하게도 나는 진짜로 단 한 번도 당선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긍정적인 마인드는 그럼 선천적인 거냐? 그럴 리가. 난 생각이 많아서 탈인, 까탈스럽기 짝이 없는 ‘비판적 신중파’에 가깝다. 그럼 만반의 준비를 했기 때문이냐? 준비를 해봤자 얼마나 준비를 했겠는가. 지금에 와서야 말할 수 있지만 당선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그 바탕에는 나를 밀어주고 있던 ‘빽’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설렘


집필에 집중하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평론을 쓴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놀이를 합쳐놓은 것 이상으로 신나고 재미있는 행위였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고 느낄 정도로 미치도록 행복에 겨웠다.


PR 컨설팅 전문업체 THE LAB h의 김호 대표는 언젠가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은 적이 있다.


친구와 저녁식사를 했다. 그 친구는 자기 사업을 일찍 시작하였고, 한 마디로 돈을 잘 벌어, 앞으로 평생 먹고 살 걱정이 없는 그런 친구였다. 사업을 시작하는 나로서도 그 친구의 성공 비결이 무엇일지가 궁금했다. 그 친구의 대답 중에 흥미를 끄는 부분이 있었다. 성공의 비결은 자신감(自信感)이라는 것인데, 이는 자신(自)을 신뢰(信)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네”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성공한다는 것이다.


자신감. 우리는 보통 이 단어를 당장 충전해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배터리처럼 취급한다. 방전되면 충전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그런데 자신감은 생각보다 꽤 속이 깊은 친구다. 그런 단순 일회성 에너지 정도로 취급해버리기엔, 솔직히 너무나 아까운 친구다.


한자를 번역해보면 자신감, 그것은 스스로를(自) 믿는(信) 마음(感)이다. 자신감과 스스로를 믿는 마음. 둘을 크게 소리 내어 읽어보면 느낌이 서로 꽤 다르게 다가온다. 자신감이란 것이 그냥 한 번 “으쌰으쌰” 해서 얻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닌 느낌으로 다가온달까. “나는 나를 믿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당연하지!”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자신감이라는 거다.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건, 준비를 하는 그 과정이 정말로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 행복의 근원은 재미(fun)였고,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스스로를 믿는 마음’을 심어준 것이다.


물론 열심히 준비를 한 끝에 제출한 평론이 실제로 얼마나 수준 있는 평론이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또 그렇게 열심히 준비를 한 끝에 평론가로 등단했다고 해서 과연 내가 얼마나 실력이 있는 평론가로 거듭난 것인지, 그것 역시 나는 잘 모른다. 그건 나의 몫이 아닌 심사위원들과 독자들의 몫이므로. 내가 알게 된 것은, 딱 하나다.


실력이 스스로를 믿는 마음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것. 

실력만이 스스로를 믿는 마음을 꽃피우게 하는 건 아니라는 것. 

실력이 대외적으로 증명된 사람만이 

스스로를 믿는 마음을 소유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실력을 뒷받침해주는, 

더 본질적인 무언가가 갖춰져야 한다는 것.


KFC의 창업주, 커넬 샌더스. 살면서 수많은 실패를 겪어온 그는 다시 한 번 도전해보겠다는 굳은 결의로 60대 중반의 나이에 자신이 개발한 치킨 조리법을 갖고 동업자를 찾아다녔으나 무려 1,008번이나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1,009번째에 드디어 자신의 조리법을 사겠다는 동업자를 만난 샌더스. 당시 그의 나이, 67세였다.


우문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을 해봤다. ‘1,008번의 거절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자신의 조리법에 대한 확신. 실패에 굴하지 않는 도전 정신. 포기를 모르는 프로 의식. 다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걸 다 합쳐도 뭔가 개운하지 않은 건 왜일까. 혹시 이 모든 덕목들을 지탱시켜줄 만한, 뭔가 좀 더 근본적인 것이 그 밑에 깔려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의 조리법을 바라보고 있던 샌더스의 눈빛에 어쩌면 그 힌트가 있는 건 아닐까. 주변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느끼는 행복감, 스스로를 믿는 그의 마음에서 연유하는 건 아닐까.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경쟁자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경쟁자를 이기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거라고. 공감한다. 하지만 난 여기에서 감히 한 걸음 더 나아가보고 싶다. 경쟁자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지금 느끼고 있는 순수한 ‘긍정의 감정’, 바로 그 감정에 온전히 집중하는 거라고.


뭐, 그렇게 했는데도 일이 좀 안 풀리면 어떤가. 남보다 좀 뒤떨어지면 또 어떤가. 내가 그 일을 하면서 진심으로 기쁨을 만끽했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은 거 아닐까.


“저는 단 한 번도, 제가 당선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어쩌면 내가 평론의 맛에 빠져 글쓰기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있던 10년 전 그때 그 마음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는 게 바로 이 말 아닐까.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라는 것, 그것은 ‘필요’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걸 거다. 진심으로 뭔가에 빠져 있다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그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법이니까.


2015년 3월

Talent Lab 서재에서, 

허병민



누구나 크건 작건 자기만의 터닝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에 영향을 받거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심지어 그것이 터닝 포인트인지 인식조차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세계적인 석학·리더들의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에는 몇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기회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똑같은 경험도 본인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것을 토대로 어떠한 행동을 취하는지에 따라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처럼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겠지요. 둘째,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셋째, 행동했다는 겁니다. 이러한 화두를 참고하셔서 제가 선정한 78명의 석학·리더들, 그들의 인생을 바꾼 『준비된 우연』의 순간들을 만나보셨으면 합니다.


『준비된 우연』에서


『준비된 우연』 네이버 매거진 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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