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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곱셈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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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병민 Aug 12. 2017

가방 속에, 당신의 미래가 있다

작가가 되고 나서 독자분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아온 질문들이 몇 개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저에게 맞는 일이 뭘까요?


매우 비슷비슷해 보이는 

이런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이 듭니다.

인생을 그다지 오래 살지도 않은 제가,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는 질문자분께 

감히 뭐라고 대답해드려야 할지 참으로 막막합니다.

툭 까놓고 말해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매번 느끼지만,

진지하기 짝이 없는 자세로 질문하는 분께

그렇게 말할 순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막막함이나 난감함도 잠깐,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언제나 딱 하나로 귀결되더군요.

물론 듣는 사람 입장에선 

꽤나 알쏭달쏭하게 들렸을 겁니다.


“지금 당장, 가방 안을 들여다보세요.”


‘할 말이 없으면 그냥 가만히 있지, 장난하냐?

설마요, 장난하는 거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는 방법,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자신에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은

다름 아닌 여러분의 가방 속에 있습니다.

그것도 집에 있는 이 가방, 저 가방,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아무 가방에나 있는 게 아니고,

여러분이 매일매일 들고 다니는, 

그 가방 속에 있습니다.


저는 2008년 6월에 

마지막 직장이었던 LG생활건강을 퇴사했습니다.

제가 LG생활건강을, 

뒤돌아보지 않고 일말의 후회도 없이 

기분 좋게 때려치울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제가 평소에 들고 다니는 

가방을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퇴사하기 정확히 일주일 전의 일입니다. 


여느 날처럼 저는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방에 가방을 내동댕이치고 

곧바로 침대로 직행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가방을 제대로 안 닫고 다녔는지

안에 있는 물건 몇 개가 빠져나오더군요.

워낙 주변이 정신없어지는 걸 싫어하는 완벽주의자라 

그 물건들을 다시 가방 속에 집어넣으려는데,

불현듯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는 겁니다.


‘나는 가방 속에 뭘 넣고 다닐까.’



완벽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흔한 증상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호기심 천국’이라는 것.


뭐,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이라 

호기심이 당길 만한 요소는 전혀 없었지만

특별히 할 일도 없어 한번 뒤져봤습니다.


[그때가 벌써 9년 전의 일인데, 

당시 사진을 찍어놓지 못해 

그때 들어 있었던 물건의 종류에 대한 

기억을 복원해 다시 한번 찍어봤습니다.]


막상 가방을 열어보니 

가방이 생각 외로(?) 

매우 조촐하게 꾸려져 있더군요.

저는 제 가방이 이렇게 

심플하게 꾸려져 있는지 몰랐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취침하기 전에

항상 싸오던 가방이지만

그 안에 무엇을 넣고 다녔는지

실제로 자세히  적이 없었던 겁니다.

더 정확히 말해 

의식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거지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항상 그래왔듯이 당연히 알아서, 

무의식적으로 챙겨 넣었을 테니까요.



가방에서 물건들을 하나씩 빼 

바닥에 펼쳐놓으니

딱 네 개의 물건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책, 노트북, 만년필(필통 포함), 그리고 수첩.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리가 띵했습니다.

가방 안에 어떤 대단한 물건들이 

들어 있어서가 아니라,

가방 안의 그 물건들이

제가 20대 초반부터 

서른세 살(당시의 나이) 때까지

단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가방에 집어넣고 다녔던 물건들이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을 다니는 내내, 

또 사회에 나와서 회사를 다니는 내내

언제나 예외 없이 가방 속에 

노트북과 책, 만년필, 

그리고 수첩을 들고 다녔습니다.

다른 물건들이 가방 속에 

추가로 들어간(혹은 반대로 빠진) 적은 있어도,

이 네 개의 물건만큼은 

결코 빠진 적이 없지요.


그 순간, 알아차렸습니다.

제가 그동안 마음속으로 무엇을 원해왔는지를.

제가 원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뭐였는지를.


활자중독자로서 저는 글을

쭉 짝사랑해왔던 겁니다.                      

언제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또 언제나 글을 읽는 것을 좋아했던 거지요.

요컨대 활자를 빼놓은 제 생활은 

이미 제가 원하는 생활이 아니었던 겁니다.

정작 제 자신은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상황에서,

오히려 생뚱맞게도 제 가방이 

그 사실을 환기시켜주었던 거지요.

설마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에서

제가 ‘원하는 것’을 찾아낼 거라고는 

정말이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가방을 연 그 날 이후 정확히 일주일 뒤에,

저는 LG생활건강을 떠났습니다.                       

그것도 한 치의 미련도 없이. 


그래서 이미 ‘떠난’ 자로서,

아직 ‘떠나지 못한’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방 속엔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요?


* 이 글은 저서 『나의 꿈은 내가 되는 것이다』(2014)에 들어갔던 꼭지의 저자 원본입니다.

   글은 2013년 5-6월에 썼고, 내용 안에 들어간 '9년'만 현재를 기준으로 기입했습니다.



* 참고로 이것이 현재 제가 들고 다니는 가방입니다. 클릭해서 보실 것을 추천. 



오늘 외출할 때 들고 나간 가방(속에 넣은 것들, 하나도 빼지 말아주세요)을 책상 위에 올려놓아주실는지요. 자, 지금부터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다 꺼내시는 겁니다. 어떤 물건들이 들어가 있는지 유심히, 하나씩 살펴봐주세요. 사람마다 각각의 물건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나 관점, 애정의 척도나 수준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자신이 그 물건들 하나하나에 대해 느끼고 있는 것을 머릿속으로든 메모를 통해서든 한번 정리해보세요. 어떤 물건들이 여러분에게 아무런 감정도 안 불러일으키나요. 혹시 새롭게 혹은 색다르게 다가오는 물건이 있는지요. 그 ‘새로움’ 혹은 ‘색다름’은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인가요.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그 물건들을 자세히 봐주세요. 그 물건들이 왜 새롭게, 색다르게 보이는지요. 바로 그 물건들에서 느껴지는 ‘그 무언가’를 스스로 정의내릴 수 있다면, 그래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건져낼 수 있다면 ‘가방 탐색 작전’은 성공입니다.


『곱셈인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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