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포스트코로나를 준비하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을 잉태하다
지난해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해 급속도로 확산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지구촌을 ‘일시 멈춤’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동안 인류는 속수무책의 혼돈과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이기심과 편견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동은 마비됐고, 격리와 셧다운,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목격했다. 원격 업무와 경기 추락, 의도하지 않은 기후 환경 변화 등의 사건과 현상을 경험했다.
하지만, 고난을 함께 극복하자는 격려와 연대도 나타났다. 그 안에서 정치, 경제, 산업, 교육, 보건, 환경 등 모든 곳에서 새로운 인식과 흐름이 형성됐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잉태하였다.
14세기 중세 유럽의 봉건 제도를 무너뜨린 흑사병이나 1차 세계대전에 평화를 가져온 스페인 독감처럼, 이 포스트 코로나도 문명사적 전환의 기점이 될 것이라는 세계적 석학들의 지적이 많다. 인류는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정상)에 두려움을 갖기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모든 것이 재정의되는 경향에서 저자는 우리나라 디자인 산업의 미래를 ‘의미’, ‘산업 전략’, ‘전문성’의 3가지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Sign 보다 de가 강조되는 디자인의 의미
‘DESIGN’이라는 단어는 de와 sign으로 이루어져 있다. de는 무언가를 분리하고, 떨어져서 본다는 생각과 사유의 의미가 있고, sign은 기호와 상징으로 만들어낸 시각적 결과물의 의미가 있다. 이 의미를 바탕으로 ‘DESIGN’을 다시 해석한다면, 그리는 행위와 분리하여 먼저 생각하고, 그 생각을 가치 있는 시각적 표현으로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DESIGN’ 은 한글로 해석하면 ‘설계하다’, ‘고안하다’의 의미만을 가진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에 수출상품의 포장 수단으로서 디자인을 받아들이면서, 오로지 sign만을 design의 의미로써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 4차 산업 혁명과 코로나 사태 이후로 우리나라 ‘시장추격자’ 전략은 급속히 ‘시장선도자‘ 전략으로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시장에 먼저 내놓은 국가만이 생존하는 시대가 되었고, 이는 곧 우리나라 산업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디자인의 산업적 역할도 이 시대에 걸맞게 창의력과 융합적 사고를 기반으로 ‘de’가 강조되는, 생각하는 역할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de가 강조되는 의미는, 기존의 sign을 잘하기 위한 방법론적 관점보다 무언가 새로운 생각을 시각화하기 위한 디자인의 인문학적 접근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잘 그리기 위한 방법을 찾아낸 결과물이 경영학적 관점에서의 디자인산업이었다면, 앞으로는 창의적이고 융합적 사고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디자인의 결과물인 시대인 것이다.
다만,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결코 sign이 중요하지 않다는 바가 아니다. 디자인 행위의 주체인 제품 및 서비스 기획자, 디자이너들이 명확한 de 없이 sign만을 추구하는 시대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의 수요가 공급보다 큰 시대에는 de나 sign 중 하나만 잘해도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양쪽을 잘해야 한다. de가 없는 sign만을 추구하는 디자인기업들은 도태되어 갈 수밖에 없다.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디자인기업의 공통점은 이러한 de와 sign의 조화가 있는 곳이다. Sign 중심의 디자인은 트렌드를 탈 수밖에 없으나, 트렌드는 돌고 돈다. 전략적 제안과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는 de가 있는 디자인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산업 전략적 차원에서 디자인 데이터의 가치
4차 산업 혁명이라는 기술(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중심의 패러다임 변화가 대두되면서, 디자인경영이라는 말은 시들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영자들의 핵심경영가치에 디자인의 중요성이 많이 떨어졌다. 제품과 서비스를 아름답게 만드는 디자인경영 전략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디자인 역량이 디자인 선진국이라는 유럽과 미국 수준까지 근접했지만, 중국 등 신흥 디자인 강국들이 부각되면서 스타일링 중심의 유형화 기반 디자인 경쟁력은 한계점에 와 있다. 앞으로의 시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높여주는 무형화 디자인이 주목될 것이다. 이런 시대를 한마디로 '디자인 데이터'의 시대라고 표현할 수 있다.
삼성과 애플의 디자인 전략의 사례를 보자. 결코 삼성의 디자인 역량(인적 구성, 디자인 전략, 디자인 R&D)이 뒤처지는 것이 아님에도 최고의 디자인을 고르라 하면 일반적으로 애플을 꼽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삼성과 애플의 디자인 파워를 결정할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용자들을 좀 더 면밀히 배려하는 애플의 UX(User eXperience)가 주목받을 것이다.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무형적 가치가 그 유명한 삼성과 애플의 특허 분쟁에서도 핵심이 되었다.
애플과 삼성의 특허 분쟁에서 알 수 있는 포인트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미적 가치가 아닌, 사용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디자인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정량화하기 어려운 비정형적 가치들도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측정하고 수집하는 빅데이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데이터로서 가공되는 중이다. 빅데이터 시대가 되면서 가치를 찾을 수 없거나 가치가 있는지 모르던 비정형적 데이터들의 가치가 입증되고 있다. 이전에는 사람들의 직감에 의존했던 디자인 데이터도 질적 데이터라는 관점에서 측정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를 입증할 역량이 있고, 미래를 주도할 기업들은 여기에 주목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이런 디자인의 데이터적 가치를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진들이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과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디자인을 활용하고 있지만, 이들은 궁극적 지향점을 디자인경영적 관점에서의 ‘유형화된 디자인’에 두고 있다.
1990~2000년대 초반기는 디자인경영이라는 관점에서 디자인의 전성기였다면, 앞으로의 시대는 기업의 지적 자산으로서 '디자인 데이터'의 가치가 공감 되어야 한다. 결국,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궁극적 목적은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는 결국 기업 데이터경영의 경쟁력이 디자인 데이터에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디자인계 스스로 그 가치를 입증할 수 있어야 디자인의 가치가 ‘더하기’의 효과가 아니라, ‘곱하기’의 효과임을 보여줄 수 있다.
디자인 방법이 아닌, 산업을 이해하는 것이 디자인의 전문성
혁신기술의 등장으로 IT-제조-서비스 업종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산업융합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대두되고 있다. 기존의 제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제품 중심’에서 ‘제품+서비스 융합형’으로 전환*되고, AI ·로봇기술의 발전으로 서비스가 제품에 체화되고 있다. 우리는 제조 경쟁력을 적극 활용한 융합산업으로 시장 선도국으로의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즉, 기술이 진보하면서 산업적 융합으로 명확한 구분이 사라지고, 항상 새로운 것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 산업은 IT와 융합한 첨단 IT 신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차량의 주변 정보와 주행 상황을 파악하여 차량, 운전자,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를 추구하고 다양한 서비스 및 제품을 창출하는 산업으로 고도화되었다. 이제 자동차 산업은 서비스, 통신, 지리 정보, 반도체, 소프트웨어, 센싱, 제어 기술과 관련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가 융합되어 고도화된 산업으로 다양한 분야와 그 산업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면 접근하기 어려운 전문화된 분야가 되었다.
이러한 자동차 산업의 변화에서 디자인이 산업적 가치를 인정받고 지속적 성장을 하려면, 단지 제품이나 시각디자인 전문성 기반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제대로 된 de와 sign을 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심도 있게 이해하고 있고, 그 분야의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야 한다.
단지 자동차 산업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앞으로 디자인 수요가 창출될 수 있고, 각광받을 수 있는 산업들일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기에 디자이너의 특정 산업에 대한 전문성은 중요해지고 있다. 디자인기업들은 기존의 디자인 분야에 대한 전문성만으로 전체 산업 군을 커버하기 어렵다. 특정 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이 좋은 디자인은 나올 수 없다.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혁신적인 생각과 창의적인 디자인을 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디자인의 전문성은 그 산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최적의 대안을 종합적으로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제품, 시각, 포장, 환경, 패션, 웹디자인 등으로 구분되는 디자인 방법론 중심에서 자동차, 바이오/헬스, 디지털 트윈/VR, 에너지/자원, 항공/우주, 비대면 서비스, 공공서비스 디자인 등의 산업을 중심으로 그 산업에 필요한 토털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디자인 전문성은 재편될 것이다.
결론
포스트 코로나 이후 디자인은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는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제품/서비스 개발에 효과적 수단이 될 것이다. 강소기업으로 성장하려는 중소기업에 있어서도 중요한 경영전략이 될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혁신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하고, 시장 선도와 일자리 창출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디자인은 산업의 일부 분야가 아니라, 모든 산업에 관여하고, 그 속에 융합하면서 사용자의 마음과 태도를 이해하는 기술을 리딩 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본론에서 얘기했듯이, 디자인은 생각하고 그린다는 본래의 의미를 찾아갈 것이고, 산업 전략적으로 디자인경영에서 디자인데이터의 시대로 변화하고, 디자인 기술이 아닌 발전하는 산업 속에 융합되는 토털 서비스 관점으로 고도화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서구 우위의 균열을 보여줬고, 기술의 진보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중요해지는 뉴노멀(new-normal)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대한민국이 경제와 산업적 패권을 주도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이해하는 새로움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제품과 서비스를 기술 중심이 아닌, 사용자 중심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혁신적 활동이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디자인산업의 의미이며 가치다. 기업이나 정부에서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많은 R&D 노력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반드시 디자인이 융합되어야만 사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래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사람에게 가치 있는 기술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출처] 포스트 코로나 이후의 디자인 산업|작성자 한국디자인산업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