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방식의 창의성 배양 훈련의 필요성
대학교 1학년때 처음 디자인과제를 할 때가 생각난다. A4용지 크기의 하드보드지에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기법을 사용해 보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고민하고 밤을 세워서 몇 번을 다시하면서 제출했다. 40명의 동기들이모두 과제를 제출했다. 단 한 친구만 빼고서 저마다 입시구성과 석고 댓생을 오래해서 인지 그럴싸한(스타일리쉬한) 표현을 해가지고 왔다.
그러나 한 친구만 A+였고, 나머지는 B- 평가를 받았다. 그 친구는 단 한 달만 석고 댓생을 배우고 입학했다고 했다. 테크닉적인 측면은 부족해 보였지만, 표현해내는 생각은 남달랐다. 이건 타고났다고 밖에 다른 생각이 안 들었다. 정말 타고난 재능 없이 창조를 할 수있는 것인지? 참 많은 좌절을 느꼈던 순간이다.
예전에 광고 관련한 재미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 강연은 초코파이의 광고를 만들게낸 과정을 들려 주는 자리였다. ‘정’시리즈의 광고를 만든 이용찬씨의 강연이다. 어떻게 ‘정’시리즈가 만들어지고, 어떠한 전략으로 제품이 잘 팔리게 됐는지를 이야기해주는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가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이해하고, 타고난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많은 도움을 주는 시간이다. 강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코파이는 누구나 좋아하는 베스트셀러 상품이다. 지금은 박스로 파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예전에는 집 근처 구멍가게에서 한 개씩 사먹는 것이 다였다. 이렇다보니 제조사에서는 더 이상 매출이 오르지 않았고, 획기적으로 매출을 올릴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만들어진 아이디어가 초코파이를 정(情)으로 한 박스를 사서 나눠먹게 만들자는 것이었고, 그 광고 캠페인은그야말로 대박을 쳤고, 엄청난 매출을 일으킨 것이다.
여기서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이용찬씨의 정의가 상당히 논리적이었고, 흥미로웠다. 자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초코파이를박스로 팔기 위하여 기존의 단어들 중에 아무도 초코파이와연결지어 생각해 보지 않은 단어를 찾아서 이어봤고, 그에대한 당위성만을 검증해 봤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정’이라는 단어와 초코파이를 연결해 보니, 구매하는 사람이 정으로서 한박스를 사서 나눠먹어라 라는 컨셉이 정리되고, 새로운 전략으로 도출됐다고 했다.
정말 대단한 것은 ‘정’, ‘초코파이’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단지, 새로운 결합을 위한 시도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수평적 사고를 전제로 해서 한번도 만나지 않은 것을 만나게 해서 유의미한 관계로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것을 그 이후에 알게 되었다.
여기서 이 창조에 대한 방식이나 이용찬씨의 전략만을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아니다. 디자이너들이배우고 연습했던 창의적 과정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다. 왜 우리나라의 디자이너들은 이런 논리적으로 생각을 전개하고 정리하는 훈련을 게을리하는 것인지? 왜, 단지 스타일에 대한 테크닉을 키우는 것이 디자인의 전부라고 생각하는지? 아무것도없는 것에서 순간적인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어려운 창조방식만을 배웠던 것인지? 정말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의 디자인 관련 교육에서 과학적인 방식의 창조적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가르치는 것은 없다. 오로지미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더 예쁘게 포장할 수 있는 지의 방법을 너무나도 열심히 가르치고 공부한다는 점이 정말 아쉽다. 어떠한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또한타고난 재능이 있지 않으면 그러한 창조적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의 결론은 예술작품의 창조와 같은 방식의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식의 결론이 내려진다. 어떠한 노력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이야기나, 과학적인 설명 없이 그냥 열심히했다고만 한다. 열심히 하면 모두가 다 잘할 수 있는 것인가?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