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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부치 Mar 14. 2016

디자인을 안 하는 것도 디자인이다

몇 해 전 모 대학에서 진행한 ‘디자인 마케팅’ 수업에서, 한 학생이 달동네를 위한 디자인 마케팅 전략을 세우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학생은 달동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조사했다. 조사 내용은 그 달동네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치안도 불안했고, 지역자치단체에서 도와줄 여력이 많지 않은 그야말로 달동네였다.

학생은 그 달동네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디자인 마케팅을 체계적인 방법론으로 잘 분석하였고, 달동네의 문제점과 디자인의 방향성도 잘 파악했다. 이런 분석과정이 상당히 체계적이었기에, 내심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를 했다. 그 마을은 한낮에도 혼자 돌아다니기에 무섭다는 의견이 있었고, 밤이 되면 어둡고 우범지대로 변하는 경우가 많기에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고, 이것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가 핵심이라는 분석이다.  달동네의 문제점과 필요한 것을 잘 분석해서 정리한 핵심은 달동네의 '취약한 방범 수준'이다.

그런데 이 학생이 분석을 마치고, 디자인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만들기 시작했다. 디자인의 방향은 마을에 아름다운 벽화를 그리고 마을을 상징하는 다양한 조형물을 설치하고, 밝고 깨끗한 마을 이미지를 만들어서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컨셉이었다. 이와 같은 컨셉을 적용한 디자인 시안도 보여줬다. 디자인 시안은 감각적이고 그 마을의 아이덴티티를 잘 보여주었고, 디자인 시안에 대한 다른 학생들의 반응도 상당히 좋았다.


그러나 저자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실망한 가장 큰 이유는 이 학생이 ‘난 무조건 디자인을 할 거야 라는 점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 달동네에 대해서 마케팅적으로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그곳의 치안이 불안하다는 것과 재정이 약한 지역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마을이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제시한 디자인컨셉과 시안으로 진행한다면, 가장 필요한 기본적 치안과 생활안정에 필요한 자금을 디자인하는 곳에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이 학생은 저렴한 비용으로 디자인을 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단돈 오천 원도 어른들에게는 담뱃값 정도이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큰 용돈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정해진다면, 정해진 예산 중에서 디자인의 비용을 할당할 수밖에 없고, 다른 예산은 상대적으로 줄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달동네에는 치안 강화를 위한 예산을 1차적으로 편성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컨셉으로 디자인할 예산이 있으면 한 푼이라도 더 아껴서 가로등 하나라도 더 달아줘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점이다. 정말 그 달동네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면 아무리 비용이 적게 드는 디자인이라도 그것보다 가로등 하나 더 달아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이 달동네에는 치안 강화를 위한 직접적인 접근이 아닌, 디자인이라는 2차적 치안 강화 수단을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디자인이란 시각적 표현을 기반으로 사람의 감성을 즐겁게 바꿔주고, 공감을 이끌어 내주는 수단이다. 디자이너 출신이라면 당연히 무언가 가지고 있는 무형의 생각을 사람의 눈에 보이는 표현 방식으로 바꿔놓는 것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마음속에만 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디자인의 기본적 가치인 심미성, 경제성, 실용성을 고려하여 최적의 컨셉을 가지고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 당연하다.  디자이너는 무언가를 실용성과 경제적 가치 등을 고려하여 눈에 보이게 아름답게 만드는 존재다. 이런 출발에서 디자인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고, 경제성과 실용성을 고려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우선적으로 추구할 수밖에 없다. 결국 디자이너는 눈에 보이는 형상을 가진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저자는 학생들과 많은 의견을 나누었고 아무리 최소의 비용이 들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달동네에 필요한 최소 경비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해줬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디자인을 한다는 것이 그 달동네에는 일종의 사치가 될 수 있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담당 학생은 다음 수업시간에 모든 것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가져왔다. 그 학생의 결과물을 봤을 때 정말 가르친다는 보람을 느꼈다. 그가 가져온 것은 새로운 디자인 컨셉이나 시안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사용한 A4용지의 뒤에다 정리한 5장짜리 문서였다. 그 내용은 가장 싸게 설치 가능한 가로등 관련된 비용과 방식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구체적인 모델명과 구입처를 찾아서 가져왔고, 10개, 50개, 100개를 설치할 때의 장소와 방식, 왜 설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전략만을 가져왔다. 그리고 보여준 한 장의 이미지는 인공위성 사진을 통하여 10개, 50개, 100개를 설치했을 경우에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에 대한 시안을 보여줬다. 그리고 10개, 50개, 100개를 설치했을 때의 야경의 이미지에 관한 서정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마지막 장에는 그 야경을 가장 운치 있게 볼 수 있는 명당자리를 정리해서 가져왔다. 그리고 이 디자인 컨셉은 ‘디자인 안 하기’였다. 디자인과 관련된 비용은 전혀 사용하지 않도록 많은 부분을 고려하고 전략을 수립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등잔 밑이 어둡다’, ‘업은 아이 3년 찾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참된 진리, 실제적 사실이 자기 주변에 있고,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디자이너들은 무언가를 디자인한다. 그리고 무언가 유형의 산출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전제로 하여 움직인다. 그러기 위해서 컨셉을 잡고 계속 스케치하고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애쓴다. 무언가를 반드시 유형화하는 것만이 디자인이다. 디자인의 참된 진리를 미처 깨닫지 못한다.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에 꼭 유형적인 시각화된 무언가를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기 전에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자기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디자인을 할 때 정말 여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근본적으로 조금 더 고민해보고 출발하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기 캐릭터인 ‘타요[1]’와 ‘라바[2]’가 있다. 그 선풍적인 인기에 기반하여 ‘타요버스’와 ‘라바지하철’이 만들어졌다.

우선 ‘타요버스’는 2014년 버스운송사업조합과 아이코닉스가 대중교통의 날을 맞아 서울시가 저작권을 소유하여 운영했다. 서울시의 타요 버스는 캐릭터 타요(파란색 370번), 로기(초록색 2016번), 라니(노란색 2211번), 가니(빨간색 9401번)가 그려진네 노선에서 운행을 시작했으며,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타요버스’를 반기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라바지하철’은 어린이들이 열광하는 애벌레, '라바'가 지하철로 기어 나온다는 컨셉으로 '타요버스'에 이은 또 하나의 대중교통의 새로운 도전이다. 서울시는 2014년 11월부터 지하철 2호선 열차 10량 안팎을 라바 캐릭터로 전면 포장 해운 행했다. 라바는 빨강·노랑 애벌레 두 마리가 등장하는 코미디 장르의 국산 애니메이션이다. 2011년 KBS를 통해 처음 방영되기 시작, 현재 시즌3가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 중이며 전 세계 100여 국가에 수출되고 있다.

‘라바지하철’은 서울의 시민이 박원순 서울시장에 요청하여서 만들어져서 ‘타요버스’와 마찬가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뽀로로택시’도 만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디자인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타요버스’, ‘라바지하철’은 대중교통 수단의 획기적인 디자인이라 평가할 수 있다. 기존에 상상할 수 없었던 획일화된 버스와 지하철이라는 대중교통 수단을 아이들의 감수성에 맞추어 차별화된 아이덴티티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것은 디자인을 한 것이 아니고, 캐릭터만 사용한다. 이러한 캐릭터 사용은 대중교통에 대한 고객의 서비스 가치를 향상하고, 대중교통에 대한 친근함을 심어주기 위한 브랜드 전략으로서 디자인을 택한 것이지, 이것이 대중교통을 디자인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버스운송조합과 서울시의 전략적 선택이었지만,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획기적인 대중교통 디자인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만약 ‘타요’나 ‘라바’를 모르는 외국인들이 봤다면 그들의 눈에는 한국만의 차별화된 요소가 잘 반영된 디자인으로 비칠 수 있다.

만약 버스운송조합과 서울시에서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분명 좋은 디자인이 나왔을 것이다. 환경디자인, 제품 디자인에 있어서 탁월한 역량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작업하여 디자인 자체만으로는 최적의 대중교통 디자인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에 대해서 현재의 ‘타요버스’와 ‘라바 지하철’만큼의 투자비용에 대비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을지는 의문스럽다.

디자이너 작업의 시작은 디자인 대상에 대한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컨셉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작은 눈에 보이는 새로움을 만들겠다는 생각보다 존재 여부(무형, 유형)를 구분하지 않고, 무엇 이 사람의 감성을 즐겁게 바꿔주고, 공감을 이끌어 내주는 수단인지 더 고민하여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디자인이 필요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것은 중요하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눈에 보이게 만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디자이너들이 정말 경우에 따라서는 디자인을 안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런 부분들이 디자이너는 전략은 없고 컨셉만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하는 부분이다. 디자인의 최종 산출물의 형태가 ‘시각화’다 보니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제는 디자이너의 미래를 위해서 더 크게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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