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슬기 Dec 20. 2021

독립이라 쓰고 자취라 읽는다

독립이라 쓰고 자취라 읽는다



“아, 자취하시는구나?”

“아니요, 독립한 건데요?”


내가 혼자 산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취한다고 생각했다. 왠지 자취라고 하면 혼자 살긴 하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부모의 도움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뉘앙스가 있어 나는 반발심을 느꼈다. 내 상황은 조금 달랐다. 학업이나 취업 때문에 잠시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게 아니었다. 결혼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시는 부모님의 집으로 되돌아갈 일은 없다는 마음으로 나왔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과는 충분히 마음을 풀지 못했으니 혹여나 필요하다 해서 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 자취보다는 독립인 이유였다.


집을 나온 건 스물여덟 살을 한 달 남겨둔 겨울이었다. 사실 독립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리되었다. 퇴사한다는 내게 부모님이 내민 조건이었다. 내 맘대로 퇴사하기로 결정했으니 그에 따라 독립까지도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 선택에 따른 책임이라면. 


나는 나답게 살고 싶었다. 나다움이 뭔지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그래서 그걸 찾아보는 여정을 꿈꿨다. 분명한 건 회사에서는 나다움을 찾을 수 없었다. 어떤 게 나다운 건지 당장에 찾지 못하더라도 제대로 시도하고 꿈꿔보고 싶었다. 그 첫걸음이 나에겐 퇴사와 독립이었다. 그렇게 원래 예정되어 있던 인생길에서 되돌아 나와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처음으로 혼자 지내게 된 공간은 집이라기보다 방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방 한 칸이 나의 집이 되었다. 김애란 작가도 자신이 스무 살 적 혼자 지내던 공간을 칸이라고 표현했다. TV프로그램에선 종종 가난한 사람들의 메타포로 단칸방을 보여주곤 했다. 그렇게 살아본 적은 없지만 칸이라는 단어는 왠지 아련하고 애틋하다. 이제 그 한 칸에 나의 마음을 준다. 태어나 처음으로 갖는 나만의 공간은 낭만적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가족의 눈치는 안 봐도 되는 해방감도 만끽한다.


부모님의 집보다는 좁지만 혼자 지내기에는 적당하다. 이른바 원룸은 아파트나 주택과는 구조부터 달랐다. 처음으로 살게 된 원룸은 현관문을 열면 바로 옆에 화장실 문이 있었다.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서면 옆보다 앞으로 더 긴 직사각형의 공간이 있었고 그 끝에는 커다란 창이 나 있었다. 그 사이에 방과 주방을 분리해 주는 아치형 벽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예뻤다. 


들고 나온 짐이 많았다. 미니멀리스트도 아니고, 돌아갈 예정 없이 이십칠 년 치의 나의 전부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차피 다음날 출근하지도 않는 내게 남는 게 시간이니 급할 것 없이 천천히 짐을 풀었다. 어느새 해는 지고 커다란 창 너머 밤하늘이 비쳤다. 어둠은 많은 것을 감성적으로 만든다. 쏟아지는 별에 샤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한편 빛과 어둠은 서로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창 가까이에 난 어둠은 나의 실루엣을 유독 적나라하게 비췄다. 그 사실을 깨닫자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바깥에서 보면 내가 있는 이 공간이 적나라하게 다 까발려질 텐데. 창문 너머로 어둑어둑한 동네와 불이 켜진 몇몇 집들, 그곳에서 여기를 쳐다보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아이고, 혼자라는 낭만도 잠시, 바깥에 보여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당장 이 공간의 빛을 가릴 것이 뭐가 있을까?


내가 아무리 짐이 많아도 집에 있는 커튼까지 떼오진 않았다. 커튼을 대체할 만한 게 뭐가 있을지 잠시 생각하다가 몇 년 전 샀던 머플러를 떠올렸다. 와인 색상에 면으로 된 머플러! 그 머플러는 165센티미터의 내 키는 족히 덮을 만큼 길고 66사이즈의 내 몸을 두어 번 감을 만큼 길고 넓었다.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위해 장만했지만, 이제 이 머플러는 커튼의 역할을 할 참이었다. 게다가 여차하면 식탁보도 될 수 있고 환절기용 이불로도 손색없겠다 싶었다. 일단은 커튼이 필요했으므로 머플러를 쫙 펴서 커튼레일 핀을 하나하나 꽂았다. 그걸 창문에 달았다. 이제 내 종아리 말곤 바깥에 보일 염려는 없겠다. 그제야 나는 입고 있던 옷을 훌러덩 벗었다.


“아, 자취하시는 거예요?”

“음, 그런 셈이에요.”


자취생이 아니라 ‘독립러’라고 우기던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자취란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생활하는 것이고, 독립은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않는 상태다. 혼자 칸에 살기 시작하면서 둘 다 중요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가족의 울타리에만 안주했다면 몰랐을 것들을 겪으며 새로운 인생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게 자취든 독립이든 일인분의 삶은 나를 키웠다. 


처음 겨울을 나고 몇 번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적당히 평범하게, 그럭저럭 살 만한 하루들을 모았다. 사는 곳은 집이 아닌 방, 고작 한 칸에 불과하지만 내 영혼의 둘레는 더 커졌고 계속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외로워도 슬퍼도 (잘) 울지는 않았다. 마음속에 언제나 낭만 한 되 정도는 가지고 혼자를 즐겨야지, 암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