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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기 Dec 22. 2021

원룸 스릴러

1인 가구, 알 수 없는 두려움의 실체에 관하여

원룸 스릴러



설레거나 두려울 때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는 타인의 호의에 쉬이 설레 하고, 타인의 거절을 쉬이 두려워한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땐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집을 나와야 해서, 원룸을 구해야 할 때도 난 설레는 한편 두려웠다. 중개사는 너무 많아서 어디를 들어가야 할지, 방은 어떻게 보는 건지, 계약은 어떻게 하는 건지 죄다 경험한 바 없었으므로. 아버지와 같이 의지하던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보다 훨씬 인생을 오래 산 선배는 여러 방면에서 경험이 많아서 믿을 수 있었다. 함께 몇 군데 원룸을 둘러보다가 선배가 아는 전문가가 알아봐 준 방을 보게 되었고 맘에 들어 계약했다. 이제 혼자 살게 되다니 설레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의 첫 독립을 맞이한 공간은 건물 사이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야 보이는 5층짜리 건물이었다. 각 층마다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네 개씩 문이 있는 구조. 층마다 여덟 개의 방이 있다.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주택에 살 때보다 많은 소리를 공유하게 되었다. 대부분 나처럼 혼자 사니까 자주 적막이 감도는데, 간혹 여러 명의 대화소리가 와르르 들릴 때가 있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 세탁기 돌리는 소리, 싱크대에 흐르는 물소리, 텔레비전 소리도 마찬가지. 쿵쾅쿵쾅 복도에 울려 퍼지는 발소리도. 다른 시간은 몰라도 새벽은 이런 소리들이 좀 곤란하다. 썩 달갑지 않다. 그래서 괜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가끔은 외로움을 견디게 해주기도 한 점은 인정.


직사각형의 방. 그 오롯한 한 칸. 이 공간은 가족과 함께 지내는 집보다 밀도가 높다. 살면서 처음으로 얻은 혼자만의 저녁과 밤들. 침묵과 고독은 사색하기 좋은 친구다. 자기 전 불을 끄고 선물 받은 작은 조명등을 켜면 나만의 우주 같은 공간. 


기분 좋은 설렘만 가득하면 좋았을 테지만 언젠가 한번은 두려움에 벌벌 떤 일이 있었다. 자정 즈음 현관에서 초인종이 울리길래 누구냐고 물었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이다. 한번은 그냥 넘어갔어도 몇 번 반복되자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현관과 침대 사이의 거리는 겨우 1미터 정도. 간이 미닫이문조차 없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아무런 대답 없는 초인종 소리는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모르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 


며칠 후 예고 없는 초인종은 또 울렸고, 나는 큰 변이라도 당할까 싶은 맘에 너무 무서웠다. 두려워서 심장이 벌떡벌떡 뛰었다.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 없는 바깥.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나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들 잠자는 시각이었지만 도덕심보다는 나의 공포심이 더 컸다. 수화기 너머로 내 일처럼 걱정해 주고 다독여주는 주인아주머니 덕분에 잠깐 동안 진정할 수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힌 것도 잠시, 또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 밖에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고 심장은 더욱 거세게 쿵쾅거렸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지 허공에 원망을 쏟아내려던 찰나, 다시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주머니가 말하길 주인아저씨가 갔다고 했다. 남자 목소리가 다름 아닌 주인아저씨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경계심을 풀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저씨는 같은 층 입주자 전원에게 물어보았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다독였다. 복도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바로 확인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별다른 해결책은 없었지만 안심은 되었다.


또 며칠 뒤, 초인종이 울렸다. 벌써 여러 번째.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해서, 좋지 않은 일이 반복되면 ‘왜 하필 나한테 그래?’라는 생각이 별수 없이 든다. 이기적이지만 어쩔 수 없다. 두려움은 이성적인 사고를 무너뜨린다.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울먹이며 도와달라고 했다. 


“아저씨, 저 너무 무서워요. 지금 당장 어떻게 좀 해주세요, 네? 도대체 누가 내 방문 앞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혹여나 불길한 일이 생기면 어쩌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곧장 도착한 주인아저씨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내 이야기를 듣고, 같은 층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모두 알렸다. 혹여라도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기면 도움을 부탁하는 말도 함께 했다. 일단은 진정하고 난 다음날, 건물 1층 게시판에는 초인종을 누르고 사라지는 일에 대한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경고. 최근 무단으로 남의 방 인터폰을 누르고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CCTV를 분석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인’


그 경고문 덕분인지 내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때까지 다시 초인종이 울리는 일은 없었다. 내가 상상한 것처럼 흉악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마도 누군가 방 호수를 잘못 알았을 수도 있고. 그걸 내가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였다 해도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한참 뒤에 이 일을 복기하다가 문득 다른 의문이 들었다. 초인종을 누른 사람은 단순히 실수를 했다 치자. 하지만 내가 울먹이며 주인아저씨에게 소리친 그날, 주인아저씨는 내게 “누가 학생을 좋아해서 말도 못 하고 초인종이나 누르고 사라지는 거 같은데?”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저씨의 그 말에는 전혀 적의가 없다는 걸 알지만 왠지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말은 어릴 적 한번쯤은 어른들이 할 법한 말이고, TV 드라마에서도 들어봄직한 말이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건 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해석.


그러나 시대는 계속해서 변하고 잘못된 말은 바로잡아야 하기도 한다. 아저씨가 무심코 뱉은 말에도 사실은 폭력이 담겨있다.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을 앞에 두고 가해자일지도 모를 사람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 말이다. 그리하여 두려워하는 내가 도리어 이상한 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말. 이런 것도 가스라이팅이 될 수 있겠다. 어쩌면 이게 더 무서운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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