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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기 Dec 24. 2021

[일인분의 삶] 101호의 여름

햇빛 없는 1층, 우울과 마주했던 날들

101호의 여름



몇 년 새 퇴사가 유행처럼 번졌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퇴사를 꿈꿨고 더러는 그걸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퇴사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달라도 행복한 삶을 바라는 건 같을 것이다. 그러나 퇴사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종종 부정적이다. 나의 부모만 하더라도 지금 네 나이를 생각하라는 둥, 그래서 시집은 언제 가냐는 둥의 말로 나를 나무랐다.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하면 그만이고, 일이란 돈을 벌기 위해서 힘들어도 참고 해야 하는 의무라고 말했다. 그 말에 동의할 순 없었지만 부모님의 말에 반박하지도 못했다. ‘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지 나도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고집스러운 구석은 있어서 일단 퇴사를 ‘해’버렸다. 


퇴사일이 정해지고 일주일 후 나는 독립까지 해야 했다. ‘집을 나가’라는 것은 일을 그만두지 말라는 부모님의 마지막 보루였지만 한 고집 하는 나는 곧 죽어도 회사는 그만둬야겠으니 집을 나가라면 그것까지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세상을 몰랐다. 모르는 건 약이라는 말처럼 잘 몰랐기에 용기 낼 수 있는 일이었다고, 이제와 그런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나다운 삶을 찾겠노라 굳건한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그 의지가 월세와 식비를 보태주진 않았다.


대학 다닐 때처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직장인일 때보다 수입은 반 토막이다. 실은 그보다 더 적었다. 매달 지출비에 의류, 미용은 아예 제외하다시피 했어도 월세의 부담은 버거웠다. 가지고 있던 (얼마 되지 않던) 여유 자금도 야금야금 쓰다 보니 어느새 바닥이다. 내게 그깟 돈이 대수여서 곧 생활에 여유가 사라지고 말았다.


더는 생활비에 허덕이며 살 순 없어서 월세가 조금이라도 싼 곳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첫 원룸에서 지낸지도 1년 6개월 째였다. 원룸 계약은 보통 1년씩 자동 연장이 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배려해준 덕에 6개월을 남겨두고 이사할 수 있었다. 살던 원룸이 나쁜 게 아니어서 아쉬움이 컸다. 내가 지출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게 문제지, 뭐.


공인중개사에 연락해 방을 보러 다니면서 두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하나는 지금보다 월세가 5만 원은 저렴할 것, 그러면서도 방의 크기는 비슷할 것이었다. 좁으면 답답하기도 하지만 가진 짐이 많기 때문이다. 두세 군데 방을 둘러보고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방을 계약하게 되었다. 첫 원룸도 그렇지만 두 번째 원룸도 제법 빠르게 결정한 편이었다. 집 구하는 데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서 속으로 난 운이 좋은 건가, 싶기도 했다.


좋은 집을 구했다는 기쁨도 잠시, 입주를 하고 며칠 지내다 보니 월세가 싼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주방에 창이 있었지만 1층인데다 옆 건물이 바짝 붙어 있어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음지였다. 그리고 ‘바선생’도 있었다. 역시 싼 게 비지떡인가. 그렇다고 당시에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었으므로. 


타협 아닌 타협으로 이곳에 지내는 동안 자주 우울했는데, 그 이유가 방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과 그로 인한 습기였다. 자주 책상에 앉아 있는 나에게는 낮에도 형광등을 늘 켜놓아야 할 만큼 방은 밝지 않았다. 게다가 습한 기운은 꽤 불쾌했다. 


살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물난리를 겪었다. 싱크대 밑에 배수구가 터져서 물이 그 주변으로 범람한 것이다. 싱크대 하부를 막고 있는 나무판대기는 썩어있었고 쿱쿱한 냄새가 역했다. 주인아저씨가 직접 와서 보수를 해주었다. 용역을 쓰지 않고 직접 책임지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보여 고마운 마음과 얼마간의 신뢰감도 들었다. 사람이 좋으면 된 거지,라는 마음으로 또다시 타협하기로 맘먹었다. 사실 이런 걸로 꼬투리를 잡거나 불만을 내놓기엔 저렴한 월세의 메리트가 더 컸다. 이 월세에 이만큼 넓은 방 찾기도 어려우니 이쯤은 견딜 수 있었다.


이사할 무렵인 늦여름이 지나고 가을, 겨울이 오자 꿉꿉함이 덜했다. 다음 해 봄까지도 습기는 덜했고 물난리도 ‘거의’ 나지 않았다. 여전히 햇빛은 들어오지 않았다. 밝지 않은 공간이 주는 우울은 점점 심해졌다. 우울했다. 이젠 다시 햇빛이 들어오는 밝은 방에 살고 싶어졌다. 1년 계약이 끝나는 대로 다른 곳으로 이사하리라. 


매년 더위는 점차 빨리 찾아오고 높은 기온과 습도에 짜증도 함께 늘어간다.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왔고 그해도 비가 억수로 내렸다. 6월의 마지막 주였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서 방바닥으로 발을 내딛는 감촉이 싸했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저렴한 카펫을 바닥에 깔아두었는데 온통 축축했다. 뭔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싱크대 아래에서 물이 계속 범람하고 있었다. 밤새 그랬던 것이다. 침대에서 자느라 난 그걸 몰랐던 거고. 


영미권 사람도 아닌데, ‘오마이갓’이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바깥에서 신고 다니는 슬리퍼를 신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그날의 내 심정은, ‘나 진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해?’였다.


건물이 노후되고 배수시설이 좋지 않아 생긴 문제였으므로 내가 떠안아야 할 불이익은 없었다. 다만 불편함은 내 몫이었다. 계약 만기까지 한 달이 남았지만 다른 집을 구하면 보증금은 바로 돌려받기로 했다. 얼른 이 눅눅한 곳에서 벗어나고픈 생각뿐이었다. 


월세는 쌌지만 햇빛도 없고 습기와 곰팡이, 바퀴벌레와 물난리가 가득했던 방. 이곳 101호에서 11개월 살았던 경험으로 나는 비로소 집은 집 같아야 하는 말을 실감했다. 그리고 제발 집 보는 안목을 좀 더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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