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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기 Dec 26. 2021

[일인분의 삶] 샌드위치 공동체

참을 수 없는 옆방 소음에 관하여

샌드위치 공동체



어떤 것을 잘 알고 잘 활용할 줄 아는 감각을 지닌 사람을 흔히 ‘센스 있다’고 표현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을 기가 막히게 캐치할 줄 아는 사람,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게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사람, 얼음장 같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매력적인 말을 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의 체형과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옷을 잘 입는 사람 들은 분명 센스가 있다. 나는 아마도 센스 있는 사람 축에는 못 낀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혼자 살 원룸을 보러 다니면서 느낀 건데, 다른 분야만큼이나 주거공간을 제대로 볼 줄 모른단 말이지. 그러지 않고서야 한 곳에서 왜 2년 이상 살지를 못 할까. 이런 게 내가 유난히 까다로운 탓은 아니겠지? 아니면 참을성이 부족한 걸까? 나는 독립생활 6년 만에 다섯 번 이사를 하게 된다. 고작 한 칸에 살면서 옮겨 다니는 게 너무 빈번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아무튼 세 번째 이사를 할 즈음엔 물건을 포장하는 데 도가 텄을 정도였다.


세 번째로 이사한 원룸은 첫 번째 살던 원룸과 비슷했다. 방의 넓이는 살짝 좁았으나 현관, 방, 주방 사이에 미닫이문이 있어 정돈된 느낌은 컸다. 원한 대로 햇빛도 잘 들어오니 곰팡이 걱정도 없었다. 방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는데, 얼마 살아보니 아쉬운 부분은 또 있었다. 옆방의 소음이 너무 크게 들렸다. 벽을 두드려보니 뭉툭하지 않고 긴 울림이 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벽이 너무 얇은 것이라고 결론을 냈다. 


이건 마치 구멍이 송송 뚫린 식빵 같다. 나와 이웃은 식빵 사이에 낀 햄, 치즈, 양상추 같아서 일종의 샌드위치가 아닌가 생각했다. 안 그래도 좁은 공간, 겨우 방 한 칸. 그래도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벽과 문이 막아주지 못한 소음이 내 예민함을 깨웠다. 인사 나눈 적도 없지만 내 방 오른쪽에는 남학생 두 명이, 왼쪽에는 남녀 커플이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혹시 여기는 하숙집인 걸까요?


건물은 깨끗하고 쾌적했지만 얼굴도 모르는 이웃과 너무 많은 걸 공유하기 시작했다. 몰라도 될 걸 알고 느끼는 게 힘든 이유는 내 신경에 과부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르긴 몰라도 몸에서 좋지 않은 호르몬 같은 게 발생해서 나를 스트레스 상태로 내몰고 만다. 나는 소리에 민감한 편이었다. 나의 세 번째 독립공간은 가장 많은 스트레스 요인을 탑재한 곳이었다.


그중 첫 번째. 오른쪽 칸에 사는 남학생 둘은 게임하는 시간이 많았다. 높은 톤의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도 그 특유의 울림이 커서 꽤 무겁게 들렸다. 수없이 반복해서 키보드를 쳐대는 소리, 끊임없이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는 소리는 정말이지 나에게 고문이었다. 귀를 막는다고 해서 완벽하게 소리가 사그라드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게임 없이도 살아가는 나에게 옆집 두 남학생은 존재 그 자체로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짜증을 넘어 종종 분노도 느꼈는데, 이 감정을 그들에게 직접 전달한 배짱이나 깡은 없었다. 나는 소심한 편이고 멋있게 화내는 법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주인에게 세입자로서 겪는 불편함을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두 번째로 나의 왼쪽 칸에 살고 있는 커플. 이들의 소음은 오른쪽 칸의 남학생보다 덜했는데, 그 이유가 벽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있지 않고 ㄱ자로 붙어있는 구조여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왼쪽 방은 내 방과는 구조가 좀 다른 것 같기도 했다. 이들에게선 텔레비전 소음과 강아지 짖는 소리를 공유 받았다. 그 집 강아지는 왜 그렇게 새벽에 울어댄 걸까? 두어 달 뒤에 그들은 이사했고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왔다. 


곧 남자인 걸 알게 되었고 그의 여자친구인 듯한 여성과 거의 매일 저녁을 함께 지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떤 날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어떤 날은 싸우는 듯한 말소리가 들렸다. 속속들이 대화 내용을 알 순 없었지만 그들의 감정을 톤으로 느끼기엔 충분했다. 싸웠다가 화해하는 과정을 소리로 듣고 있자니 혹시 여기는 카페인 걸까요?


텔레비전 소음, 대화소리에 이어 그다음은 은밀한 밤의 소리였다. 가끔 ‘라’ 톤의 감탄사를 내뱉는 듯한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들어 본다. 벽에 귀를 갖다 댄 적도 있었는데, 그 모습이 스스로도 웃겼다. 샌드위치 같은 벽 너머로 두 사람의 하모니가 울려 퍼지곤 했다. 나는 또 집주인에게 나의 불편함을 전달해야만 했다.


옆의 소리가 넘어온다는 건 내가 내는 소리 또한 넘어간다는 말이다. 나도 꽤 조심했다. 소리 때문에 불편하다고 해놓고 도리어 내가 더 시끄러운 사람이 되기는 싫었으니까. 다행히 난 양옆의 그들과 달리 혼자였고 (물론 간혹 손님이 오고 가곤 했지만) 내가 공유하는 소리라곤 생활 소음이 대부분이지 않았을까? (싶지만 모를 일이다.) 


내 방엔 텔레비전도 없었다. 원래 옵션으로 있던 걸 집주인에게 빼달라고 요청했었다. 대부분의 원룸에는 가구가 옵션으로 포함되어 있다. 다 생활에 필요한 것이지만 고작 방 한 칸에 전부 두고 생활하기엔 난 좀 숨이 막혔다. 게다가 나는 가진 짐도 많아서 최대한 가구가 적었으면 했다. 오랜 기간 침대 생활을 한 탓에 침대는 꼭 있어야 했고, 책상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았다. 당시에 내가 거의 하지 않던 것이 영상물 시청하기. 그래서 과감히 텔레비전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디지털 신호가 없는 방은 적막이 흐르는데, 그게 좋았다. 좁은 공간이긴 해도 나름 오롯이 감싸여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으니까. 적막과 고요는 좁은 칸과는 꽤 잘 맞는 친구였다. 나는 그런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위와 같은 소음은 내게 방해꾼일 수밖에. 샌드위치 공동체 같은 원룸에 살면서 원치 않는 소음만큼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 없다는 걸 제대로 실감했다. 이제 다음에 이사할 집은 너무 좁지 않으면서 습기도 없어야 하고 소음도 적은, 그러려면 벽이 제대로 시공되어 있고 너무 다닥다닥 붙은 곳은 아니어야 하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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