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슬기 Dec 30. 2021

외로움을 집어삼키려

마음의 허기를 음식으로 때우는 일에 관하여

외로움을 집어삼키려



302호에서 101호로, 그리고 303호에서 다시 302호가 되었다. 지내는 동안 곰팡이나 바퀴벌레를 마주하지 않았고 한 층에 네 가구뿐이라 생활 소음도 크지 않았다. 제법 넓은 베란다가 있어 공간 활용도가 높고 두 사람이 생활해도 좋을 만큼 방도 넓었다. 지난 불편함을 모두 해소해 주는 방이었지만 앞자리 수가 하나 높아진 월세를 감당해야 했다. 이럴 거면 그냥 첫 번째 살던 집에서 계속 살 걸 그랬다. 뭐, 어쨌든 돌아갈 순 없는 일이고.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편의점은 꽤 편리하다. 부모님과 살 때는 편의점 갈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집을 나와 혼자 살기 시작할 때도 그 습관이 배어있었다. 편의점이 편리한 것을 너무 잘 아니까 의식적으로도 멀리했다. 생필품보다 당연히 먹는 것에 대한 유혹을 걱정했다. 한번 발을 디디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거기에 의지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친해지지 않으려는 마음도 독립 혹은 자취 3년 차가 지나자 무너졌다. 점심은 학교 사람들과 먹는다 치더라도 아침, 저녁을 매번 챙겨 먹는 건 어려웠다. 매일 같이 쌀을 씻어 밥솥에 앉히고 밑반찬을 준비해 한상 차리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게다가 현대인은 스마트폰 들여다볼 시간은 많아도 정성껏 밥을 지어 차려 먹을 시간은 늘 부족하지 않은가. 어느 날 무심결에 사 본 편의점 도시락을 맛본 뒤로 나도 여느 자취생 못지않게 편의점 단골이 되어갔다.


먹는 것을 소비하는 건 가장 쉽고 저렴하게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소비였었다. 편의점보다 더욱 내 소비욕을 돋우었던 건 ‘빵’이었다. 그래, 빵! 나는 전기를 발명한 위인만큼이나 빵을 발명한 위인에게도 감사하는 사람이다. 삼시 세끼 빵을 먹을 정도로 빵을 좋아한다. 집 근처에 내가 자주 가는 빵집이 있었다. 빵집은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 부근에 위치해 있어 외출하거나 집으로 돌아올 때 자주 들리곤 했다. 그냥 지나칠까 싶다가도 그 앞을 지나는 순간 유리문 사이로 풍겨 나오는 고소한 냄새에 다시 발걸음을 돌렸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침에는 가끔 갔지만 저녁엔 자주 갔다. 문을 열고 빵집에 들어가 쟁반과 집게를 들고 어떤 빵을 고를까 상상하는 순간 하루의 고단함은 씻겨 사라졌다. 나는 절대 빵을 한 개만 고르지 않았다. 너무 맛있던 빵은 또 맛보고 싶어 고르고 먹어보지 않은 빵은 그 맛이 궁금해서 골랐다. 집에 가서 바로 먹을 빵과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먹을 빵을 고루 고르는 일은 연애를 막 시작할 때만큼이나 설렘과 애틋함이 느껴진다. 식비에서 빵 구입비를 따로 두어야 할 만큼 빵에 진심이었다.


자주 가다 보니 직원과의 예의 주고받던 인사에도 친숙함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직원분이 포인트를 적립하겠냐는 질문 없이 포스 기기만 쳐다보고 있길래 무슨 문제가 생겼나? 생각했다. 잠시 고심하던 직원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전화번호 뒷자리가 87** 맞으시죠?  이제 번호 외웠어요, 호호.” 이렇게 다정할 수가. 나만 그런  알았는데 우린 서로 내적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익숙해진 만큼 설명할거리도 줄어들었다. 지불한 빵값의 10% 포인트로 쌓이고 빵집에 대한  마음도 소복이 쌓여만 갔다.


이제는 그렇게 빵을 먹지 않지만 그땐 식사와 디저트 모두 빵으로 채우던 때였다. 무슨 빵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내겐 좀 터무니없는 질문이다. 모든 빵은 동등하게 맛있다. 못 먹어본 빵은 있어도 맛없었던 빵은 없었다. 빵을 그렇게나 먹는 거에 비해서 속이 아팠던 적도 거의 없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지만 나는 누가 뭐래도 빵심이었다. 자주 혼밥 대신 혼빵을 했다.


고백하건대 건강한 식습관은 아니었다. 밥보다는 포만감의 지속이 짧았고 주전부리를 더 많이 찾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혼자 살면서 먹는 것까지 잘 챙기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가끔 요리를 해서 밥을 챙겨 먹기도 하고 조리하지 않아도 되는 재료들로 가볍게 끼니를 챙겨 먹기도 했지만 모두 한시적이었다. 꾸준한 습관을 만들기란 결코 단번에 되는 게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도 자주 내 식생활을 걱정했다. 나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혼자 지내는 사람은 원래 밥을 잘 못 챙겨 먹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자취생의 특징 중 하나가 사람들과 외식을 할 때면 음식을 남기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건 어쩌면 기본적으로 잘 먹는 사람이고 먹는 양이 적지 않은 나한테만 해당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야채를 사두고 3주 뒤에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지 않게 되기까지, 과일과 고기를 스스로 마트나 시장에서 구입해 먹기까지는 적어도 3년 이상이 걸렸다.


몇 년 새 인간을 위한 편의는 더욱 빨리 발달해 배달음식이 더욱 가깝게 생활에 들어왔고 반조리된 밀키트 식품도 많아졌다. 1인분 메뉴도 쉽게 배달되고 메뉴도 다양해졌다. 생활의 편리는 나 같은 1인 가구에게는 놀라우리만큼 쉬운 위로를 준다. 내면의 고독과 외로움이 나를 압도하거나 바깥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우울감에 허덕여 음식을 찾았다. 먹는 행위로 내면의 충만함을 얻으려 했다. 게다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쉬운 방법이었다. 밤에 먹는 달콤한 야식은 늘 폭식과 과식을 초대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들과 함께 했던 나날도 있었다. 그때는 스스로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나, 시험하는 망나니가 따로 없었다.


혼자의 시간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나를 시험하는 순간이 길어지는 일이었다. 나와 친해지는 한편 쉽게 게을러질 수 있는 조건이기도 했다. 혼자 있는 동안 배고프지 않아도 허한 마음에 먹곤 했다. 자주 배달음식을 먹었다. 배달음식은 1인분과 2인분 가격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는데, 여유가 없을수록 사람은 가성비를 찾게 되는 것인지 나는 혼자면서 2인분을 선택하곤 했다. 어떤 날은 그날 다 먹어치웠고, 어떤 날은 다음날까지 걸쳐 먹었고, 아주 가끔은 며칠 동안 조금씩 나눠 먹었다. 그날그날 나의 1인분은 달랐다.



#일인분의삶 #1인가구 #독립생활 #에세이 #자취 #연재 #습작 #마음의허기 #빵순이 #먹고사니즘 #한끼 #애환

매거진의 이전글 [일인분의 삶] 샌드위치 공동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