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슬기 Feb 02. 2022

연애, 할 수 있을까

30대의 연애, 어른의 연애

나의 연애는 대학교에 들어간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캠퍼스 라이프는 이성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사귀는 관계로 발전하는 계기도 무궁무진했다. 한 사람하고만 오랫동안 만나는 것도 좋았겠지만 나의 경우엔 만남과 헤어짐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좋거나 싫은 감정에 충실했다. 상처받아 울었으면서도 또다시 찾아온 설렘을 마다하지 않았다.


스물다섯 살 때는 2년 정도 만난 연인과 헤어졌다. 아마도 권태기였겠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식은 마음을 되돌리기는 싫었다. 그 후 이성적인 감정이 드는 사람을 몇 번 만났지만 연인 관계로 발전하진 못했다. 속마음을 숨기고 짝사랑하다가 내 안에서 끝나버린 적도 있고, 상대방에게 마음이 닿더라도 어쩐지 깊은 교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1년에 3분의 2 이상은 연애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즈음 처음으로 긴 시간 연애하지 않는(못한) 일상을 보냈다. 그리고 퇴사와 독립이라는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나다운 삶과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헤매는 과정에서 또 한 사람을 마음의 방에 들였다. 한 1년 동안 그 사람을 동경했다. 어떤 면에서는 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우리에게 연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동경을 빙자한 연정의 마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는 했다.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는 타인의 관심에 관심이 많아지는 것일까. 어느 날 사람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나의 마음이 누구를 향하는지가 안줏거리가 되었다.


그날이 있고 나서 그에게 처음으로 개인적인 연락이 왔다. 그의 문자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데 믿어지지가 않았다. 로또라도 당첨된 것처럼 기뻐서 소리치고 싶었는데 순간 좁은 방 너머로 소리가 샐 것이라는 현실 자각이 되어 그러지 못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이상한 몸짓을 해대며 (나는 그것을 춤이라 일컫고 싶지만) 혼자서 기쁨을 표출했다. 


우리는 남자 대 여자로 만나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을 나누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갔다. 그와 연인 사이가 되었고 행복지수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바쁜 와중에 짧은 전화 통화가 설레었고 일 마친 후 늦은 밤 5분 정도 보는 것에 그저 세상이 다 녹아내렸다. 예전처럼 자주 만나고 계속 연락하는 식의 연애는 아니었다. 둘 다 시간의 여유가 많지 않았고 각자의 일상도 제대로 돌봐야 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어른의 연애인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겉치장을 억지로 하지 않았다.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이미 독립해 살면서 짙게 화장하거나 화려한 옷과 액세서리를 사지는 않게 되었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달라지진 않았다. 나는 자연스러운 맨 얼굴과 편한 옷차림을 고수했고 그도 나의 꾸미지 않은 모습에 큰 불만을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믿는)다. 서로의 생활을 존중해 주는 게 성숙한 어른의 관계라 믿었다. 


그러다가 그를 향한 나의 마음이 점점 커졌다. 그에게서 연락이 더 자주 왔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모르는 그의 일상을 궁금해했다. 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불안했다. 섭섭함이 밀려왔고 때론 원망했다. 상대방의 삶 전체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난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참을성 없고 서툴렀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으니 이성적인 판단과 현명함이 늘었을 거라 착각했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마음은 조급함만 컸다. 애정과 관심만 바라는 게 가끔 쓰나미처럼 감정을 뒤흔들었다.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고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기에는 연락도, 만남도, 어쩌면 마음도 한참이나 모자라는 사이 같았다. 


몇 개월 뒤 우리는 헤어졌다. 시간 차를 두고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났고, 헤어졌다. 몇 번이나 다른 사람을 만나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언제나 누군가 좋으면 그걸로 마음을 던질 준비가 되었다. 자꾸 생각나고 궁금하고 넘치는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 그것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의 전부였다. 그렇게 해서 서로 동의하에 만남을 시작하기는 했으나 어쩐지 오래 지속되는 관계는 아니었다. 1년을 넘기지 못했던 나의 연애 방랑벽을 스스로의 문제점으로 치부했다.


관계를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한다는 게 나로서는 단점으로 느껴졌다. 이제는 쉽사리 누군가를 좋아하기가 무서워졌다. 늘 감정이 먼저였던 내게 이성적인 판단이 앞서기 시작했다. 관계에 무작정 뛰어들던 내가 앞으로 있을 부정적인 일을 먼저 생각하며 머뭇거렸다. 이런 걸 보면 나이가 들수록 겁쟁이가 된다는 게 거짓은 아닌가 보다. 


짧게 지속된 관계의 경험은 내게 두러움과 의심을 가져다주었다. 그리하여 풍선처럼 부푼 감정이 생겨도 그것을 붙들고 놔주지 않는 이성이 늘 따라다닌다. 그 이성은 고작 엄지만 해서 자칫 잘못해서 손가락을 떼어버리면 잡혀 있던 감성은 그새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 이리저리 날아다닐 테지. 


살면서 어느 것 하나 서툴지 않은 게 있을까 싶다. 유독 나에게는 연애가 그랬다. 깊은 유대를 요구하는 관계. 만남과 헤어짐을 아무리 반복해도 같은 건 하나도 없다 타인이 지닌 특수성은 늘 새로움을 가져다주고 그것에 익숙해질 일은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아주 조금, 시행착오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일인분의삶 #연재 #습작 #글쓰기 #연애 #연애단상 #단상 #1인가구 #독립생활 #어른의연애 #30대의연애 #삶 #관계 #만남 #헤어짐 #연인 

매거진의 이전글 줄어든 만큼 명확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