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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기 Jan 14. 2022

줄어든 만큼 명확하다

"머스트해브아이템은 머스트해브아이템이라고 안 하더라고요"

독립과 퇴사 후의 일상은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이 적당히 섞여 있다. 몸무게와 얼굴은 여간해서 잘 바뀌지 않는다. 솔직히 몸무게는 매년 조금씩 늘긴 한다. 나잇살이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더라. 얼굴도 알게 모르게 바뀌는 게 있다. 피부의 탄력 정도나 느낌 같은 것. 그렇긴 해도 기본적인 골격이나 생긴 모양은 글쎄, 드라마틱한 변화를 느끼려면 성형 같은 걸 해야겠지? 생김새만큼이나 성격도 웬만해선 그대로다. 간섭하고 잔소리하는 사람에게 싫은 티를 팍팍 내는 건 여간해서 고쳐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문제를 혼자서 결정하는 버릇도 여전하다. 이런 것들은 적어도 오늘과 어제가 확연히 달라지지는 않는 것들. 긴 시간을 두고 봐야 변화를 알 수 있다.


반면에 하루아침에 내가 사는 집과 생활하는 동네가 바뀌었다. 더는 가족과 지내지 않게 되었으며 직장을 관두고 대학원에 들어갔으니 보는 사람들도 달라졌다.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의 말대로 시간을 달리 쓰고, 사는 곳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사람이 변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인 듯하다. 일상생활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나의 말, 생각, 경험들을 뒤바꿔놓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얘기겠지만.


다시 생활 속 자그마한 부분을 떠올려보면 노동과 소비의 변화가 가장 크다. 돈을 벌어들이는 노동이 (일단은) 사라졌으니 그에 상응하는 돈을 쓰는 일, 소비습관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퇴사를 맘먹었을 때, 그리고 독립을 하겠다 결심하고 난 후에도 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어떻게 해야지,라는 대략적인 그림은 그렸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시뮬레이션해가며 향후 1년을, 혹은 그 이상을 떠올리진 않았다. 그저 그래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내 앞에 놓인 선택지를 집어 들었을 뿐이다. 게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는 실제로 부딪혀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지 않은가.


어떤 계획이 없어도 뭐든 닥치면 그다음 방향은 어떻게든 생긴다. 더는 돈을 벌지 않게 되었으니 조금이나마 돈을 벌 궁리를 해야 했고, 이제부터 모든 생활비를 혼자 감당해야 하니 돈 씀씀이를 줄여야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벌이는 해야 했으니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한참 직장인이었다가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하려니 나조차도 어색하긴 했다. 대학원 입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학생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십 대 후반은 참으로 어정쩡한 나이라 여겼다. 그때는 이렇다 할 자기 확신이 없었으니까. 


당시 카페 아르바이트에 대한 로망이 있어 이력서를 들고 집 근처 카페를 찾았다. 카페 주인은 나의 이력서를 보며 몇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내 나이와 직장 생활 이력을 보던 표정이 웃는 것인지 찡그린 것인지 애매모호했다. 몇 군데 더 할 만한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녔고 일을 할 수 있게 되긴 했다. 카페가 아닌 건 아쉬웠지만.


이제부터 월급이 아닌 시급이 내 벌이가 되었다. 월급쟁이 시절의 소비품목을 대폭 끊어냈다. 옷, 신발, 화장품, 액세서리 같은 것이 일 순위. 사계절 입을 옷은 충분히 옷장에 들어가 있으니 유행에 좀 뒤처지더라도 당장에 새 옷이 필요하진 않을 터였고, 어쩌다 한 번씩 신는 구두도 이젠 사치품이고, 화장품을 새로 사는 것도 욕심일 뿐이다. 가끔 기분 전환 삼아 했던 네일 아트, 속눈썹 연장 시술을 비롯해 펌이나 염색도 하지 않기로 했다. 보는 것도 먹는 것도 즐거운 디저트도 자제하고 커피는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만 사 마셨다. 그마저도 선배가 사주면 기쁘게 얻어마셨다. 이렇게 돈을 아껴 쓰게 되니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이십 대 초반, 졸업 후에 내가 직접 노동을 해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백 퍼센트 내 자유의지로 소비하는 삶을 살았다. 명품처럼 고가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누릴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데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소시민으로서 누릴만한 사치는 대부분 즐길 수 있었다. 그건 부모님이 나의 자산에 관섭하지 않고, 나에게 빚이나 부양의 의무가 없기에 가능했다. 독립과 퇴사 후에도 마찬가지여서 벌이가 줄어들었어도 나 하나만 건사하면 된다는 게 어쩌면 다행이었다. 


소비의 폭이 줄면서 선택의 폭도 줄었다. 옷만 해도 그렇다. 이제 내게 옷은 패션의 영역이 아니라 생필품의 영역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처럼 사복의 제복화를 이루어내진 못했지만 적어도 매일같이 쇼핑몰을 찾지는 않았다.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소비를 멈췄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그렇다고 줄어든 선택의 폭이 아쉽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게 줄어든 게 아닐까 조바심이 없진 않았지만 오히려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고 그것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울적할 때 쇼핑을 할 순 없었지만 배움을 위해 지식서를 사고 밑줄을 긋고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애쓰게 되었다. 줄어든 선택의 폭은 선택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혼자서 생활을 꾸려나가면서 진짜 생필품이 뭔지 알 게 되었다. 실제로 우리가 매일 같이 사용하고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제품에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다. 칫솔과 수건, 로션과 같은 것들. 요즘같이 수많은 광고와 마케팅이 판을 치는 시장에서 유혹을 뿌리치기란 참 쉽지 않은데, 벌이가 줄어든 게 어쩌면 다행이다. 어쩔 수 없었지만 꼭 필요한 소비를 할 수 있는 연습이 되었다. 


사고 싶은 걸 다 살 수 없게 되면 우선순위가 생긴다. 그렇게 소유하는 물건들에는 애정이 담긴다. 소비의 폭을 줄이고 소유하는 물건을 거르고 그렇게 나만의 스타일과 취향을 만들어간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있음으로 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줄어든 만큼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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