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핏을 만나
독립생활 3년 차에 접어들면서 내 나이 앞자리가 바뀌었다. 독립하고 크게 달라진 건 물리적인 주거공간, 노동의 형태, 소비패턴이었다. 여기에 나이 앞자리가 3이 되면서 저질체력과 나잇살도 얻게 되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본격적으로 운동을 고민하게 되었다.
서른이 되기 전의 나는 운동에 관해서라면 하고 싶은 마음과 하기 귀찮은 마음이 공존했다. 그래서 홈트레이닝을 한다든지 집 앞에서 줄넘기를 한다든지 아니면 어디서든 달리기를 한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기는 해도, 실천하지는 않았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면서 ‘운동하긴 해야 하는데’라는 말만 달고 살았다.
몸을 스스로 움직이려는 의지가 없으니 누군가 시켜주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맘먹었다. 혼자서 해야 하는 헬스는 예전에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뒀었다. 그렇다고 요가처럼 평화로운 운동도 오래 하지 못했다. 수영은 해 본 적 없지만 물은 무서워하는 데다 수영복을 입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어떤 운동이 좋을까, 고민하던 차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을 알게 되었다. 코치의 그룹수업으로 이루어지고 여러 종류의 운동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단시간 고강도의 운동이라고 하니 체력증진과 다이어트에도 큰 도움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망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비용 문제였다. 크로스핏 한 달을 하려면 헬스장 몇 개월을 등록하는 비용과 맞먹는 탓에 나 같은 가난한 1인 가구에겐 선뜻 지불하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가 없을 정도로 체력은 바닥이고 늘어가는 몸의 군살도 보기 싫었다. 다짐하기 좋은 새해를 맞이하여 더는 운동하는 걸 미루지 않기로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어차피 비용 부담이라는 건 돈이 많으나 적으나 마찬가지였다.
새해의 다짐이 비록 작심삼일로 끝날지라도 일단은 설레는 마음으로 크로스핏의 문을 두드렸다. 첫 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했다. 덕분에 주말엔 다리를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근육통을 겪어야만 했다. 내 몸에 이렇게나 많은 근육들이 그동안 제대로 쓰이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니…. 새로운 자극으로 고통에 찬 신음을 내면서도 한편으론 희열을 느꼈다.
곧 크로스핏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매일 운동을 하며 그 횟수가 쌓일수록 몸의 변화도 가시적으로 보였다. 크로스핏으로 정말 다양한 훈련을 할 수 있었다. 보통 초등학교 이후로는 해 본 적 없는 운동들, 철봉 매달리기나 턱걸이, 줄넘기, 달리기도 했다. 어릴 때는 반 대표 릴레이 주자로도 뛰었지만 30대의 나는 약 1분을 뛰는 것도 힘들어 숨이 찼다. 어릴 때 했던 줄넘기 2단 뛰기도 몇 달을 연습한 후에야 가능해졌다.
운동을 시작한 뒤로 하루하루 활력이 치솟았다. 몸을 움직이고 나면 개운했고 책상에 앉아 있을 때 왠지 집중도 잘 되는 것 같고 하루 끝에 자는 잠도 더 달콤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체력부터 기르라는 말을 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드라마틱한 몸의 변화는 없었지만 분명히 내 몸에는 전보다 지방은 줄어들고 근육은 쌓여가고 있었다.
게다가 운동하는 다른 여성을 보며 멋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도 언젠가 멋지게 퍼포먼스를 해 보이고 싶다는 바람과 운동하는 여성에 대한 동경심이 물씬 생겼다. 늘 새로운 운동으로 지루할 틈 없이 하다 보면 분명 어제보다 발전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간혹 다친 적도 있다. 아무래도 고강도의 운동이라 무리하거나 한순간 방심하면 부상의 위험이 따른다. 무릎 정도 높이의 박스를 두 발로 뛰어오르는 동작을 하다가 정강이가 쓸린 적도 있고 어깨를 쓰는 동작을 하는데 빨리하려는 마음이 앞서 어깨를 접질리기도 했다. 어깨를 다쳤을 때는 생각보다 통증이 오래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때 운동이 한참 재밌을 시기였고 단 하루라도 운동하기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조심해서 운동하면 되리라는 자신감 과잉으로 어깨가 아픈데도 계속 운동했다. 결국 탈이 났고 나는 어깨를 쓰는 거의 모든 운동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끝까지 몸을 혹사시킨 뒤에야 쉼을 필요로 함을 깨달았다.
운전을 시작한 지 1년 차보다 2년 차일 때 사고가 더 잦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운동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깨를 다친 시기도 2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주변으로부터 운동을 잘한다는 말을 제법 들었고 나 스스로도 운동에 과몰입되어 있었다. 그것이 적당한 쉼을 몸에게 주지 않았고 욕심을 부리게 된 원인이었다. 1개월만 쉬면 되겠지, 2개월만 쉬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어서 빨리 예전처럼 운동할 수 있기를 바랐으나 생각보다 몸은 더 오래도록 쉬기를 바랐다.
나는 내가 운동을 좋아하고 하지 못해 안달하는 것에 뿌듯함까지 느꼈다. 중독이라고 해도 이건 좋은 의미의 중독이지 않은가. 하루 일과를 운동 시간에 맞춰 짜고, 컨디션이 별로여도 운동은 꼭 해야만 했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운동이다 보니 서로의 기록을 두고 경쟁하는 것도 내심 즐겼다. 내 안에 호승심이 이렇게나 클 줄은 크로스핏 하기 전엔 몰랐다.
크로스핏은 내게 즐거움을 주었지만 어쩌면 지나친 강박에 휩싸인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좋아서 하는 운동인데 몸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 마침 생계가 바쁘다는 핑계로 몇 달 꽤 오래 쉬었다.
약 4개월을 내리 쉬면서 조금씩 강박을 털어냈고 운동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가 되었다. 사람들은 운동을 하든 하지 않든 저마다 의미 있는 삶을 꾸려나간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운동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어깨도 더는 아프지 않았다. 몇 달 만에 다시 시작한 운동으로 또 어마어마한 근육통에 시달렸지만 예전에 새겨둔 내 체력과 동작에 대한 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운동을 하지 않을 때도 행복했지만 다시 운동을 해서 또 행복감이 밀려왔다.
미니멀리즘 삶을 쓴 진민영 작가는 자아 발전이 행복을 준다면 적당한 선에서 멈춰도 죄책감 따위는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자아 발전’이라는 자리에 ‘운동’을 집어넣어 본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자리에 다른 어떤 것이 들어가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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