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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기 Aug 15. 2020

비혼에 필요한 마음가짐

#비혼주의 #삶의방향성

비혼에 필요한 마음가짐 / 이슬기



최근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다. 10명 남짓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글쓰기에 관심 갖고 모였다. 지금껏 나를 포함해 글 쓰는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건 기본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픈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런 사람들은 말로 하는 자기소개도 막힘이 없다. 으레 첫 만남에 자기소개를 하는데, 포스트잇을 이용해 자신을 나타내는 키워드를 적는 방식은 제법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그날 한 참여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키워드 세 가지로 ‘나’, ‘직장인’, ‘엄마’를 적어냈다. 직장인으로 22년을, 엄마로 19년을 살아왔지만 정작 자기 자신으로는 얼마나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다는 설명으로 운을 띄었다. 글쓰기 수업에 나온 것도 스스로를 알아가고 스스로와 친해지기 위한 일종의 시도라 했다. 덧붙이기를 고3이 된 딸아이와 친구같이 지낸다며 엄마로서의 삶은 꽤 괜찮단다. 


한 예로 딸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자신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오히려 “엄마는 왜 나한테 결혼하라고 말하지 않아?”라고 되물었단다. 참여자는 딸에게 그 나이 때는 나도 그랬다며,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셔서 그 자리에 있던 우리들은 모두 크게 웃었다.


하긴, 나 또한 10대 때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기억이 있다. 그 다짐은 20대 초반까지 이어졌고, 20대 후반을 넘어서야 ‘좋은 사람이 있다’는 가정 하에 ‘결혼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30대 중반으로 넘어가는 지금은? 글쎄, 반려자로서 좋은 사람은 신기루 같고 영혼의 단짝은 유토피아에나 존재할 것 같아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살수록 경험치는 늘어나고 혼자만의 여유와 자유가 이토록 좋은데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발목 잡히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가능성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보니 암묵적으로 비혼주의자의 마음과 다를 바 없다.


최근 비혼 장녀가 병든 엄마의 간병을 도맡아 하는, 일명 독박 간병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칼럼을 읽었다. 만약 부모가 아플 경우 다른 형제들보다 비혼 상태의 자식이 혼자라는 이유로 돌봄을 떠맡게 된다는 것이다. 비혼이라고 해서 가족에게 더 헌신해야 한다는 조항은 그 어디에도 없는데…. 더 이상 주부의 노동이 당연하지 않듯 간병 혹은 돌봄이라는 굴레도 벗어나야 할 대물림이라고 생각한다. 장녀의 간병은 가부장제에서나 통용되는 미덕이지, 비혼이라는 새로운 가족 형태에게는 반(反)하는 일이다. 


내가 아는 한 지인도 가끔 에스엔에스에 아픈 아버지 간병, 코로나19로 학교에 갈 수 없는 조카 돌봄에 정작 자신의 일은 미뤄지고 있다는 일상을 업데이트하곤 했다. 그 역시 비혼주의를 지향하는 여성이다. 자연스럽게 나의 상황을 떠올렸다. 내 부모님은 아직 나보다 벌이도 더 좋으시고, 크게 아픈 데 없이 건강하시니 다른 이의 상황과 비교해 복이라고 느낀다. 상상하긴 힘들지만 만약 나의 부모가 아파 간병이나 돌봄이 필요하다면 나는 무작정 희생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다른 방식으로 부모를 위할 것이다. 장담할 순 없지만 부모님 또한 불필요한 부담을 내게 지우진 않으실 테다. 


저마다 가정의 분위기는 다르지 않은가. 내가 지내온 가정은 서로가 너무 가깝지 않고 얼마간의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다. 함께 살 때, 별일 아닌 수다를 떨거나 언제 귀가하는지 따위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의 형제 모두 독립해서 사는 지금도 딱히 안부전화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부모자식의 관계보다는 개별적 자아로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해진 느낌이다. 심지어 부모님은 내가 사는 곳 주소도 모른다. 


찾아올 일이 없는데 굳이 서로 주소를 묻거나 말해준 적 없다. 그저 한 번씩 내가 집에 가서 같이 식사하고 얘기 나누다가 배웅을 할 차례에 ‘다음에 또 온나.’ 라는 부모님의 말이면 충분하다. 


적당한 거리두기는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불필요한 대물림이나 굴레를 지지 않는다.



국제신문, 청년의 소리 칼럼 2020.6.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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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200617.2202100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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