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즐거워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장석환(이하: 장): 백석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스물두 살 장석환입니다.
배우를 꿈꾸고 현재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장: 2016년에 방영한 드라마 <W(더블유)>를 본 이후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막상 부모님께 연기하겠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렵더라고요.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는 마음을 겨우 전했어요.
자식이 배우를 하겠다고 하면 대부분 집안의 엄청난 반대를 예상하잖아요. 그런데 저희 부모님께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던 건지, 아들이 하고 싶은 게 있다는 자체에 대한 대견함 때문이었는지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준비를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요. 대신 학업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는 당부의 말씀을 하셨죠. 그렇게 연기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입시 특기로 뮤지컬을 배웠어요. 제가 몸치에 박치라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더라고요. 나중에는 학원 가는 게 싫어졌고 실제로 학원에 빠지고 놀러 간 적도 있어요(웃음). 이런 마음가짐 때문이었는지 예술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집 근처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죠.
신기하게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연기가 더 하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연극부에 들어갔죠. 연극부에서 연기를 하며 든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직업은 오직 배우뿐이겠더라'생각으로 현재까지 오게 됐어요.
사전 인터뷰에서 뇌종양 이야기를 했잖아요.
장: 고등학교에서 농구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어요. 균형 잡기가 어렵더라고요. 처음에는 단순히 두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갈 때까지 지속되어서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어요. 소뇌 쪽에 종양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멀쩡해요(웃음).
뇌종양 진단을 전후로 생긴 변화가 있나요?
장: 그때까지도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반대로 부모님은 공부하기를 바라셨고요. 아무래도 한 번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인지 아버지께서는 제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라는 마음이셨어요. 그런데 뇌종양 판정으로 수술을 받고 난 후에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건강하게 살라는 말씀을 하시며 제 꿈에 동의해 주셨어요.
힘든 시기가 부모님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된 기회가 되었네요.
장: 맞아요. 부모님의 반대를 조금 더 쉽게 설득할 수 있었죠(웃음). 처음 예술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한 후 지금까지, 점차 가족과의 갈등이 커졌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니까요.
<내안의나>라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배우란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사는 것’에서 시작됐어요. 혹시 이 말에 동의하세요?
장: 이 문장을 많이 보고 들었거든요. 한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서 인물의 행동, 습관, 생각 등을 분석하고 준비하는데요. 그리고 그 인물과 다시 멀어지는 노력도 하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산다기보다는, 잠시 빌려온다고 생각해요.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거죠.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비유했는데요. 도화지에는 흔적이 남기도 하잖아요.
장: 실제로 그런 점이 장점으로 나타날 때도 있어요. 흔적을 따라 그대로 진행하면 될 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반대의 상황이라면 흔적이 남지 않을 때까지 지우개로 더 힘껏 지워야죠(웃음). 그때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작품 속의 인물이나 주제를 표현하는 본인만의 방법과 연결될 것 같아요.
장: 비슷해요. 우선은 저만의 분석으로 인물을 그려둬요. 그렇다고 그대로 연기에 반영하지는 않아요. 현장에서 다른 배우와의 호흡이나 감독님의 디렉팅에 따라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마침내 색을 칠하는 거죠. 생각을 비우고 현장의 흐름에 맞춰 앞으로 가다 보면 그 인물에 대한 생각이나 표현이 더 구체화되더라고요.
흔히 ‘영감을 얻는다’라는 표현을 하잖아요. 본인은 어디서 영감을 받나요?
장: 소통을 하며 주로 얻어요. 물론 간접 경험인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도 가능하겠지만, 저는 아니더라고요. 혼자 준비할 때는 희미한 형태인데,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소통하고 호흡을 주고받다 보면 인물에 대한 영감도 얻고 그로 인해 더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더라고요.
연습실 가기 전에는 어떤 준비를 하나요?
장: 잠들기 전에 인물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정리해요. 가족관계는 어떻고, 어떤 옷을 입으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같은 것이요. 망상이라고 해야 될까요(웃음)? 대사는 외워가는 정도지 입으로 따라 하며 연습을 하진 않아요. 저도 모르게 억양이나 말버릇이 붙는 걸 방지하려고요.
본인의 생각과 외부 의견의 균형을 잘 잡아야겠네요. 각자의 해석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장: 맞아요. 배우 각자 인물을 해석하는 정도도 다르고 이를 연기에 녹여낼 때의 균형도 필요하니까요.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도 배우에게 꼭 필요한 능력 중 하나예요.
현장에서의 소통도 연기에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겠네요. 본인만의 소통 방법이 있나요?
장: 최근 연극 연습에서 정한 규칙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연기적인 내용을 피드백하는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존댓말로 말하고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는 것으로 정했어요.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며 의견을 나누다 보니,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게 되더라고요(웃음).
배우로서 본인만이 가진 마음가짐이 있나요?
정: 거창한 건 아닌데요. 시간 약속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연기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다 보니, 한 명만 늦어도 다수가 손해를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시간 약속을 병적으로 지키는 경향이 있어요. 고등학교 연극부에서 연습 시간에 늦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면전에다 막말을 하진 못했지만 속으로 생각했죠. ‘나는 절대 늦지 말자’고요. 사실 오늘 인터뷰도 한 시간 전에 와서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어요(웃음).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약속시간부터 잘 지켜야겠네요(웃음). 좋은 배우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정: 진실된 연기를 하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진실된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배우로요. 말장난처럼 보일 수 있는데요.
연기하는 배우가 혼을 실은 연기를 하더라도, 오히려 관객이 부담을 느끼거나 진심이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보여지는 게 더 중요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자기감정에 묻히지 말고 관객이 느낄 정도를 전달하도록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를 연기한 배우 히스레저가 떠오르는데요.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우울증을 앓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알려졌잖아요. 이와 비슷한 경우를 경험한 적도 있나요?
정: 이데올로기와 자기주장이 확실한 인물을 연기한 적이 있어요. 그런 인물을 공부하다 보니까 제 성격도 그렇게 단호하고 확고해지더라고요. 의식하지 않았는데 저답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한 거죠. 아마 당시에 함께 준비하던 친구들이 저 싫어했을 거예요(웃음).
대중에게 이미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되어서 비슷한 인물을 주로 연기하는 배우도 있잖아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 배우 본인도 참 힘들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까요. 반대로 이미 대중에 인식된 이미지가 있는데 새로운 이미지를 대중에게 다시 이해시키기 위한 작업도 쉽지 않을 것 같고요.
연기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잖아요. 어디에서 본인의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가요?
장: 어디라고 정해두지 않았어요. 연극, 영화, 드라마 가리지 않고 언제든 저를 불러주시면 그곳에서 연기할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조승우 배우님도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곳에서 연기를 선보이잖아요. 저도 그렇게 다재다능한 배우고 되고 싶어요.
현재 회사나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있나요?
장: 지금은 없지만 연락을 취하고는 있어요. 아무래도 많은 기회가 주어지려면 소속사나 에이전시가 있어야겠더라고요. 제가 어떤 장르를 선호한다면, 그렇지 않은 곳에서 연기를 할 때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 다행이죠(웃음).
좋아하는 작품은 어떤 장르인가요?
장: 흔히 배우가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하면 예술적이고 철학적일 것 같다는 편견이 있을 수 있는데요. 저는 상업작품을 좋아해요. 최근에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재밌게 봤어요. 재미와 함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잘 녹아 있더라고요.
또 영화 <오펜하이머>라는 작품도 봤는데요. 처음에는 거의 2시간을 졸았어요. 잠에서 깨니 핵이 터지고 있더라고요(웃음). 영화 외적인 내용이지만, 한 남성 매거진에서 <오펜하이머> 관련하여 시계에 대해 작성한 칼럼을 읽었어요. 시계 브랜드 ‘오메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영화 속 모든 인물이 이 브랜드 시계를 차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집요한 디테일에 다시 한번 놀랐죠.
재미있게 본 작품 중 하나를 추천해 주세요.
장: 영화 <위플래쉬>를 추천해요.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봤는데 엄청 집중해서 봤어요. 보통은 영화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아니더라고요. 영화를 보며 손에 땀이 난 건 이 영화가 처음이었어요.
저도 재밌게 봤어요. 영화 <라라랜드> 감독과 동일인물이라고 해서 놀랐던 기억도 있네요. 다음 주제인 직업관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 하는데요. 아무래도 한 가지 일을 하다 보면 장단점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이에 대해서 얘기해 주세요.
장: 제가 아직 어리고 경험도 적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재미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무대 위에 서면 제 숨소리와 행동 하나하나에 모든 사람들이 집중하거든요. 희열이라고 할까요? 그때 느끼는 감정이 좋아서 힘들고 외로워도 계속할 수 있는 거죠.
단점은 직업병 같은 건데요. 계속해서 자기감정을 관찰하게 돼요. 예를 들어 화가 났을 때 ‘내가 이렇게 화를 내고 호흡은 이렇게 하는구나’를 저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감정을 전달하는 직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감정에 생각이 많아져요.
저희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계세요.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제 감정을 생각하며 계산하고 있더라고요. ‘이 정도 감정이면 눈물이 나고 이런 호흡을 사용하는구나’하고요. 슬픈 일이지만 배우로서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일이죠. 좀 전에 얘기한 것처럼,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해야 하니까요.
이와 같은 감정의 생각을 기록하기도 하나요?
장: 아니요. 기록하면 오히려 굳어지게 될까 봐하지 않아요. 이전에 눈물이 났던 감정의 템포에 닿았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잖아요. 대신 당시에 느낀 감정과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죠.
노력이라는 표현을 하였는데요. 앞의 이야기가 포함되는 포괄적인 질문이 되겠네요. 배우로서 성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장: 엉뚱한 답일 수 있는데요. 투자 공부를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배우의 길을 걷던 많은 사람들이 포기한 대부분의 이유가 돈이더라고요. 저는 돈 때문에 연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거든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까 투자더라고요. 마음이 급해지지 않도록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제 꿈을 위한 자금을 위한 노력이에요.
가성비 좋은 배우가 되려고 다양한 것을 배우는 것도 그중 하나가 되겠네요. 요즘은 클라이밍을 배우고 있어요. 혹시라도 클라이밍이 필요한 작품을 할 때 돈과 시간을 상대적으로 절약하기 위해서요. 다양함이 미리 준비된 배우가 되려고요.
배우라는 직업을 꾸준히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장: 뇌종양 수술 후 지금까지, 재미있고 즐거운 일을 하자라는 생각이거든요. 연기하는 지금이 바로 그런 일이고요. 그런데 앞으로도 쭉 그렇겠다는 확신은 없어요. 연기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게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요(웃음). 하지만 지금은 연기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죠.
혹시 연기 외 노래나 사진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기도 한가요?
장: 제가 몸치 박치다 보니, 노래보다는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그림도 영 소질이 없어서…… 아! 시를 쓰기도 해요. 시를 쓰다 보면 제 생각을 옳고 그름으로 구분하면서 피어나는 감정을 조금씩 정리할 수 있더라고요.
의외의 답변이네요. 저는 시와 연기가 매우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기는 구체적인 대사와 행동을 통해 생각을 전달하고, 반대로 시는 굉장히 함축적이고요. 이렇게 상반된 작업이 연기에 도움이 되기도 하나요?
장: 서로 상호작용을 하진 않았지만, 시를 쓰거나 연기를 할 때 저도 모르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내가 이 정도까지 웃을 수 있구나’ 같은 것들요. 발굴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저도 모르던 제안의 다른 모습을 발굴하는 거죠.
배우의 길을 걸어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장: 배우도 연기가 정말 하기 싫고 힘들 때가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웃음). 그럴 때 저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거나, 극장에서 연극이나 뮤지컬을 관람해요. 그러고 나면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생기더라고요. 제가 처음 드라마 <W>를 봤을 때처럼요.
곧 군대에 가잖아요. 그 공백은 어떻게 채울 계획인가요?
장: 저는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할 예정인데요. 퇴근 후에는 아까 말한 클라이밍 같은 저만의 특기를 개발하거나 연기를 공부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또 돈을 벌지 않고 할 수 있는 연기활동도 있으니까요.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저를 좀 더 갈고닦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늘 <내안의나>라는 인터뷰에 응한 계기와 소감이 궁금해요.
장: 세상에 한 번이라도 더 배우 장석환이라는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예요.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글, 사진, 영상 등 엄청난 양의 미디어가 수도 없이 쏟아지잖아요. 오늘 인터뷰가 한 번 더 곱씹어 볼 수 있는 존재로 남길 바라요. 자기 전에 문득 생각나는 것처럼요(웃음).
1. 인터뷰이 장석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olor._.pastel/
2. 인터뷰어 배대웅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ifyouknowb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