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서 불안의 책까지,
재작년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올 때쯤 친구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순례길을 걷고 난 후 포르투갈을 열흘 정도 여행 했다. 포르투와 리스본에 주로 머물며 36일간의 긴 여행의 끝을 리스본에서 마무리했다.
나에게 리스본은 파리만큼이나 이름이 가지고 있는 낭만이 있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영화도 책도 본 적이 없지만, 꽤나 유명해서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내용이 무어인지 알지 못해도. '리스본', '야간열차'라는 단어의 조합이 아무런 이유 없이 설렘을 주었다.
포르투에서는 동 루이스 다리 바로 옆 숙소를 얻었다. 에펠탑을 설계한 귀스타프 에펠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가 설계한 동 루이스 다리는 이곳의 명물이었다. 다리 위에서는 누구나 아름다운 아침 안개와 저녁노을을 매일 볼 수 있었다. 도루강변에서는 러닝과 카약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와인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기대 없이 갔던 포르투의 아름다운 풍경에 빠졌다.
그렇게 며칠 포르투와 사랑에 빠진 뒤 리스본에 대한 기대가 조금 더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뒤 도착한 리스본은 너무 정신없을 정도로 복잡한 도시였다. 광장은 쏟아져 나온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관광객들을 피해서 간 광장 끄트머리에서는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내 귀를 너무 시끄럽게 했다.
친구와 나는 조금 특별한 여행을 하고 싶었다. 관광책자에 나오는 곳이 아닌 이곳에 있어 더 특별한 곳. 숙소에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하던 친구가 "리스본에 페소아라는 작가가 유명하대, '페소아의 집'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에 갈까?"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그곳에 가기로 했다.
번화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한적한 동네, 한적한 골목에 있던 '페소아의 집.'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그를 조금 알아보려고 그곳에 갔다. 페소아가 생전 살았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어놓은 곳이었다. 다른 관광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현장학습을 온 현지 중고등 학생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조금씩 그를 알아가기로 했다.
페소아는 글을 쓸 때 '이명'을 사용했다. '필명'과는 다른 의미이다. 페소아는 이명에 인격을 부여하고 인격에 맞는 다른 글을 썼다. 그리고 이명의 직업, 성격과 나이 등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무려 70개가 넘는 이명이 존재했고, 그 인격들에 대하여 리스본 대학에서 여전히 연구 중이다. 그가 남겨놓은 정보로 외형을 유추해 그림으로 그려놓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쉽게 이명에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페소아는 우리 스스로 상상하길 바랐었을지도 모른다. 늘 망상하길 바라고, 망상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으니까, 여행도 필요 없다 하였다. 여행도 상상하면 된다고 말했던 사람이니까, (불안의 책에서)
페소아 생전에 시집 한 권이 발간됐다. 그가 죽고 난 뒤 궤짝에서 3만 여장의 원고가 발견됐고, 후에 이 원고가 추려져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페소아는 아직 완벽하지 않은 본인의 글이 세상에 나오길 원하지 않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완성하지 못한 글조차도 완벽하다 하며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관람을 마치고 기프트 샵에 들러 내가 맘에 들던 이명의 시집이 있는지 찾아봤다. 아쉽게도 내가 원했던 이명 단독으로 나온 시집이 없었다. 그나마 영어로 된 시집을 하나 골랐다.
페소아 그리고 리스본이 더 궁금해졌다. 여행에서 돌아와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봤다. 무겁고 철학적인 이야기에 이전에 왜 영화를 보다 포기했는지 알 수 있었다. 기억하지 못했었지만, 여행 전 쿠팡플레이에서 보다만 기록이 남아있었다. 영화의 첫 배경은 스위스 베른의 다리 위였다. 자살 시도를 한 여자가 놓고 간 책과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리스본으로 떠나는 노인의 특별한 외출을 그린 영화이다.
그리고 페소아의 책을 몇 권 샀다. 불안의 서, 불안의 책, 시는 내가 혼자 있는 방식 등등 고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페소아는 읽지 않으려고 책을 산다고 말해주었다. (불안의 책에서) 언제쯤 읽어볼까? 꽤 두꺼운 책 두께에 시작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렇게 새해가 됐고, 시간이 더 지나면 흥미가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실제로 이전에 사놓고 나중에 흥미가 떨어져 보지 못한 책이 몇 권 있다. 그래서 책을 폈다. 읽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불안의 책'이다.
내가 두 권의 책(불안의 책, 불안의 서)을 산 것을 보고 친구가 말한다
N : 불안의 책, 불안의 서 같은 책 아니야?
S : 아니, 번역이 달라. 그러니까 다르다고 볼 수 있지. (언제부터 내가 번역가가 다르다고 두 권을 사는 사람이 됐지?)
N : 그러니까 같은 책이네?ㅋㅋㅋ
S : 페소아의 글은 워낙 감각적이고 철학적 표현이 많아서 번역가에 따라 다른 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읽어보니 그게 더 느껴져.(사실임.) 나는 두권 다 다 읽어볼 작정이야. 일단 읽고 있는 한 권을 완독하고 난 뒤에 말이야.(언제가 될지는 모름.)
그는 우리가 입속에 맴돌기만 하고 짐작만 하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 표현 안에 드문드문 실제 그가 보이는 것 같다. 아무리 이명으로 글을 쓴다 해도 본질은 그가 실제 원하고 추구하는 삶이 아니었을까? 그게 어디든 나까지 그의 심오한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의 책에서 나는 그의 한 단면을 보았다. 다른 책을 읽게 되면 각각의 이명 사이에 간극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이 한 권의 책이 나에게 페르난두 페소아의 전부이니까. 지금은 도라도레스 거리를 매일 걷고 있는, 망상에 빠지는 일을 사랑하는 회계사무원 '베르나르 소아레스'일 뿐이다.
그가 표현한 글엔 공감할 수 있는 것도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열흘 동안 책을 30% 정도 읽었다. 2/3 정도는 읽은 부분을 다시 돌아가서 읽는다.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흐르면, 글의 흐름을 금세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읽은 부분 중 1/3 정도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하루 분량을 다 읽고 나면, 대단하다 치켜세웠던 그의 심오한 어휘와 심층적인 묘사는 기억에서 휘발된다. 그래서 그의 표현법과 사고를 오래 기억하고 싶어 열심히 밑줄 포인트 스티커를 붙인다.
사람 많고 시끄럽기만 했던 리스본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92
몽상가 외에는 다른 무엇도 되고 싶지 않았다. 삶에 대해 말하는 이들에게 귀 기울인 적도 없었다. 내가 있는 곳에 없는 것과 내가 결코 될 수 없는 것에 늘 속해 있었다. 내 것이 아니기만 하면 아무리 하찮은 것에도 나를 매혹시키는 시가 있었다. 아무것도 사랑한 적이 없다.
100
나는 늘 나 자신의 흔적이거나 복제품에 불과했다. 내 과거란 내가 이루지 못한 모든 것이다. 과거의 감정은 그립지조차 않은데, 그 감정을 느끼려면 그 순간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지나가버리면 페이지가 넘어간 것이고,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이미 다른 맥락 안이다.
112
베르길리우스에게 주석을 단 이는 틀렸다.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가장 피곤하다. 사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116
글을 쓴다는 것은 잊는 것이다. 문학은 인생을 무시하는 가장 유쾌한 방식이다…………(중략)…………문학은 잠에 빠지듯 인생에서 멀어지게 한다.
140
불행히도 지성의 병은 감정의 병보다 덜 아프고, 불행히도 감정의 병은 육체의 병보다 덜 아프다. ‘불행히도’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인간의 존엄성이 그 반대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풀 수 없는 문제에 부딪혀 느끼는 지적인 고뇌는 사랑, 질투, 그리움 등의 감정만큼 우리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