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랑] 리뷰
셀 수 없이 많은 영상 콘텐츠의 범람 때문인지, 예전과 비교하여 월등히 높아진 기술 탓인지, 요즘은 예전 만화나 소설, 기타의 다른 장르의 실사 영화화가 유난히 많아지고 있다. 그 속에서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두터운 마니아 층이 있는 오사이 마모루 감독의 [인랑, 1999]이 김지운 감독의 손을 거쳐 한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많은 관객들 및 여론은 김지운 감독의 [인랑]에 아연 질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6년의 제작과정을 거쳤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는 김지운 감독의 말과는 다르게 영화 곳곳에 엉성함이 보인다.
물론 모든 영화로 리메이크되는 작품들이 원작을 곧이곧대로 따를 수는 없다. 실례로 영화 [왓치맨, 2009]의 경우 컷과 장면 연출 등이 원작을 그대로 따라 하다 많은 비평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요즘은 원작 이야기를 할라 치면 원무새(원작 타령만 하는 앵무새라는 조롱 섞인 단어) 소리 듣기 딱 좋을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영화 작품을 권위적인 자세의 원작 시선으로 보는 것이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앞 선 이야기들은 ‘변주’에 대한, 원작 팬들과 영화로만 콘텐츠를 즐긴 관객 사이에 오는 간극일 뿐이다. 여기서 필자가 꺼내는 원작 이야기는 ‘변주’ 그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닌 원작에 대한 이해도에서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원작은 양 쪽 진영의 정치적인 다툼에 희생되는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주제이다, 이렇게만 듣는다면 일차원 적으로는 김지운 감독의 [인랑] 역시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까지 고려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작 속 이윤희(한효주) 캐릭터인 아마미야 케이를 비롯해 여타의 캐릭터들은 사실상 후세 카즈키의 감정이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장치로써 쓰인다. 사실상 그의 시선이 영화의 시선이자 그가 겪는 트라우마가 이야기 속 상황을 더욱 비극적이게 부각해준다.
그러나 영화판은 다르다. 특기대 교관, 공안부 친구, 심지어 반란세력 섹트까지 원작과는 다르게 비중이 늘어났다. 예를 들면, 원작에서는 공안부에서 특기대를 없애려는 공작에 단순히 이용당하는 희생양으로 그린 것과는 사뭇 다르게 이윤희에게 여러 가지 한국식 신파 요소들을 넣고 공안부에서 나름의 킬러 역할까지 자행해 온 것으로 묘사하며, 한국판에서는 그녀의 비중뿐만 아니라 주체적인 캐릭터로 한층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된다. 쓸데없는 비중들이 늘어나며 정작 중요한 임중경(강동원)의 포지션이 약화된다. 그렇기에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으며 그가 느꼈을 트라우마나 그로 인해 변모해가는 과정이 퇴색된다. 원작 속에서 후세 카즈키가 소녀를 구하지 못해 계속해서 떠오르는 트라우마나 아마미야 케이의 죽음을 암시하는 악몽 등은 모두 생략된다. 이로 인해 영화판에서 초반부 준경과 상우(공안부)의 민간인 여고생 사살 사건을 조명해주며, 준경의 트라우마를 관객에게 이해시키려는 허접한 노력을 취하지만 심히 역부족이다.
이 영화는 지극히 투머치다. 말하고자 하는 바도 욱여넣기 식으로 주입하고 있다. 원작에 비해 섹트 요원인 구미경(한예리)까지 창조해가며 불필요한 액션신과 섹트를 부각하는 진영 관계,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 속에서 발전하지 못한다면 문제다. 섹트의 존재를 원작과 다르게 시나리오 상에서 부각하여 공안부와 뒷거래를 하는 양상을 만들어냈지만 정작 이야기의 흐름은 공안부vs특기대라는 원작 양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럴 것이었으면 무엇하러 관계를 복잡하게 하며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창조하여 러닝타임을 138분이나 늘려놓은 것이냐 말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지속적으로 원작에 대한 예우까지 보여준다. 오프닝 장면부터 특수기동복, 총기, 심지어 카메라 연출까지 원작을 그대로 차용한 부분들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골자는 복잡해지는 데, 몇몇 장면들만 짜깁기하듯이 원작을 그대로 가져왔다. 당연히 원작 속에서나 자연스럽고 타당하던 장면들이 무언가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나는 느낌이다.
도무지 이 영화의 노선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멜로를 그리고 싶은 것인지 화려한 sf 액션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은 것이지, 어느 하나 완벽한 것이 없다. 임중경과 이윤희의 멜로를 그리자니 시간이 부족해서 둘의 만남은 일단 CF처럼 만들고, 멜로만 나오자니 지루해지자 중간중간 액션을 넣는다. 원작 속에서의 액션은 사실상 압도적인 특기대의 잔혹한 학살이다. 그것은 후세 카즈키의 인랑으로서의 모습과 아마미야 케이를 대할 때의 모습의 대비와 함께 이야기와 흐름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액션에 타당성이 없다. 타당성이 결부된 액션은 관객을 흥미롭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
특히 마지막 임중경이 인랑임을 보여주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원작에도 없는 공안부 특임대(특수임무기동대)까지 만들며 엄청난 액션을 기대하게 하지만 앞의 투머치 이야기와 같이 쓸데없는 설정들로 이야기만 끄는 꼴을 자처한다. 게다가 이걸로 끝내지 않고 기어코 또 장준태와 마지막 대결까지 이어간다.
게다가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대의 모습과 임중경과 이윤희의 남산 데이트, 중경의 책꽂이 속 체게바라 성전, 엔딩 마지막 장면까지 정치적인 메시지도 어쭙잖게 계속 관객에게 들이댄다.
원작 속에서 후세 카즈키(영화판 임중경)가 버스를 타고 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카즈키는 주위에 타고 있는 승객들을 천천히 바라본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부터 책을 읽고 있는 학생까지, 학생은 이내 카즈키와 눈이 마주치지만 피해버린다. 이후 카즈키를 버스 창가 너머에서 비춘다. 지쳐버린 듯, 버스 손잡이를 잡은 팔을 반대편 팔로 감싸 안는 카즈키의 모습은 단순한 만화를 넘어선 영화임을 알려준다. 이윤희에게 보살펴야 할 병약한 동생을 설정하고, 공안부와 섹트 사이에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부여한다고 해서 생기지 않던 생명력이 만화 속 캐릭터에 부여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