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당] 리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관상, 궁합, 사주에서 풍수지리까지 인생의 천운을 점치고 더 나아가 미래도 바꿔줄 것이라는 이러한 고대 학문들은 인간의 욕심과 통계적 접근, 점술적인 요인까지 더해져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다. 이것을 신봉하느냐 안 하느냐와 무관하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사상들이 분명히 역사적인 사실과 만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흔히 세계적으로 전해지는 음모론이 그 반증이다.
[관상], [궁합]에 이어 이번에 영화계가 선택한 것은 풍수지리다. 영화 [명당]은 흥선군(지성)이 안동 김씨의 득세를 물리치고 아들을 왕좌에 올렸던 역사적 진실에 천기를 가진 묏자리의 도움을 받았다는 상상이 더해져 영화가 탄생됐다. 그러나 [관상]이 쏘아 올린 화살이 [궁합]과 [명당]을 거쳐 맥없이 떨어지고 있다.
굳이 퓨전 사극을 꺼내지 않더라도 요즘의 브라운관이나 극장 속 사극들은 연기 톤을 시대적 상황에 국한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뱉는 것이 유행이다. 그러나 영화 [명당]은 철저히 정통 사극을 표방한 듯하다. 인물들의 동선은 선비 마냥 움직임이 절제되고, 인물들의 바스트 샷이 영화 장면 대부분을 차지한다. ‘명당’이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게 실제적인 조선시대 생활 배경을 재현해내기보다는 영화는 지속적으로 실내에서 인물들의 대화로 진행된다. 이 영화의 플롯이 얼마나 대화에 의존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은 승마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사실상 클라이맥스를 제외하고는 속도감 있게 달리는 말을 감상할 수 있는 장면은 전무하다. 어쩌다 말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도 인물들의 바스트 샷으로 이루어져 대화가 그 화면을 대신한다. 특히 이러한 대화가 관객에게 엄청난 피로감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은 영화 속 인물들이 자신의 상황을 구구절절 본인의 입을 통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일례로 초선(문채원)이 흥선에게 자신이 왜 그를 돕는지에 대해 관객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다분히 촌스러워 18년도의 영화가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이 영화는 분명히 관객에게 좋은 영화로 남을 수 있는, 활용 가능한 극적 장치가 시나리오 곳곳에 보였지만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양상이다. 박재상(조승우)은 김좌근(백윤식)의 집에 찾아가 김좌근이 선대 어른들을 모신 묏자리가 적혀있는 장부를 몰래 빼내려 한다. 재상은 그의 집에 잠입하기 위해 새로운 지관을 뽑는 심사에 참가하게 되고, 재상의 능력을 알아본 김좌근은 그를 불러들인다. 과거 자신의 일을 망치려 한 재상의 얼굴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김좌근과 재상이 대면하는 해당 장면은 이 영화가 영화적 서스펜스에 얼마나 무감각한 지 여실히 보여준다. 대화만으로 서스펜스를 만드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들과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 비교하는 재미는 글을 읽고 계신 분들에게 직접 권한다.
영화 [명당]을 감상하고 느낀 제일 첫 번째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감독의 중요성이고, 두 번째는 어째서 영화 [관상]이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는지 이 영화와 비교하여 더욱 절실히 느꼈다는 점이다. 처음 리뷰의 가닥을 영화 [관상]과 비교하여 글을 전개해 나가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비슷한 소재를 다루었을 뿐 영화적 성향이 너무 다르기도 했고, 이 영화가 가진 부족한 지점을 영화 [관상]이 가진 훌륭한 극적 요소에 끼워 맞추려는 비판은 좋은 리뷰가 아닌 것으로 생각되어 가벼운 리뷰로 노선을 바꿨다는 점을 알려드리며 글을 끝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