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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문 Feb 21. 2019

삶이란 반복인 거지 뭐

드라마 [러시안 인형처럼] 리뷰

  혼자서 여러 스테이지들을 깨야 되는 게임들의 경우, 중간중간 세이브 파일을 해놓지 않으면 모아놨던 목숨이나 여러 아이템 등이 날아가는 허망함을 맛볼 것이다. 게임 중간 저장 기능이 없다면 우리는 다음 단계의 어려움을 느끼기도 전에 이전 단계들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컴퓨터 쓰레기통에 완전 삭제 버튼을 누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게임과 게이머의 대결에서 언제나 편법이자 희망으로 작용하던 세이브 파일이 버그가 나서 더 이상 다음 단계로 진행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같은 구간만을 돌게 된다면 어떨까?

[러시안 인형처럼]에서 서른여섯 번째 생일 파티에 갇힌 주인공 나디아


넷플릭스 제작 드라마 [러시안 인형처럼]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우연히 연거푸 반복되는 삶에 갇히게 된 여자 주인공의 탈출기를 그리고 있다. 서른여섯 번째 생일 파티의 주인공 나디아 볼보코프는 자유분방함 그 자체인 뉴욕의 프로그래머이다. 파티를 주최한 친구 맥신이 건네준 이스라엘 대마초 한 대와 술이면 파티 준비는 끝났다. 파티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즐기지만 딱히 그 남자가 멋지거나 괜찮아서는 아니다. 일이 끝나자마자 남자를 내쫓고 자신의 집 나간 고양이 오트밀을 찾아 나서지만 웬걸, 택시에 치여 죽다니.... 그러나 그 순간 다시 파티장의 화려한 거울 앞에서 살아나는 나디아는 이 끊임없는 죽음과 화장실, 그리고 파티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타임 루프 장르의 작품들 하면 시간 여행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역시 정통성은 같은 시간대의 지점에서 재 시작되는 반복에 있을 것이다. 보통 자신의 과오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 등 무언가 주인공에게 특별한 사건의 페이지를 다시 쓸 기회가 주어지게 되고, 주인공은 그 일을 해결하지 않는 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앞서 이야기한 전형적인 게임의 방식이다. 그러나 이 나디아에게는 도무지 사건이라고는 없다.(엄밀히 이야기하자면 그녀 스스로가 사건으로 여기지 않는 게 정확하다.) 그녀 같은 자유로운 영혼에게 남들을 살려야 한다는 막중한 의무도, 고쳐야 될 실수 따위도 없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지속적인 터무니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이 지긋지긋한 파티를 벗어나려면 반드시 버그의 원인을 밝혀내야만 한다.      


최소한 자유 의지로 산다는 착각을 유지하고 싶어     - 6화 중 나디아의 대사                                 

                                                                                                                                                          

오트밀에게 안전한 보호란 곧 갇힘(감옥)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디아에게 무언가에 구속되는 일은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그렇지만 위 대사처럼 본인 자신도 인간이 외치는 자유라 일컬어지는 것은 결국 거대한 삶에 곁들여진 구성요소라는 점에서 한계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그녀는 지속적인 억압을 느낀다는 것이다.

                                                                                                                                     


“적임자를 골라 도와달라고 해”


혼자서는 도저히 이 죽음의 굴레를 벗어 날 수 없다고 판단한 나디아는 친구 리지의 충고를 통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자신을 아끼는 전 남자친구 존 레예스를 이 이상한 현상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이용 수단이라 여길 정도로 이기적인 인물이다. 결국 존과 싸우고 거리에 나온 나디아를 보듬는 것은 친구들도 아닌 거리의 노숙자 호스이다. 호스가 신발을 도둑맞았기 때문에 노숙자 쉼터에 가지 않았고, 그로 인해 거리에서 동상으로 죽는 것을 알게 된 나디아는 처음으로 탈출이 목적이 아닌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


그녀가 첫 번째 퀘스트를 성공해서 선물을 얻은 걸까, 호스의 신발을 쉼터에서 지킨 후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자신과 동일한 시간 반복 감옥에 갇힌 앨런을 만나게 된다. 앨런이야말로 나디아와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강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하루 스케줄을 관리하고, 무엇이든 자신의 뜻대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그는 청혼하려던 날, 여자친구 비어트리스에게 이별을 당하고 그날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비어트리스와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한다. 그에게는 이 굴레가 기회인 것이다.                                               

앨런(왼쪽)은 죽으면 새로 시작하는 이 상황에서도 운동과 청소를 하는 인물

 

나디아에게 오트밀(반려묘)이 있다면 앨런에게는 키우는 물고기가 있다. 자유로운 뉴욕 고양이와 다르게 물고기야말로 안전한 수상가옥이 없다면 살 수조차 없는 동물이다. 둘의 대조는 음악에서도 드러난다. 나디아의 화장실 시작은 언제나 경쾌한 팝 곡인 Harry Nilsson의 ‘Gotta Get up’이 들려오는 반면, 앨런의 화장실 시작 음악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사장조 작품 번호 58-3악장이 들려온다. 앨런은 나디아와 반대되게 강박적으로 자신을 규칙과 규율 속에 가둠으로써 안정감을 느낀다.

앨런의 시작은 분명 타임 루프 장르 속 주인공에 딱 어울리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떠나려는 비어트리스를 붙잡기. 하지만 그에게 너무 난이도 높은 게임이었을까? 비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자 목적의식은 청혼 반지처럼 강가에 버려진다.


어째서 자신들에게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는지 생각해보지만, 나디아는 앨런이 주장하는 자신들의 도덕적 결함이란 시간만큼이나 상대적이라며 무시한다. 그러나 단순히 반복되는 죽음과 일상만이 문제의 전부일 것이라 생각했던 그들에게 그들 주위의 존재했던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물고기, 화장실의 거울, 문고리서부터 파티장의 사람들까지, 물건과 사람들이 사라지자 앨런과 나디아는 자신들이 아끼는 사람들마저 잃게 될까 두려워진다.                                               

                                                                                                                                                                            

[러시아 인형처럼]은 드라마 곳곳에 삶이라는 게임의 어려움을 역설하고 있다. 나디아의 문제는 삶을 어렵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언제나 자신의 레벨 단계가 아닌 훨씬 뒤의 일들에 대해 골치 아파한다. 전 남자친구 존의 딸 루시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직 루시와 친해지지도 않았으면서도 아이의 삶에 들어간 자신이 아이를 남겨두고 죽을 것을 걱정한다. 앨런의 문제는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앨런은 가장 가까운 비어트리스가 변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자신이 청혼을 하면 모든 게 용서되고 화해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러한 강박적인 태도들 때문에 그녀가 떠나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세상에 속하려고 노력하던 멋진 꼬마는 어디 갔니?     - 7화 중 루스의 대사       

                                                                                                                                        

나디아는 루스에게 자신이 엄마를 버렸기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루스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던 어린 나디아는 어디 갔냐고 묻는다. 91년도의 방치되었던 나디아는 엄마 품에서 벗어나는 성장을 통해 생존했다. 그러나 서른여섯 살의 나디아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는 끊임없는 죽음의 굴레에 갇힌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통해 그녀는 남과 섞일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살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앨런 역시 이별을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함께 성장한다.)                                              

                                                                                                                                                            

넷플릭스의 25분 남짓한 8부작짜리 드라마 [러시안 인형처럼]은 흔한 설정인 타임 루프 장르의 작품이지만, 유사 장르의 작품들이 사용하는 반복적 행동으로 파생된 유머는 사실상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죽으면 계속해서 살아나지만 나디아처럼 이러한 루프 현상을 이용한 특정한 목적(누군가를 살리거나, 어떠한 사건을 회피하려는)을 가지고 있지 않은 주인공 유형은 어떻게 보면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다가온다. 특히 반복되는 상황을 통해(선행 학습) 남을 조종하려는 모습이나 자포자기한 자기 파괴 모습 등 기존의 장르적 인물 유형이 나디아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대신 그러한 클리셰를 상대 역할인 앨런에게 할당함으로써 지루할 수도 있는 장르적 단점을 커버했다. 동시에 작품의 전체적인 메시지(반복적인 삶에 대한 회의감 내지는 지루함 등을 벗어나는 것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살아있다는 생존, 그 자체에 있다.)와도 맞닿는 이야기 구조를 갖췄다는 점에서 [러시안 인형처럼]을 봐야 될 이유는 충분하다. 훌륭한 음악 사용과 멋진 뉴욕 배경은 보너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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