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소비되는 여성
# 줄 거 리
잡지사 에디터로 잘 나가는 서른아홉의 알리스는 현재 눈엣가시 같은 리즈 때문에 회사 생활이 위태롭다. 젊고 반항적이며 제멋대로인 리즈에 비해 너무도 정석적인 워커홀릭 알리스는 대표에게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게 되고, 우연히 출장에서 만나게 된 열아홉의 발타자르와의 만남으로 이를 뒤집을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점점 더 순수한 발타자르에게 끌리는 자신의 모습에 거리를 두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잡지사 회장은 발타자르를 모델로 기용하려고 하는 데...
#1. 뻔한 줄거리?
한 해에 우리나라 극장에 걸리는 영화가 총 몇 편이나 될까? 작년, 그러니깐 17년 기준으로 실제 개봉작은 총 1,621편이나 극장에 한 번 이상 상영한 것이다. 그중에 외화는 1,245편이지만 이 중에 상당 부분은 미국이 배급하는 것이 대다수, 결국 남은 자리 역시 일본, 중화권, 유럽, 그 외 국가들이 나눠 가진다면 한 해 우리나라에 상영되는 프랑스 영화는 극히 드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2014년에 개봉한 [서른아홉, 열아홉]은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바늘구멍을 뚫고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자국에서 흥행한 영화라고 해서 무조건 외국에 수입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 배급되는 국가의 성향과 관객에 니즈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자국에서 아무리 잘 나가봤자 우물 안 개구리 신세인 것이다. 여기서 [서른아홉, 열아홉] 보게 되면 어째서 한국 시장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된다. 영화 줄거리는 굉장히 흔한 클리셰를 가졌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이성과의 관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려다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주인공, 이 모든 것이 사실상 지난 몇 년간 한국 드라마 시장을 지배했던 레퍼토리 아닌가. 조금 뻔하지만 익숙한 그런 내용이었기에 한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던 것이다.
#2. 키워드로 소비되는 여성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가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같은 해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투마더스]를 짚고 넘어가자. 영화 [투마더스]를 예술적인 가치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또 한편으로는 연상의 여성 그리고 스와핑이라는 성적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이다
회의에서 알리스는 여성은 키워드로 소비된다고 말한다. 뚱녀 페티시, 밀프, 쿠거, 슬렌더 기타 등등, 여성을 성적 키워드로 분류하고 소비하는 남성들에 대해서 오히려 그러한 것을 직면하고 맞서자며 ‘유포르노’를 외치는 알리스의 모습은 정확히 이 영화가 가지는 주제를 관통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성적 키워드를 무기 삼아 접근하고 이용하지만 이내 발타자르의 순수함에 동화되고 그를 진정으로 대하게 되는 알리스의 모습은 성적 키워드로 점철된 현대의 수많은 마케팅과 작품들 속에서도 진정 빛나는 것은 순수한 접근임을 상기시켜준다.
#3. 고전미술로의 회귀
영화 속 발타자르의 전시회 뒤풀이 장면이나 발타자르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충고해주는 장면, 모두 고전과 현대 미술을 메타포 삼아 이야기한다. 전시회에 초대된 발타자르는 작가 자신의 얼굴만 계속해서 나오는 팝아트적 예술관을 비판하며 저런 실력 없는 사기꾼들 보다 동네에 작은 공방에서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훨씬 대단하다며 신랄한 비판을 쏟아 낸다. 또 아버지는 자기도 혈기왕성한 시절, 가정부였던 여자와의 정사를 추억하며 고전미술에 함유되어 있었지만 이내 젊은 현대미술에 감탄하게 돼 있다며 듣기 낯 뜨거운 충고를 풀어낸다. 여기서 고전미술을 연상의 알리스에 직접 대입해 생각해도 문제없지만, 영화는 더 커다란 의미를 내포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성적 키워드 및 자신의 과잉 노출로 퇴색된 현대 예술에서 벗어나서 과거의 순수했던 고전예술로 회귀하는 것이 현재의 미디어가 풀어야 할 숙제임을 제시해 준다.
영화 말미에 알리스는 결국 화려한 잡지사 일을 그만두고 염원하던 작가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전에 하던 일에 비해 다소 초라해 보일 수 있으나 그녀의 책 표지 속 발타자르의 벗겨진 신발 사진은 '밀프', '쿠거' 같은 자극적인 키워드 보다 훨씬 호기심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