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없어선 안 될 물건이란 없다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인도네시아의 뽄띠아낙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 달, 태국의 난, 후 웨이난과 칸차나부리, 방콕까지 한 달을 머물면서 나는 적게 가지고 소중하게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이건 내가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정말 돈이 없어서 별 수 없었다.


호주에 갈 때 학비와 생활비는 선입금을 하고, 나머지는 용돈으로 조금 챙겨 갔는데 그래 봐야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라 나는 상당히 검소한 생활을 했다. 시티에 나가서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자주 마실 수 없으니 정말 2~3주를 기다리고 기다려 겨우 한 잔을 마시며 그렇게 행복했다.


이제껏 각종 프리미엄 브랜드의 청바지와 가방, 신발에 미쳐 살았던 나를 버리고 싶었으니 제일 먼저 다짐한 건 돈으로부터 자립하는 것이었다.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틈틈이 모아 두었던 돈으로 학비와 항공비, 용돈까지 모두 해결하기로 하고 집에는 한 푼도 손을 벌리지 않았다.


호주에서는 그나마 부족한 것이 없게 나름대로 절약하면서 지낼 수 있었는데 인도네시아와 태국에 갔을 땐 사정이 달랐다. 용돈이라곤 하루에 천 원도 안 되는 정도 밖에는 없었고, 나는 정말 숙박비, 항공비, 식대를 제외하곤 거의 용돈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 돈으로부터의 자유를 원했기 때문이다. (사실 돈이 없기도 했고)






지금 생각하면 두 번 다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전에 내가 살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었지만 이상하게 나는 조금의 부족함도 느끼지 않았다. 비누 한 개로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 샤워도 하고, 빨래도 했다. 그 한 개를 다 쓰는 것이 아쉬워 아끼고 아껴서 조각난 것까지 싹싹 긁어서 빨래를 하곤 했다. 모든 빨래는 직접 손으로 해야 했다. 시골 마을에 갔을 땐 강물에 휘휘 헹구는 게 빨래의 전부였다.


옷을 많이 가져갈 수도 없었다. 아니, 가져간 옷은 너무 더워 입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돈을 모아 적당한 옷을 사기로 했다. 그러나 시장까지 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차는 딱 한 대고, 자리가 부족하니 대표로 2명이 나가서 사 와야 했다. 비누, 치마, 모기약 등 몇 가지 사야 하는 물건을 메모해서 대표에게 주면 그가 나가서 물품을 사 왔다.


시원한 소재라는 게 중요할 뿐 디자인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캉캉 치마를 모티브로 한 것인지 검은색과 갈색 오묘한 녹색이 칸칸마다 뒤죽박죽 섞인 그 치마를 나는 잘도 입고 다녔다. 샤워 시설은 아주 전통적인 스타일로, 빗물을 모아 둔 탱크에서 나름의 정수 과정을 거쳐 나오는 물로 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빗물을 모아 둔 것이라 늘 물이 넉넉하지 않아서 다음 사람을 배려해 몇 바가지만 쓸지를 정해 놓고 씻어야 했다.






놀라운 건 우리 모두 그런 조건에서도 잘 살았다는 것이다. 머리도 감고, 샤워도 했다. 그간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 많은 물건들이 알고 보면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걸 많이 가져야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비싸고 좋은 물건을 원 없이 쓰고 살았던 그때의 나는 그것으로 인생이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참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없는 삶이 행복했다.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내 안의 수많은 고민들도 그럴까. 왜 살아야 하는지와 같은 해답 없는 질문들도 비워 내면 더 편해질까. 인생의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내가 자꾸만 질문을 만들어내고 집착하고 움켜쥐었는지도.


물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자 머리 감는 데 샴푸가 없는 건 별 문제가 되지 못했다. 비누로 감으면 되니까. 머리가 좀 뻣뻣하긴 하지만, 말리면 비슷하다.


살면서 없어선 안 될 물건이란 그리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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