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해외에 나간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귀국을 결심했다.(살아서 돌아오겠다던 다소 비장한 결심에 비해 다소 짧았던 가출 기간)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더불어 지독한 향수병에 걸려 조카 사진을 보면서도 찔찔 짜는 지경이기도 했다.
호주에서의 생활을 뒤돌아 보면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이었다고 말하겠다. 지금 생각해도 기적처럼 나는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그들 덕분에 내가 살았다.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이 서자 한국으로 돌아가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없는 사람처럼 살았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다.
나는 이렇게 변했는데 집은 어떨까.
당연히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져 있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저 정도면 전생에 원수가 아니었을까?'싶을 정도로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다. 입만 열면 서로를 험담하고 비난했다. 집안 가득, 증오가 넘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변했다. 나는 더 이상, 싸우는 부모 옆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대학원을 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뭐든 내가 배우는 걸 좋아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며 방구석에서 쇼핑만 하던 딸이, 의욕적으로 대학원을 가겠다니 엄마는 두말없이 찬성했다. 아버지는 조금 툴툴거렸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결정이다.
운 좋게도 연구 조교로 입학할 수 있었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해결하고 입학 전까지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모았다.
회복에 대한 나의 열망은 간절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닌 것도 같다.' 정도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호주에서 얻은 힌트를 가지고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를 회복시키는데 인생을 써 보기로 했다.
한동안 종교 모임에 나갔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그 모임이 편하지 않았다. 모두들 나를 신경 써 주고, 꽤 자주 시간을 보냈지만 이방인 같은 이질감. 왜일까?
종교 모임에서 그들은 늘 '감사'를 말하고 있었다. 온통 아름답고 홀리한 이야기들. 한 주간 뭐가 그리 감사한 일이 많은지 공감은커녕 저건 모두 가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몇 번 괴로운 심정을 이야기했다가 사람들이 나를 멀리하는 기분을 느꼈다. 너무 어두운 이야기를 한 걸까. 그게 사실인데 왠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건 '주님'을 높이는 일이 아니니까.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진짜를 말하고 싶은 걸. 내 인생은 전혀 홀리하지 않아. 우리 아버지는 술에 절어 집에는 도무지 관심 없이 돈만 가져다주는 사람이었고, 엄마는 갱년기 우울증에 화병이 심해 우리 집은 지금 거의 전쟁터야.
나는 인생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고 확인해서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인 체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 진짜를 원했다.
모든 것이 축복이고 고난도 감사하다는 홀리한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마지막으로 그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알코올 중독자 가족의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