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처음 인도네시아의 어느 작은 섬에 도착했을 땐 비현실적인 풍경에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마치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들어온 것 같은 이질감. 그런 세상이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 계단식 하강법을 마스터한 듯한 다이내믹한 착륙 후 비행기에서 내리자 공항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자그마한 공터가 나를 맞이했다.
‘여기가 마을 버스정류장이 아니고 공항이라는 거지?’
주위를 둘러보니 난장판이다. 티켓 검사도 제대로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덴파사만 해도 화려한 공항이며 뒤섞인 여행객 때문에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곳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있었다.
털털털 먼지를 헤치며 지프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 숙소가 이 지역에서 몇 안 되는 부유한 곳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시멘트로 지은 집인 데다가 천장에는 팬(fan)도 달려 있다. 물론 아주 미지근한 바람만 나올 뿐이었지만 후덥지근한 날씨에는 그마저도 고마웠다.
우리가 머물 숙소는 여러 채의 건물 가운데에 큰 마당을 끼고 제법 근사한 강당도 있고, 매트리스로 정돈된 이부자리도 준비되어 있었다. 아무렇게나 배치해 놓은 테이블과 의자며 무엇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아니, 아주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나는 지금 내 삶으로부터 완전히 떠나온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여기가 어디든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간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인도네시아라는 계획에도 없던 나라에서 한 달이나 머물게 된 것은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팀을 이뤄 현지에 있는 고아원이나 학교의 재건과 교육을 도왔다.
인도네시아는 무슬림 국가로 매일 일정한 시간이 되면 댕, 댕, 하고 종을 울린다. 기도하는 시간을 알리는 거라고 했다. 그 시간만 되면 온 동네가 엄숙해지는 것 같았다. 굉장히 개방적인 가옥 구조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옆집에서 매우 경건하게 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 같은 외국인에게까지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도 그 시간만큼은 침묵하며 차분하게 지내곤 했다.
인도네시아의 음식은 하나같이 맛있어서 좀 더 많이 먹지 못하는 게 늘 아쉬웠다. 식사를 담당했던 레오(Leo)는 우리가 맛있다고 칭찬해 주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새로운 메뉴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려고 애쓰는 것이 고마웠다.
벽에는 작은 도마뱀이 몇 마리씩 붙어있고 놀랍게도 화장실은 바가지에 물을 퍼 직접 물을 부어 내려야 했다. 나는 평소에 상당히 깔끔을 떠는 성격으로, 화장실도 많이 가리는 편인데 그런 환경에 놓이면 별 수 없다. 인간은 어떤 환경이든 적응하기 마련이다. 야무지게 내리고 나면 한동안 머릿속에 잔상이 남아 괴로웠다. 그런데 이마저도 며칠 지나자 그저 일상일 뿐, 인간은 적응의 동물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루는 끝도 없이 펼쳐진 논과 밭을 지나 마을 잔치에 구경을 갔다. 지방 선거에서 호주 시드니에서 온 한국인들을 초대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내어 준 음식을 먹으며 앉아 있는데 귀엽게 생긴 여자 아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서툰 영어로 ‘안녕?’이라고 인사를 하기에 나도 대답을 해 주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우리 쪽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딸에게 “너도 저 언니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해~ 알겠지?”라고 말했다.
나는 전혀 훌륭한 사람이 아닌데, 지독한 우울증에 걸려서 이곳으로 도망쳐 온 패배자일 뿐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딸에게 당부하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 친구가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좀 더 잘, 살아 봐야겠다는 묘한 책임감이 생겼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스태프들과는 주로 영어로 소통했다. 당시에 나는 문법도 엉망이고 단어도 모르는 것이 많아서 영어가 서툴기 짝이 없었을 텐데 고맙게도 인내심을 가지고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수치심이 많은 나는 사람들 앞에서 틀리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현지인들과는 엉터리 영어로 잘도 얘기했다. (이때쯤 나는 그간 나를 괴롭혔던 수치심의 문제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그들도 나의 빈약한 영어 실력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영어는 그저 대화와 소통하는 도구로서만 기능할 뿐 유창해야 하거나 문법이 완벽해야 하거나 고급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기준이나 평가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내 영어를 평가한 건 오직 한국인 동기들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완전히 자유로웠다. 엉터리면 어때, 내가 알고 저 사람도 아는데. 둘 다 알아들었으면 그만이다. 영어를 잘하는 동기들이 많았지만 스텝들은 중요한 얘기를 할 때면 나를 찾았다. 그건 우리가 진정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침내 우리는 서로를 친구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들은 내 표정이 어두우면 기가 막히게 눈치채고는 걱정해 주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내 편이 되어 주었다. 내가 크고 작은 실수를 해도 언제나 어깨를 으쓱하며 No problem.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그들이 좋았고 그들도 나를 좋아했다.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아주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때면 신을 떠올린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나를 보살피고 싶을 때 신은 나에게 천사 같은 사람들을 보내어 그의 사랑을 느끼도록 해 주신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신의 사랑을 느끼도록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위로를 전하는 관계 말이다. 스스로가 무가치하게 느껴져서 도저히 힘을 낼 수 없을 때 내가 꼭 들어야만 하는 말을 해 주는 그런 관계 말이다.
그들은 내가 아주 사랑스럽고 밝고 웃음이 많은 사람, 그러나 영적인 리더십이 있고 매우 강인한 사람이라고 했다. 뭐든 용감하게 직면하고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고 했다. 꼭 다시 만나고 싶다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명함을 건넸다. 함께 일해 보고 싶다고 했다. 분명 그들이 말한 그녀는 삶을 사랑하고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앞으로 그렇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신께서 그들을 통해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완전히 틀렸다고, 이게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나는 강하고 영적이며, 사랑스럽고 밝고 쾌활한 사람으로 나와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신은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신다. 신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라곤 ’세상을 깊고 풍성하게 누리는 것.‘이 전부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나는 이제 그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였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인생이 바닥을 칠 때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너무나 박하다. 나 또한 죽어야 마땅한 사람으로 나를 생각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스스로 나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어렵다면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그들이 내게 진실을 말해 주니까. 내가 들어야만 하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을 해 주니까.
이미 신께서 네게 존귀한 존재라는 가치를
부여해 주셨다.
그것이 존엄성이며,
네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좋은 사람들을 통해서 결국엔 내가 누구인지, 나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삶은 주인인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대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완전히 틀린, 거짓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좋은 사람들을 통해, 텅 비어 버린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가치’라는 것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것은 삶에 생동감으로 이어졌다.
심장이 뛰었다. 이전과는 다른 두근거림. 나의 심장이 삶을 향한 기대와 희망으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살아야 할 이유는, 어쩌면 이걸로 충분한 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루 일과를 마친 어느 날 밤, 벤치에 앉아 쏟아지는 별을 보고 있었다. 까만 밤하늘에 셀 수도 없이 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저절로 노래가 나왔다.
사랑스러운 인도네시아 친구가 그 소리를 듣고 나와서 내 옆에 앉았다. 가만히 하늘을 보며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불렀다. 별이 아주 가까이까지 내려온 것 같았다. 정말로 머리 위로 별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까만 하늘 위에 반짝이는 별이 가득했다.
그날 밤이 내게는 인생이었다. 반짝이는 별이 인생이었다. 흥얼거리는 노래가 인생이었다. 내 옆에 앉은 이 친구가 인생이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눈물이 났다. 아, 이것이 인생이구나. 저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이 인생이구나. 내 옆에서 나와 함께 노래를 흥얼거려 주는 인도네시아 친구가 인생이구나. 나는 절대로 이 인생을 포기할 수 없겠다.
마침내 인생이 무언가를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