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상 못한 위기, 마른 주정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파킨슨 진단을 받은 아버지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두려움이 큰 상태였다. 당연한 일인지 몰라도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이 문제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은 했어도 대단히 비극이라거나, 절절한 슬픔은 없었다.


정서적인 유대감이라던지, 가슴맺힌 추억이라던지, 애틋한 감정같은 게 없었으니 솔직히 나는 그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 7년을 단주했다. 처음 아버지가 단주를 시작했을 땐 그걸로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술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이제 우리 가족도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 당장 죽는 병은 아니니, 분명 행운인 것 같았다. 아버지가 술을 끊다니, 이건 기적이 분명했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엄마는 가끔 아버지에 대해 “술만 아니면 그래도 괜찮은 사람인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수십 번은 들은 얘기다. 모임에 나오는 멤버들은 자주 그 말을 했다.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술이라는 악귀만 떨어지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단주를 시작하고 얼마 후, 중독의 먹구름이 걷히자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흔히 '마른 주정'이라고 하는 단주 후의 이상 행동들이 나타난 것이다.


잦은 짜증, 예측 불가능한 감정 기복. 특정한 것에 과도한 집착(이를테면 청소, 음식), 끝없는 잔소리...


술을 마시면 그동안은 우리와 떨어져 있기라도 했지, 단주한 이후 아버지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우리는 집에 있는 아버지가 낯설었다. 애석하게도 아버지는 단주로 인한 감정 기복을 잘 다루지 못했고 우리는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동시에 다른 가족들의 문제도 하나둘씩 떠올랐다. 술만 없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희망은 곧 무너져내렸다.


알코올 중독이라는 엄청난 바위 밑에 가려져 있던 문제들이 얽히고설킨 채,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최상위권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입학할 줄 알았던 대학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일을 계기로 완전히 깊은 어두움 속으로,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 버렸다.


우울증이었다.


그맘때 나의 일기장은 차마 읽기가 힘들 정도로 비관적이고 심한 자기 비하로 가득 차 있다. 그때쯤 인생에 대한 나의 생각은 허무주의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허무주의는 쉽게 '종결'로 결론이 난다. 나 역시 그랬다. 삶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였으니까.






부모님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다 큰 어른들이 육탄전을 벌이기 시작했으니, 경악할 노릇이었다. 술을 마시러 나가지 않으니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진 것이 문제였다. 아버지가 술로 가정을 멀리한 것이 족히 20년은 넘었다. 우리는 아버지를 잘 몰랐고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양쪽을 번갈아 가며 애원했다. 제발 싸우지 말라고, 아빠에게는 엄마를 미워하지 말라고 엄마에게는 아빠를 미워하지 말라고 울면서 빌었다. 부모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비는 내 심장은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공포가 나를 집어 삼킬 것만 같았다. 이 지옥같은 시간은 도대체 언제 끝이 나는 걸까. 겨우 두 사람이 진정된 것 같으면 방에 누워 하염없이 울었다. 눈을 뜨지 않았으면. 이대로 이 인생이 끝난다 해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언젠가 저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 그건 나의 우주가 무너지는 일이었다. 두 사람이 헤어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고아가 되는 건가? 저 두 사람은 나와 오빠를 버리려는 건가?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엄마의 화는 나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엄마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아버지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는 두 사람의 싸움이 매우 심각해졌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엄마는 마치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이제 잃을 것이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나와 오빠에게 빵을 구워 주고, 다정하게 책을 읽어 주던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엄마 역시 우울증이었다.






파킨슨은 생명에 이상이 생기는 병은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는 계속해서 사회생활을 했다. 점점 몸의 변화에도 익숙해졌다. 약을 먹으면 증상을 완화할 수 있었다.


병에 익숙해지자 아버지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단주는 끝났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이를 ‘재발’이라고 부른다. 병이 재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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