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알코올 중독이 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중독자의 가족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저항과 고통을 동반한다.
괴로운 것이다. 더 이상 중독자를 탓할 수 없게 되니까.
‘저 인간만 없으면, 저 인간만 아니면 나의 이 지긋지긋한 삶도 다 나아질 텐데 저 인간이 원수다.’ 원망하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이 병이라는 주장이 사실이 되면 더는 중독자를 탓할 수 없다. 그는 병에 걸린 환자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옥 같은 삶을 도대체 누구에게 원망해야 한단 말인가.
알코올 중독은 유전적, 심리적, 환경적 요인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해 발병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 가지 원인으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이 병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것이 ‘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저 ‘사람’이 아닌 ‘병’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중독자를 이해하는 것이 한결 쉬워진다. 저 미치광이 같은 행동에도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은 물론이다.
알코올 중독이 병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가족들은 이에 대응할 수 있게 한다. 회복의 씨앗. 적어도 누군가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싹 틔였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나의 삶도. 건강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이후 나는 대학이고 뭐고 공장이나(생산직분들을 비하하는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만 그때 저의 정신 상태가 그랬습니다.) 가겠다고 객기를 부렸다.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당연히 대학에 가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나는 갈 곳이 없어졌다.
길을 잃어버렸다.
어릴 때 피아노를 꽤 오래 배웠다. 나는 뭐든 빨리 배우고 앞서 나갔다. 공부도 곧잘 해서 엄마아빠를 속 썩인 일 없이 성실하게 자랐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학도 과외 선생님의 모교를 그대로 지원했다.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이 아니었다. 그마저도 실패하고 나니 그다음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냥 어디론가 도망쳐 버리고 싶었다.
엄마의 설득 끝에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는 더 동굴로 숨어 들어갔다. 원하지 않는 대학이었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훨씬 좋은 대학을 가야 하는데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지.
학교 친구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두 명의 착한 동기들이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두 명 외에는 누구와도 친구가 되지 않았다.
교수님은 몇 번이나 나를 면담했다. 그의 질문은 늘 나를 혼란하게 했다.
“하고 싶은 것이 뭔가? 그게 무엇이든 내가 도와줄 테니 진로를 정하거든 내게 말해 주게. “
지금 생각하면 고마운 분이다. 그는 내게서 무엇을 본 걸까? 교수님은 몇 번이나 내게 “너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학생이다.”라며 격려했다.
소위 대기업에 추천서를 써 줄 테니 지원해 보라고 했다. 정신이 망가진 우울증 환자였던 나는 그 말을 그대로 휴지통에 버려 버렸다. ‘난 어차피 안 될 거거든.’
대학을 졸업하니 자격증을 줬다. 동네 작은 학원에 취직해 일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재미있었다. 나는 번 돈을 모조리 명품 가방과 프리미엄 진과 구두를 사는데 썼다.
내 몸을 비싼 옷과 구두, 가방으로 숨기지 않으면 초라한 실체를 들키게 될 것만 같았다. ‘더 비싼 것으로 아무도 넘보지 못할 브랜드로 나를 포장하면 그게 내가 되겠지. 나는 더 이상 볼품없는 사람이 아니라, 이 브랜드의 가격만큼 근사한 사람으로 보이겠지.’
8cm는 족히 넘은 구두를 신은 발이 욱신거렸다. 내 마음도 그런 것 같았다.
경증 우울증도 시간이 지나니 심각해졌다. 그런 망가진 정신으로 산 세월이 10년이었다. 일기장은 온통 비관적인 얘기로 가득 찼고 더 이상은 이렇게 사는 게 의미 없어 보였다.
마음속 지옥을 들키지 않으려 몸부림치던 어느 날, 캄캄한 방에 우두커니 앉았다. 방을 둘러보는데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내 방이 이랬구나.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
‘어디에 매면 한 번에 끝날까? 실패란 없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믿어지지 않았다.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 난 완전히 망가졌구나. 여기에 더 있다가는 정말 나를 해칠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아무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삶에 미련이 미세하게 남아 있었던 건지, 죽는 것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본능적으로,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해외에서 내가 머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집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아예 돌아오지 않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될 데로 되라지. 이 집만 떠나면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미국, 호주, 유럽을 샅샅이 뒤져 예산과 일정이 맞는 곳을 찾았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곳은 호주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호주로 결정하고는 집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돌아오는 티켓은 끊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살아야 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