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단계. AA 컨벤션에서 첫 번째 경험담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모임은 지루했다. 뻔하고 지겨운 이야기. 엄마한테 듣던 지긋지긋한 신세 한탄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 증오.


나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4주째 모임에 앉아있었다. 그저 그런 얘기들의 연속. 한 분이 상기된 목소리로 자신의 경험담을 시작하자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감사’를 말하고 있었다.


'감사라니요. 방금 처참한 본인 집에 대해 말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집을 때려 부수고 또다시 경찰을 불러야 하나 고민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뭐가.. 감사하다는 거죠?'


또 그 종교의 감사 타령인가 싶었지만 분명 그건 아니었다. 그녀의 표정은 밝고, 빛나고, 심지어 약간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어쩌면 이곳에서 정말 내가 원하던 ‘건강한 삶’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회복인지 뭔지 암튼 지금보다 나아지기만 한다면야 그게 무엇이든 한번 달려들어 배워(?) 보리라 다짐했다. 그날의 경험담이 꽤나 충격적이었던 까닭에 그 이후로 한주도 빠지지 않고 모임에 나갔다.


동시에 후원자와 12단계도 시작했다. 매주 정해진 시간에 후원자가 오라는 곳으로 가, 하라는 것을 했다.


후원자는 담백한 사람이었다. 내가 구구절절 말이 길어지면 제법 단호하게 자르기도 했고 정해진 시간 외에는 길게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다.


대가 없이 지속적으로 시간을 내주는 것이 고마워 커피라도 사려고 하면 사양했다. 우리는 늘 각자의 몫을 각자 계산했다.




단계를 지날 때마다 숙제가 있었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4단계였다. 과거의 기억을 낱낱이 헤집어야 했기 때문이다.

보상 목록을 작성할 때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넣었다. 나에게 미안한 것이 많았다. 왜 이렇게 나에게 혹독했을까. 대충 살아도 힘든 세상인데 실수 한 번에 누구보다 가혹했던 건 나 자신이었다.


후원자는 나에게 영리하다며 어떻게 자신에게 보상할 생각을 했냐고 기특해했다.


1단계부터 12단계까지 프로그램을 모두 한 바퀴 돌린 어느 날, 한남동에 있는 AA(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 외국인 모임(정확히는 미국 AA의 한국 모임)에서 컨벤션을 연다는 소식이 들렸다. 오빠가 함께 가자며 나를 참석자 명단에 올려 주었다. AA 모임에 가는 것은 처음이라 약간 긴장이 되었다.


며칠간 이어진 컨벤션은 매우 흥미로웠다. AA 멤버들이 패널로 참석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하고, 질의응답을 통해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하루는 나와 같은 가족(알아넌, Al-anon) 모임에 참석할 기회도 있었다. 모임은 모두 외국인 멤버로 이루어져 있었다. 외국인 멤버라니, 이 모임이 글로벌하다는 사실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국 멤버들의 경험담에 비해 더 영적이고, 더 사실적이었다. 좀 더 회복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고 할까. 서로 다른 문화이지만 우리가 겪는 고통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그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영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영어로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성격이라 과감하게 손을 들고 경험담을 했다. 그때쯤 나는 한국 모임에서 항상 첫 번째로 경험담을 했다. 나름대로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려는 시도였다. 내 얘기를 남들 앞에서, 특히 이런 상처 투성이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남들 앞에 드러낸 것은 더 이상 감추고 살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과도 같은 회복 프로그램의 실천이었다.






외국인 멤버들은, 한국 멤버들이 그렇듯, 매우 차분하게 내 경험담을 들어주었다. 그날 내가 나눈 이야기는 ‘수치심’에 대한 것이었다. 거울을 보기 싫어했던 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나. 누구보다 미웠던 나에 대한 이야기. 눈물이 났다. 나의 엉터리 영어에도 그들은 깊이 공감해 주었다. 그 눈빛이 참 슬펐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가여운 우리들. 우리는 정말 나아질 수 있을까?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의 경험담은 이제 더 이상 나를 미워하고 거부하며 살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끝이 났다. 참석한 멤버들이 박수를 쳐 주었다. 모임에서는 좀처럼 특정 멤버에게만 박수를 치거나 코멘트를 하는 법이 없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담을 겸손하게 듣고 배울 뿐, 누구를 가르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이것은 회복을 위한 매우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이다.


나는 그들의 박수를 응원으로 받아들였다. 할 수 있다고, 이제 새로운 길로 들어섰으니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볼 수 있다고 나를 응원하는 박수였다. 기꺼이 그 응원에 보답하리라.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더 이상 혼자서 이 고통을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알아넌_Al-Anon Family Gro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