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명한 미래

by 잠자는집시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3개월의 휴식기를 가지고 다시 임신을 시도하기로 했다. 소파술 후 첫 생리를 시작했을 때는 기뻤다. 생리를 이렇게 기다린 적이 있었나. 내 몸은 아기가 없어진 걸 알고 참 무섭게도 빨리 주기를 찾는구나.


여전히 퇴근 길 광역버스 안에서 혼자 눈물을 훔치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시간은 잘 갔다. 그렇게 생리를 3번 하고 임신 시도를 재개했다. 그 사이 두 번째 결혼기념일도 맞이하고 내가 좋아하는 속초도 다녀 왔다. 낙산사 해수관음상 앞에서는 진심을 다해 소원을 빌었다. 나의 유일한 소원을.

'건강한 아기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심판의 날은 한 달에 한번씩 돌아온다. 임신 혹은 비임신. 나의 일상도 온통 임신 준비에 맞춰 돌아갔다. 생리를 하면 곧장 병원으로 가서 배란유도제를 처방 받고 약 일주일 간 복용한다. 난포가 잘 자랐는지 초음파를 보고 숙제는 선생님이 정해준 날짜와 시간에. 임신일까 아닐까 나의 모든 신체 반응에 촉각이 곤두선다. 배란 8일차 증상, 배란 9일차 증상.. 검색 또 검색. 나의 임신 계획은 필히 다음 달까지를 커버해야 한다. 임신이 아닐 경우를 대비해서. 달력을 보고 또 보고 다음 달 할일을 필사적으로 채워 넣었다. 이번에 임신이 안되면 다음 달엔 이런 일들로 나를 위로 해야지.


매달 임신이 좌절되는 것보다 출산예정일이 있었던 6월이 다가올 때가 가장 힘들었다. 마치 내 생일 선물인 것만 같았지만 결국엔 화유로 종결되었던 4월보다 더 했다. 좋아하는 친구와 날 좋은 날 안동 여행을 가서 반짝이는 녹음을 보고도 내 마음엔 원망만 가득했다. 이렇게 찬란한 때에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야 했던건데. 이미 그른 일이 되어 버렸는데, 이미 아무 의미도 없어진 달인데 5월 나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찼다.


그러다 어째서인지 이렇게 지내고 싶진 않단 생각이 들었다. 거의 매일을 집 앞 개천을 걷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듣고, 레고 조립에 몰두했다. (하필 그때 선재가 방영 되어줘서 감사하다. 그가 날 얼마나 기쁘게 해줬는지..) 남편과 제주도도 다녀왔다. 되려면 이렇게 되는 것인가? 분명 제주에서 소화가 잘 되지 않고 가슴이 답답했으며 소변을 볼 때 아래 쪽이 조금 불편했는데 어째선지 임신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돌아와서야 알았다. 네 번째 시도에 다시 아기가 찾아왔다는 걸.


소변이 닿자마자 너무도 진하게 붉어지는 두 줄을 보았고 다음 날 병원을 찾아가 바로 아기집도 봤다. 선명한 임테기 두 줄과 아기집 초음파 사진처럼 모든 게 선명해 보였다. 회사 근처 산부인과를 처음 방문했는데 너무 환한 미소로 임신을 축하해주는 의사 선생님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조금 괴롭긴 했지만 나는 그 모든 시련을 넘어온 장한 사람. 이제 슬픔은 없어. 다 끝났다.


주말엔 남편과 백화점으로 가 아기양말을 샀다. 집에 아기양말을 두면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난다는 걸 어디서 봤다. 내년은 뱀의 해니까 뱀띠 해에 꼭 건강하게 태어나라고 귀여운 뱀 인형이 붙은 양말로 골랐다. 침대 머리맡에 올려 두고 이렇게 손가락만한 양말이 감쌀 조그맣고 귀여운 발을 상상하고 또 했다.


바로 다음 주엔 산전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이쯤이면 난황이 보여야 하는 땐데요, 운 좋으면 심장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고요. 한번 볼까요?”

고생이라곤 겪어본 것 같지 않은 말갛고 하얀 의사 선생님은 침착한 나 대신 설레고 들뜬 마음을 내보여 주시는 것만 같았다. 초음파 화면이 보이고, 반전되는 그녀의 얼굴. 나는 안다. 무언의 의미를.


“음.. 아기집 모양이 이상해요.”


이건 또 뭐람.

“아기집 안에 혹 같은 게 크게 있어요. 난황 같은 게 있는 것 같지만 혹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요. 이게 뭐지.. 포상기태 같기도 하고..”


선생님은 앞으로 내가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가서 경과를 체크해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어차피 분만은 하지 않는 병원이라 회사 다니면서 서브 병원으로 다니려고 했던 병원이었는데, 왠지 기분 좋은 느낌 때문에 다시 찾아온 우리 아기에게 행운의 기운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아기집 보자마자 시킨 산전검사도 당연히 아기가 건강할 거라 확신했기 때문에 의아해 하지 않았는데. 유산은 여기서 해 줄 게 없다는 듯 말갛고 하얀 선생님은 나를 내보냈다.


“유산 이력이 한번 있으셔서 드리는 말씀인데, 다음 번엔 착상 전 유전 검사를 하실 수 있는 시험관 시술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미 유산을 단정한 선생님 말씀에 화가 나지 않았다. 맘카페에서 이미 많이 보았기에 잘 알고 있었다. 임신 초기에는 특이사항 없이 주수에 맞게 잘 자라는 게 중요하다는 걸. 한번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결국 잘못된다는 걸.


그래, 두 번 유산할 수도 있지. 이미 한 번 해봤잖아. 잘 넘어 왔잖아. 다음번엔 바로 시험관을 해야겠다. 시험관은 어떻게 하는거지? 와, 이런 시련까지 내가 견디면 나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될 것 같아.

그런데, 이걸 들으면 남편이 얼마나 실망할까. 남편의 실망한 얼굴을 보는 게 더 슬플 것 같았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담담하게 시험관 시술 과정을 검색했다. 집에 도착하고서야 선생님 입에서 나왔던 ‘포상기태’란 단어가 생각났다.


‘태반의 영양막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질환. 악성 종양으로 발전하는 경우 항암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고 재임신은 치료를 마치고 최소 6개월 피임한 후 계획해야 한다.’


악성, 항암, 6개월 피임. 무서운 단어들의 나열을 보자 눈물이 터졌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다음 날 아침 눈 뜨자 마자 바로 큰 병원으로 갔다.

“응, 한 번 유산 했는데 또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 착잡한 상태로구마잉.” 모니터로 상담 차트를 보시던 선생님이 구수한 사투리로 말씀하셨다. 포상기태 같아 보이지는 않고 코리오닉 범프라고 하셨다. 말 그대로 돌기 형태의 덩어리인데 태아가 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 심장만 잘 뛰면 아무 상관 없다는 것. 심장 반짝임은 보이지만 아직 너무 작아서 박동은 들리지 않으니 일주일 뒤 다시 보자고 했다.


흔치 않은 사례인지 네이버 블로그에도 글이 몇 개 없었다. 어떤 사람은 코리오닉 범프가 자연스레 없어졌다 했고 어떤 사람은 결국 유산되었다고 했다. 남편은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글 하나면 충분한 것 같았다. 아기가 건강할거라고 확신했다.


나도 믿어보고 싶어졌다. 일상을 보내며 수시로 마음 속으로 외쳤다.

‘아기야, 제발 건강하게 태어나서 엄마 아빠랑 같이 살자. 제발 떠나지 말아줘.'

오복이라고 이름 부르면 또 달아날까 태명도 못 불렀다. ‘오래오래 행복하게’가 내 욕심인 것만 같아서.



한 치 앞도 모르는데, 나는 무슨 미래를 그리고 확신했던건가. 지금 내가 그리는 그림은 무슨 그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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