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메일

by 편린

2023년 11월 25일. 2년 전의 그날은 아직까지 내게 선명하게 남아있다. 처음으로 나의 이름을 걸고 내보인 첫 전시가 열렸던 해. 스물여섯, 맨 처음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한 후로 정확히 7년 8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보다 더 감격적이었던 순간은 전시가 열렸던 때보다 그로부터 7개월 전인, 2023년 4월이었다.

이별 후 한참 스스로에 대한 회복에 집중했던 시기였다. 틈만 나면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전하느라 바빴다. 가만히 쉬지 않고 바쁘게 지내려 애썼다. 평일엔 작업을 하고 주말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신없이 일상을 보내던 와중에 우연하게 전시지원 공모 요강을 보게 되었다.
때마침 편의점 유리창 안으로 봄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손님이 빠진 시간, 휴대폰을 붙잡고 공모 관련 서류들을 열어 한 칸씩 바쁘게 채우기 시작했다. 고작 3장의 서류를 2주가 넘도록 작성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작업실에서 휴식을 할 때에도, 집으로 돌아가 잠에 들기 직전까지. 주말이면 편의점 안 계산대 앞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작가가 되면, 그저 열심히 작업만 하면 당연히 전시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마치 어른이 되면 저절로 집과 차를 갖게 될 수 있을 거라는 어린 나의 꿈처럼.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보통 갤러리를 대관하거나, 전시 공모를 통해 심사를 거쳐 지원을 받으며 진행하는 형식의 방법들이 필요했다. 쉽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면 공공 갤러리나, 미술관으로부터 초대를 받는 경우도 있다.

전시에 관해서는 모든 게 낯설었던 나는 지원을 받는 형식의 공모 요강들을 찾아다녔다. 정보들을 얻는 데 한계가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매번 물어가며 의지하는 것도 줄여나가고 싶은 생각에
각 지역의 문화재단 홈페이지들을 찾아서 열람했고 그 밖에 관련 sns들까지도 전부 찾아다니며 내가 도전해 볼만한 모든 경우들을 메모해 가며 추려냈다.
그렇게 정신없는 탐색을 시작한 지 2일 차, 우연히 춘천 상상마당 sns에 들어가게 되었다. 최근 게시물부터 쭉쭉 훑어보는 데 어느 공모 요강을 하나 발견했다. 전공자 비전공자 구분 없이 전시경험이 없는 예술가들을 우선으로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문화예술에 대한 복지와 혜택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전공자와 비전공자를 나누어 심사를 하는 형식이 상당 부분 남아있다. 때때로 예산이 삭감되거나 그에따라 참여인원이 줄어드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출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예술계통에서는 더욱 그래 보였다. 그래서 항상 모집요강을 살펴볼 때 자격조건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20대 초반에는 자격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점에 조금 씁쓸해하기도 했는데, 예술인 복지재단을 이용하기 시작하고서는 내가 갖고 있지 못하는 어떤 경력이나 학력에 대해 관대한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같은 서류 내용을 서른 번쯤 읽고 또 읽었던 것 같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적절한 시기에 메일을 보낼 타이밍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공식적인 첫 지원사업 공모였다. 도전에 의미를 두자고 했지만 나의 기대감은 이미 부풀어 몸속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메일함에 파일을 첨부하고 또다시 파일을 열어 페이지를 검토한 뒤에서야 전송버튼을 눌렀다.

결과는 정확히 일주일 뒤에 알 수 있었다. 생일을 나흘정도 앞두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샤워를 끝마친 후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을 들었는데 낯선 주소로 메일이 와 있었다. 지원사업에 뽑혔다는 내용이었다. 서둘러 옷을 입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대충 싸매고 메일을 열고 천천히 다시 읽어보았다. 확실하게 나의 이름 세 글자와 함께 확실한 선정결과들이 메일칸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만일 선정이 된다면 적어도 눈물 한 방울 정도는 흘릴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날 받았던 메일을 오래도록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바쁘게 지내다 문득 공허해지는 순간에는 지난 메일함에 들어가 이따금씩 꺼내보며 그때의 마음들을 곱씹어본다. 가끔 잘 안 풀린다 싶을 때 사용하면 좋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지난 메일함과 오래 전의 사진들이 내게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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