⁸2023. 11. 25
첫 전시를 열기 위해 부푼 마음으로 갤러리를 향하는 길이었다. 11월의 아침공기는 아직 진정한 겨울이라기엔 어딘가 푸근함이 녹아있었다. 평소에는 잘 듣지 않던 라디오를 켰다. 나긋한 목소리의 디제이가 들려주는 사연들을 귀담아 들었다. 엑셀과 브레이크 페달을 오가는 발짓이, 핸들을 감싸고 있는 두 손이 이토록 가벼웠던 적이 있었을까. 비포장 도로와 일반도로를 오가는 40분의 주행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벅차오르는 기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물론 전시를 위해 기다렸다기보다 그저 흘러오다 보니 목표에 도달해 있었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다른 누군가의 작품이 아닌, 내 작품들이 가지런히 세워진 공간 사이를 세상 가장 무거운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보는 것, 그러다 이름 모를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아주 오래된 나의 소망이었다.
오랜 연습생 기간을 거쳐 첫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의 마음이 이랬을까. 진정 꿈꿔온 것을 이룬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하는지 나는 티브이나 인터넷 동영상에서도 자주 본 적이 있었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눈빛이었다. 화면 속 그들의 감정이 전이된 되려 내가 다 벅차올랐던 적이 많았다.
'결실'이라는 단어를 그제야 떠올렸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짐, 또는 그런 성과를 의미한다. 작은 주먹 사이에서 수도 없이 피고 지고 했을 바람들이 하나의 열매가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무르거나 또다시 터져 없어질게 거의 확실해 보였지만 혹여 그렇게 된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기보다 나는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를 원했다. 뒤에서 용기만을 주는 부모님과 든든한 스승님을 만난 것이 내 평생에 행운이자 앞으로는 쉽게 오지 않을 복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그저 쏟아지는 응원을 부지런히 주워 담으며 그냥 나의 길을 걸었다. 스스로를 어른이라 내세우기엔 애매하고 불안했던 20대의 중간에서 어쩌면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을 품에 안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2025. 06. 08
이 길에 오른 것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또 언제든 후회하거나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진정한 성공에 대해 정의 내릴 순 없지만 왠지 걷고 있는 길이 순탄할 것 같지는 않겠다는 물음에 나름대로의 답을 찾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언제는 미치도록 행복하고 짜릿하다가, 순식간에 깊은 땅 속으로 낙하하듯 가라앉게 될 마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섭기까지 하다.
그런 순간들에 강하게 맞서기 위해서는 기꺼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운동과 독서를 놓지 않아야 하고, 틈틈이 사람들과 만나며 새로운 눈빛과 말들을 주고받아야만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썩 내키지 않는 일들도 찾아서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굉장한 도움이 되는 것이라 말하면 잘 믿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미지근한 바람냄새가 여름을 알린다.
전쟁 같은 폭염과 장마를 수 없이 반복하다 또다시 서늘한 바람이 불 때면 또 다른 열매가 맺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