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성형을 마친 기물은 최소 일주일의 건조 기간을 거친다. 흙 속의 수분을 최대한 빼내야지만 가마 안에서 안전히 구워지게 된다. 자주 쓰이는 말로 한 번 굽는 것을 '초벌', 두 번 굽는 것을 '재벌'이라고 말한다.
800에서 900도 사이의 온도로 초벌구이를 한다. 그다음 하루정도 식혀준 뒤 그 위에 유약을 입힌다.
유약은 초벌 자기 위에 입히는 유리질의 액체를 말한다. 주로 장석, 석회석, 규석과 같은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유약을 입혀 두 번째로 재벌구이를 완료하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표면이 매끄럽고 광택이 도는 도자기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듣기에는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기나긴 과정들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생각해 보면 사실 정확히 헤아릴 수 없다.
이제는 이런 과정들이 완전히 익숙해져서 몸에 배어버렸다. 작업 상황에 맞는 준비과정과 재료 세팅, 필요한 도구들을 알맞은 자리에 턱턱 가져다 두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느낀다.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또 어디에 설치를 해야 이동거리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미 생각하기도 전에 정답은 몸 밖으로 이미 나오곤 한다. 그럴 때면 새삼 스스로에게 놀랍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가마소성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 1년이면 스물네 번이다. 그 외에 개인적인 작업 횟수까지 더해본다면 자그마치 천 번이 넘는다. 이는 내가 지난 7년 동안 작업을 위한 출근일의 횟수와도 같다.
어제처럼 오랜만에 가마를 떼는 날에는 일찌감치 출근을 한다. 공방의 뒷 문을 열고 들어가 앞쪽 출입문 두 개를 열고, 가마실과 이어지는 또 하나의 문까지 활짝 열면 하루의 진정한 루틴이 시작되는 기분이 든다.
열린 문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청량한 아침의 공기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환기를 시키는 동안 바닥의 먼지들을 쓸어 담고,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흙을 다루는 공간인만큼 매일매일 빠짐없이 먼지들을 쓸고 닦아줘야 한다. 사람의 호흡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해서 공방에서의 청소는 가장 신경 써야 할 일과가 된다. 30분 동안의 청소를 마치면 원장님과 함께 티타임을 갖는다. 같은 종류의 커피를 같은 자리에서 거의 비슷한 시간에 마시는 것도 하루의 재미라면 재미.
*
이곳에 오게 된 계기는 지극히 우연이었지만 실은 놀라운 인연이 숨어 있었다. 공방을 운영하는 원장님은 아빠의 오래전 친구였다는 사실. 처음엔 딱 정해진 시간에만 나가 수강생의 신분으로 작업실을 드나들다가 시간이 점점 쌓이면서 두 선생님의 작업을 함께 도맡아 하게 되었다.
아주 어렵고 복잡한 체계를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디든 저마다의 매뉴얼과 규칙이 존재하고 있었으니, 나는 그것들을 차분히 익히며 전체적인 업무들을 천천히 배워나갔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작업도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옛날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제식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승님의 밑에서 함께 일하며 훈련을 지속하는 형태의 배움. 나는 그쪽에 가까웠다.
나는 그렇게 두 분의 스승님을 만났다. 작업에 필요한 마음가짐과 예술가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내게 전부, 거리낌 없이 제공해 주셨다. 그렇게 몇 년을 감사하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의 애정과 정성을 온몸으로 받으며 성장했다. 마치 어린 아기가 어른들의 사랑과 애정을 듬뿍 받으며 청소년기를 맞이하는 느낌이랄까.
대학 진학 대신에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배움을 택한 것은 내 평생에 옳은 선택이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는 독립을 해야 되겠지만, 언제나 나의 몫을 남겨주시는 두 분 덕분에 어째 생각했던 것보다 늦어질 순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른이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 이름을 건 작업실 하나쯤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닥에 누우면 발끝이 닿을 정도의 공간, 딱 그 정도의 땅덩어리쯤은 내 힘으로 꾸릴 수 있겠지 싶었다.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한 5년 전에서야 깨달았던 것 같다. 이제는 그저 편하게 누울 침대 하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 그렇다고 독립에 대한 열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냥 좀 천천히 기다려보기로 하는 것이다. 매일같이 걱정하는 건 나도 적지 않게 해 봤기 때문이다. 고집도 부려보고 안달복달을 하다 지쳐도 봤지만 사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타고난 천재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된 지 이미 오래다. 연차가 쌓일수록 실력이 느는 건 당연했지만 전처럼 놀랍지 않았다.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 봐야 드는 결론은 그냥 하는 것밖엔 없어 보였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종종 비슷한 주제로 대화를 자주 나누곤 하는데, 그냥 내 것을 계속하는 것밖엔 답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에서는 그래도, 훌륭한 능력자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똘똘 뭉쳐진 작은 노력들의 결합, 그것 만으로 하나의 커다란 능력이 될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
나의 작업을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그러니 천재가 될 수 없다는 쓸쓸함은 버리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