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나 Jun 08. 2023

드디어 퇴사 통보

그리고 이어진 퇴사 인터뷰


2023.1.27


“그만두겠습니다.”

얼마나 뱉고 싶던 말이었던가. 너무나 오랫동안 마음속에 그리던 그날. 드디어 그날이 왔다.



퇴사 통보를 1차 상사인 참을 수 없는 팀장에게 할지, 아니면 애증하는 조직장인 상사 K에게 할지 고민하다가, 어느 유튜버가 알려준 대로 아래에서 위로 올리기로 했다.


2월 말 퇴사에, 잔여 연차 소진 겸 퇴사 여행을 갈 생각인지라 실근무로 3주 전인 오늘이 딱이다 싶어 참을 수 없는 팀장이 KPI면담을 위해 원하는 날짜를 적으라고 할 때, 오늘을 적었었다.

KPI면담이지만 사실은 나의 퇴사면담.


면담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참을 수 없는 팀장의 말을 자르며,


나: 제가 먼저 말씀드릴까요?
팀장: 오~~ KPI 생각해 온 게 많나 봐요. 네. 이야기하세요.
나: 저 그만둬요.
팀장: 네????


진짜 놀라는 눈치다. 이제 나랑 좀 잘 맞아 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만두면 안 된단다.

내 딴엔 그만둘 생각에 자포자기했던 그 시간 동안 팀장은 잘 맞아 간다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다. 어떤 딴지도 걸지 않았으니 팀장 입장에선 그리 생각했을 수도.

그러더니 대뜸 “신랑한테 이야기했어요?”를 묻는다. 당연한 것을 왜 묻나 의아했는데, 팀장이 와이프는 퇴사를 하루 전날 통보했다고 했다. 그리곤 전업주부가 되었다고. 그런 부부도 있나 보다 싶었다. KPI면담을 생각하고 들어온 팀장은 너무 당황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자리를 금세 마무리지었다.


드디어 통보를 했다.

생각보다 허무했지만, 생각보다 깔끔한 퇴사 통보.


그동안 끙끙 앓아 왔던 것을 뱉고 보니 실감이 나면서 이내 홀가분해졌다. D-day를 얼추 정하고 12월, 1월 두 달 내내 더디게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세어가며, 너무도 괴로웠기에.


퇴사 통보 후 퇴근만 기다렸다가 옆 팀 J와 우리만의 환송회를 했다.

J는 내가 있는 팀에서 그럴듯한 환송회를 해주지 못할 거라는 우려를 표했고, 내 생각에도 참을 수 없는 팀장과 새로 들어온 팀원들이 해주는 환송회는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기에, 우리만의 환송회를 제안해 준 J에게 고마웠었다.

J는 나의 퇴사를 어느 정도 지켜봐 왔으면서도 궁금한 게 많다며 퇴사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다. 역시 미리 준비하고 온 그녀답게 질문이 하나 같이 다 묵직했다. 그 질문들 속에서 우리는 참 많이 울고 웃었다.


참으로 많은 질문이 있었는데, 인상 깊은 질문이 있었다.


J: OOO님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나: 그러게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어려운 질문이네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나: 사람들은 어차피 기억하고 싶은 모습으로 기억해요. 내가 아무리 기억되고 싶은 모습이 있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기억해주지 않을 거라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든 상관없어요.
근데 딱 하나 슬픈 건 있어요. 나는 원래 밝은 사람인데 내가 퇴사하기 전까지 너무 어두웠어서 사람들이 내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어두운 모습으로 나를 기억하게 될까 봐, 그건 슬프네요. 본연의 모습을 보여줬어도 어둡게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돌아봐도 내가 너무 어두웠어서 밝게 기억될 리가 없을 것 같아서. 


말하고 나니 슬펐다. 생각해 보면 나는 콧노래를 자주 흥얼거리는 사람이었는데 어느덧 나는 콧노래가 아닌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통화를 할 때마다 젊은 애가 뭔 한숨을 그리 자주 쉬냐고 하셨었다.


퇴사 인터뷰를 하고 나니 마음의 방향이 명확해졌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J에게 처음으로 내 꿈을 이야기했다.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하는 신랑을 보면서 부러웠던 그 시간에도 나는 내가 자각하지 못했던 꿈이 있던 사람이었다.  


J는 그저 견뎌온 12년이라는 시간의 끝맺음에 충분한 예를 갖추어 주었다. 나가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들여다봐준 그 깊은 속내에 감사한다.


나는 이제 퇴사로 가는 여정 끝에 서 있다.





퇴사 인터뷰가 끝나고도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J의 질문이 계속 생각났다. 나답게 기억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다운 건 또 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지러운 마음에 펼친 일기장에서 삼청동으로 뛰쳐나가기 하루 전날의 일기를 발견했다.


나는 자주는 아니지만 진짜 괴로운 날이면 일기를 썼다. 마음속 생각을 일기장에 털어내고 나면 그나마 홀가분했고, 나다움에 대한 그날의 고민이 눈에 들어왔다.



2021년 4월 1일.


나다움은 뭘까.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건 뭘까. 내가 보는 내가 나일까. 남들이 보는 내가 나일까?

나다움을 쉽게 정의 내리지 못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요새 나다움이 없는 나가 너무 낯설다. 생기가, 활력이, 자신감이 못내 그립다. 쓰고 보니, 그런 것들이 있는 게 나인가 보다.

미간 주름이 잔뜩 늘어난 걸 보니 요새 쭈욱 죽상이었나 보다. 근육은 습관이 만든다는데, 마음의 문제였는지, 상황이 진짜 그러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인상 쓸 상황에 오래 노출되어 있었나 보다.


퇴근할 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다가 지하철에서 어느 작가의 글을 읽고 있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걸 겨우 삼켰다. 애써 다른 생각으로 주위환기를 시켜가며 겨우 꾹 참고, ‘집에 가면 울자, 집에 가면 울자’ 다독이면서. 


나다움이 그리운 오늘은 누군가의 달달한 한 마디로 위로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가벼운 허함은 아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데 집 앞 공원에 벚꽃이 참 흐드러지게 폈다. 마음은 울기 직전이었으면서, 곧 질 벚꽃은 아쉬웠는지 잠깐 공원에 앉아서 울까 고민하다가 애써 참은 눈물이 공원에서 꺼이꺼이 발산될 게 무서워 일단 집에 가서 울기로 마음먹고 방향을 틀었다. 내 마음이면서 내 마음의 지쳐 있음에 아무 위로도 건네지 못한 채 나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런 날이 있다. 내가 멍청이 같은 날. 내가 생각해도 내가 어리석은 날. 내가 생각해도 나 이거밖에 안 되나 싶은 날. 내일은 또 바보처럼 내가 언제 그랬었나 싶게 탈탈 털고 웃고 있겠지만 오늘은 사뭇 진지하고 눈물만큼은 진심이다.

내일 올해 목표를 세우는 시간에 퇴사한다고 말할까? 언제 퇴사할까?




2년 전에도 고민한 나다움을 여전히 정의 내리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정의 내릴 수 있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 거 같아 내심 기쁘다.


어쩌면 나는 2년 전부터 퇴사를 고민하고 답을 내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참으로 경솔한 내가, 퇴사에 있어서는 참으로 진중한 사람이었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는 절친에게 그렇게 하는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