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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 May 08. 2023

일심동체. 부창부수. 동반퇴사.

나도 그만둘래.


2022.11.08


농담 삼아 “나 퇴사할 거야”라고 말하면 신랑은 언제나 “그래”라고 하며, 이유를 묻는 대신 퇴사하는 데는 응당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나의 퇴사를 있는 그대로 지지해 주는 사람이었다.


결혼 전 내가 농담 삼아 던진 ‘만약에 질문(내가 수시로, 아주 좋아하는, 때론 노골적으로 답을 정해 놓은 만약에로 시작하는 질문)’에 신랑은 유레카 같은 답을 주었으니깐.
 
“만약에 내가 회사 다니다가 몸이 아파지면, 오빠 어떻게 할 거야?”

사실 답을 정해 놓았다. “하던 일 다 제쳐 놓고 너만 간호할 거야”라는 달달한 답을.

그런데 신랑이 “왜 아파질 때까지 다녀? 아파지기 전에 그만둬.”라고 했다.
 
무릎을 탁 쳤다. ‘그러게. 나 왜 아파질 때까지 회사 다닐 생각을 했지. 그만두면 되는데...’

마치 누가 회사 다니라고 채찍질해서 다니고 있는 것처럼, 죽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녀야 하는 것처럼 아플 때까지 다닐 생각을 했던 내가 참 미련하게 느껴졌다.


퇴사결심을 한 날, 퇴사에 시간이 필요하니 100일간 퇴사 일기를 쓰고 정리하겠다고 하는 나에게 “100일 안 채워도 되니 언제든 너무 힘들면 그냥 그만둬.”라고 다시 한번 그는 나의 퇴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지친 마음을 보듬어주었다.
 
‘역시 결혼해서 먹여 살리는 신랑이 있으니 참 좋네’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가 넌지시 그의 꿈 이야기를 했다.


지방에 살던 신랑과 나는 취미생활을 하다가 만났고, 1년간 주말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면서 그는 서울로 이직을 했다. 그 이직도 내가 퇴사를 앞두고 있는 이 회사에 아직 애정이 있던 시점이라 그의 이직만이 유일한 선택지라 판단하고 선뜻 이직을 결심해 준 신랑. 그런 그가 내가 퇴사를 한다고 하니 그제야 본인의 속내를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결혼하고 시작한 서울생활이 숨이 막혔었다고. 사람이 차고 넘쳐 소중한 줄 모르고 발길에 차이는 이 서울에 몸을 욱여넣느라 온몸이 아픈 것 같았다고. 좋아하는 일은 하고 있지만, 사실 조직생활이 버겁다고. 회사를 참고 다니면 몇 년은 더 다니겠지만, 너처럼 더 이상 회사에서 그려지는 행복은 없다고. 그래서 그만두고 전부터 생각했던 공부를 좀 해보고 싶다고.

3주 전에 나의 퇴사를 지지해 준 그에게. “오빠는 더 다녀”라고 할 수 없었다.
 
사실 내심 그가 퇴사 이야기를 할 때 조금 더 다녀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내가 꿈을 찾고 다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안정된 수입이 있었으면 하는 이기심이 잠깐 스쳤다. 신랑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고, 나름 새로운 프로젝트를 끝낼 때마다 보람도 느끼는 것 같았는데, 잊고 있었다. 그가 조직이 커질수록 조직생활을 버거워하는, 혼자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신랑 나이는 나보다 4살이 많다. 조직생활 길게 봐도 앞으로 5-6년일 텐데, 아무 자리도 욕심나지 않는, 관계에서 에너지가 빨린다는 그에게 더 다니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불행을 묵인하는 것은 나의 불행이기도 하고, 죄악 같았다.

60대, 70대에도 할 수 있는 일의 기반을 지금 닦아보고 싶다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든든한 뒷배도 없지만,  
다행히 빚도 없고, 애도 없고, 아픈데 없으니 그래 가보자 싶다.
 
나를 위해 그가 희생하는 것도, 그를 위해 내가 희생하는 것도 우리는 서로 원하지 않는다.


그래 동.반.퇴.사.해보자.

부부가 같이 놀아야지. 일할 때 같이 일하고, 놀 때 같이 놀고.

암만. 응당 그래야지.라는 마음으로 맘을 다독이며.


주말 연애를 끝내고 주말 부부가 싫어 나의 직장 때문에 서울로 이직을 결심해 준 그와 더 이상 서울에 살 이유가 없는 우리의 미래가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는 된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세계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그 길 끝에 뭐가 있을지 기대하며 그토록 원했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수도 있고, 예약에 실패해 못 갔던 캠핑장을 평일에 갈 수도 있고, 사람 많은 시간을 피해 평일 낮 시간에 브런치를 먹을 여유를 생각하니, 둘 다 그만두는 거 너무 행복한 결심이다 싶다.


그동안 손에 쥔 것들을 놓을 생각에 못내 아까웠던 것들이 이제는 놓아야 쥐어질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막연히 암담했던 앞날이 어떤 것들로 채워질지 설레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의 준비는 이것으로 되었다.


엄마!! 결혼 전에 말씀하신 일심동체, 부창부수의 모습을 우리가 완벽하게 갖췄네? 뜻밖의 효녀가 되었지만 동반 퇴사를 과연 부모님들은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주로 외벌이 가장들이 내 퇴사 소식에 가장 먼저 한 반응은, “신랑한테 이야기했어요?”, “신랑이랑 상의했어요?” 더 나아가 “신랑한테 허락받았어요?”였다.


내가 내 일을 그만두는 걸 왜 신랑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퇴사를 결심한 날, 신랑은 “진작 그만뒀어야 했어. 당장 그만둬”라고 나의 퇴사를 있는 그대로 지지해 주었다. 캠핑장에 온 내 베푸에게 “OO이 성격에 그 정도면 오래 버틴 거야. 그만두는 게 OO 이를 위해서 맞아”라고 해서 베푸는 감동이었다는데…(내 성격이 안 좋다는 말처럼 들렸는데, 왜 그게 감동인지…)


그 말이 얼마나 고마운지는 퇴사하고 싶어도 신랑들이 허락하지 않아 그만두지 못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퇴사를 하면서 지인들에게 나의 퇴사를 알렸을 때, 남편이 벌고 있으니 나의 퇴사가 배곯는 퇴사는 아니니 다행이라고 했다. 차마 말하지 못했다. 우리 사실 동반퇴사하는 거라고.
지금은 일부에겐 알렸지만, 아직 모르시는 분들도 많다.
 
두렵지 않냐고? 너무 두렵다.
수입이 없다는 것, 그렇다고 우리가 자유를 쫓기에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래도 꿈을 찾는데 시간을 좀 쓰자는 신랑의 낙관을 나도 못 이기는 척 따라보고자 한다.

‘논다고 당장 죽기야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결심이 서고도 100일이 필요한 나와 달리 신랑은 실행력이 빨랐고, 나보다 먼저 백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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