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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 May 03. 2023

비전을 못 주는 선배,  비전을 못 찾은 후배  

퇴사의 이유 2)


2022.10.27


팀에서 나간 사람들이 줄줄이 소환되며 마치 그 사람들의 퇴사나 전배가 전부 내 탓이라는 듯 시작되는 실장과의 면담.

“앞으로 들어오는 사람들한테 저희가 비전을 줘야 하잖아요. 또 나가게 할 수 없잖아요. 또 나가면 우리 탓이잖아요.”

근데 왜 거기에 지난 4월에 입사해서 이제 겨우 6개월 된, 잘 적응하고 있다고 믿었던 그 후배이름이 너무 자연스레 나온 걸까? 쎄~~한 느낌을 애써 외면하며 말실수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침에 출근하고 보니 그 후배가 실장방에 들어간다. 후배의 퇴사를 직감하는 순간.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논의 중인 건에 너무 열심히라 퇴사는 생각도 못 했고, 다른 팀 사람들과도 잘 지내기에 역시 똑똑한 친구는 회사생활도 참 빨리 적응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주변에 무심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다.
 
마침 그 후배와 잡힌 미팅이 있어 미팅 전 부러 커피를 사러 가며 물었다. 혹시 퇴사냐고. 실장님께 보고 드리기 전까지는 함구해 달라고 하셔서 말씀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했다고. 더 나은 조건을 위해 옮긴다고 하길 바라는 한 가닥 희망을 갖고 혹시 이직이냐고 물었으나, 아니라고 했다.

혹시 퇴사하는 이유를 물어도 되냐고 했더니,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면서 그 스트레스가 몸에도 나타나는 것 같다고 했다. 다들 말씀도 너무 잘하시고 본인 일들을 알아서 척척 잘하시는 것 같은데, 경력으로 들어와 놓고 자꾸 모르는 걸 묻기 죄송스러웠다고 했다.  

진짜 뭘 물어도, 수시로 물었어도 전부 다 괜찮았는데, ‘나는 질문조차 어려운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에 더 괴로웠다. 경력직이기에 매니징이 코칭이 아닌 티칭이 되어 간섭처럼 느껴질까 하는 우려와 요새 젊은 친구들은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좋아한다니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속도로 다가간다는 게 어쩌면 배려가 아닌 무관심으로 느껴졌을 것도 같았다.

팀장도 아니면서, 멘토라는 이유로 후배의 퇴사가 전적으로 내 탓 같았다. 어제 실장이 한 말처럼 그녀의 퇴사가 전부 내 탓 같은, 아무 비전을 주지 못한 것 같은 무능함에 자괴감이 들었다.  


미련이 너무 남지만, 그 결심을 응원하겠다고 했다. 비전을 주지 못해 미안했다고도. 나도 요새 비슷한 마음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있는 중이라고. 하지만 6개월 동안 어떤 부족함도 느끼지 못했으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곳을 찾아 커리어를 이어가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후배도 나와 같이 단 한 가지 이유로 퇴사를 결심한 게 아닐 수도 있다. 다른 답을 찾은 어떤 깨달음일 수도 있기에 더 이상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막연히 퇴사를 결심하고 내가 하던 일을 오롯이 짊어져야 할 후배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새치기를 당한 이 느낌이 당혹스러우면서도 처음 가졌던 미안함은 덜어도 될 것 같은데 또 다른 뜨거움에 더 미안해졌다. 그게 내 퇴사의 두 번째 이유다.


막연히 연차가 차면 언젠가 팀장이 되리라 생각했다. 층층시하 내 순번은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팀장이란 타이틀은 퇴직 전에는 막연히 언젠가 갈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것 같다.

그러니 아마도 이런 대답을 했겠지.

회사의 인사 제도 중 “잠재적 리더”를 선정하여 육성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나도 후보자가 되어 인터뷰를 봤다. 질문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오르고 싶은 자리에 대한 질문이었다. 잠재적 리더를 선정하는 면접이니 뭔가 큰 포부가 있어야만 할 것 같았는데, 내 대답은 소박했다. 내가 어떻게 선정이 되었는지 나조차도 의문이 생기는 답.

“제가 너무 소박할 수 있는데, 임원이 되거나 CEO가 되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 팀이 갖고 싶습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그런 팀이요.”

그때는 막연히 “팀장”이란 자리를 생각은 했나 본데, 지금은 진짜 팀장이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

참을 수 없는 팀장의 팀장놀이를 지켜보고 나니, 더 이상 그 자리가 탐나지 않는다. 사실 그처럼 욕먹는 게 두려운 거 같은데, 욕 안 먹게 잘할 자신이 없다는 게 맞다.

막연히 생각했던 팀장을 리스트에서 지우고 둘러봤다. 주변의 팀장들, 임원들. 어느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팀장들, 임원들 말고도 어느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눈빛이 반짝이지 않았다. 종종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다른 의미로 초롱초롱한 욕심 있는 얼굴들을 제외하고는.


한 달 전쯤 한때는 그의 영민함과 기지를 존경했던, 지금은 애증으로 대체된 상사 K에게 “제가 비전을 찾지 못했는데 제가 후배들에게 어떤 비전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이에요. 제가 제 비전을 찾아야 거짓 비전이 아니라 진짜 마음이 동하는 비전을 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찾지 못해 하루하루가 괴로워요.”라고 토로했으나, “비전을 못 찾는 건 네 탓이지.”라고 했다.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후배에게 어떤 비전도 주지 못하는 무능한 선배였고, 상사에게 어떤 비전도 보지 못하는 한심한 후배였다. 내 후배가 나에게 비전을 못 찾겠다고 이야기할 때 후배 탓을 하는 선배가 내 롤모델은 아니었다. 후배의 퇴사를 붙잡을 수 없는, 100일이라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오로지 결론이 내려진 퇴사 일기에 쏟아 내는 비전 없는 선배. 그게 내 퇴사의 이유고, 내 후배의 퇴사에 내가 갖는 미안함이다.


되고 싶지 않은 참을 수 없는 팀장의 팀장 자리도, 갖은 애를 쓰면서도 행복해 보이기보다 하루하루 더 늙어가고 지쳐 가는 상사 K가 가고자 했던 임원 자리도, 내가 원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회사에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 내가 가고 싶은 자리가 없었다. 어느 누구도 나보다 많은 월급에, 나보다 더 나은 자리에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선입선출이 아닌, 나보다 늦게 입사해 놓고 먼저 나가는 후배의 퇴사를 바라보며,

오늘의 답 또한 역시 “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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