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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 Jan 17. 2024

생각하면 그리운 것들

호빵이 몰고 온 추억팔이


책을 읽고 있는 틈으로 신랑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을 내민다. 투명한 유리잔에 듬뿍 담긴 새하얀 우유와 함께. 요새 회사원처럼 생활하기로 한 터라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다가 받은 뜻밖의 간식에 나도 모르게 씨익 웃어 보이며, "이 회사는 복지가 참 좋네요. 틈틈이 계절 간식도 주나 봐요?" 하니, 그가 코웃음을 친다.


며칠 전 신랑과 마트에 갔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홀리듯 사온 호빵이었다. 적당히 때우는 나와 달리 직접 가스레인지에 찜기 올려서 쪄내온 찐빵이라 그런지 어릴 때 내가 겨울마다 기다렸던 그 맛 그대로였다. 겨울엔 추위를 녹여주는 주전부리를 골라가며 먹는 재미가 있었다. 낮엔 온종일 내린 눈으로 격렬하게 에너지를 쏟고 밤이면 호떡을 먹을까, 고구마를 먹을까, 그리고 호빵을 먹을까 하는 즐거운 기다림.


엄마는 매일 돈을 주면서,


"너는 나중에 꼭 호떡 장사한테 시집가라"

"너는 나중에 꼭 고구마 장수한테 시집가라"


하고는 했다.


어린 마음에 진짜 호떡 장사한테, 고구마 장수한테 시집갈 고민을 하기보다는, 우리 엄마는 왜 호떡 장수가 아니어서 매번 감질맛 나게 한 두 개만 사 먹어야 하느냐고, 다리 밑에서 주워와서 키우는 엄마가 아닌 어딘가 있을 진짜 엄마가 호떡 장사를 하기를 바랐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호떡은 요새 호떡처럼 통통한 밀가루를 기름에 튀기듯 만든 호떡이 아니었다. 각종 견과류를 넣어 씹는 재미를 더해주는 호떡도 아니었다. 나는 호떡집 단골이었다. 호떡집에 가자마자 반기는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채 할 겨를도 없이 "호떡 천원어치요"를 외치고 내 허기진 눈은 호떡 아줌마의 손을 좇았다. 되직한 반죽을 반죽통에서 떼어내어 손바닥에서 편평히 고른 다음 그 사이에 갈색설탕을 한 숟가락 무심한 듯 툭 넣고 오므린 다음 살짝 깔린 기름판 위로 그 몽글몽글한 덩어리를 일단 올리면 내 마음도 몽글몽글해졌다. 누름판으로 덩어리를 앞뒤로 누르면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걸 기다리면서 얼마나 황홀했는지 모른다. 천원어치면 아주 넉넉하게 담아주셨다. 식구들이 하나씩 먹고도 내 몫이 더 있었으니깐.


그런 호떡을 요새는 찾을 수가 없다. 간혹 여행을 하다가 만나는 재래시장에서 옛날식 호떡을 기대하고 기웃거려 보지만 참으로 귀하다.


어디 호떡만 귀할까. 요새 군고구마 장수는 찾을 수가 없다. 군고구마는 한 건물 건너 하나씩 있는 편의점에서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앞뒤 껍질이 많이 타서 어쩔 땐 껍질을 벗기자마자 속살이 반은 날아가버리는 그런 고구마는 맛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캠핑을 갈 때마다 호일과 고구마를 챙기나 보다.


편의점에서 간혹 호빵을 파는 경우를 본다. 아직까지 한 번도 사 먹어보지 않았다. 어릴 적 보던 그 미닫이로 열리는 원형의 호빵기계를 보기가 참으로 귀해 아직까지 그 호빵 기계로 파는 가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편의점을 자주 가는 건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기억나는 긴 기다림 중의 하나가 호빵 쪄지는 시간이었다. 엄마에게 받은 돈을 들고 달려갔지만, 이미 쪄진 호빵은 다 팔려나가고 아저씨가 새 호빵을 넣었으니 기다리라고 했을 때의 그 시간은 참 더디게 흘렀다. 기다리라는 시간을 초 단위까지 하나하나 세며 시간을 온몸에 새기면서 기다렸으니깐. 호빵 쪄지는 시간이 그리 긴 시간도 아니건만, 돈을 들고 내달려온 그 달음질이 빨랐던 만큼 가만히 서서 기다려야 하는 그 시간은 길기도 길었다.


사라진 것만도 아니건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 하나에 어릴 적 느꼈던 겨울의 맛이 문득 그리워졌다. 요새 아이들은 겨울의 맛을 무엇으로 기억하려나. 스키장의 우동이나 어묵일까? 그 아이들도 커서는 추억할 그런 겨울의 맛이 있으려나? 그즈음에는 또 사라져서 추억을 헤집고 기억내야 할 것들이 있겠지.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엔 우린 또 얼마나 많은 것을 뒤로하고 살고 있으려나 무섭기도 하고 벌써부터 지금의 것이 그립기도 하다.



누군가의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을
찾아온 내가 어리석었다.

그런데 내가 찍으려는 것이
그런 것들 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사라지고 없지만 생각하면 그리운 것들


   - 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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